김문수 승부수 근기법 확대 적용, '저출산 카드'로 뚫을까

영세사업장의 주홍글씨 '근로기준법 부분 적용'
전면적용 촉구하는 노동계·야권…정부·여당은 경사노위 통한 단계적 확대 추진
김문수 장관 "출산·육아 관련 조항부터 논의하자"…실효성보다 대화 물꼬 트자는 취지로 읽혀
현실적으로는 경영계 반대 뚫고 경사노위 공식 논의 시작조차 갈 길 멀어

발언하는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황진환 기자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이 5인 미만 사업장에 근로기준법을 확대 적용하기 위한 최우선 과제로 '출산·육아'를 내세우며 대화의 물꼬를 틀겠다고 나섰다.

정작 근로기준법 중 확대 적용할만한 관련 조항이 많지는 않지만, 이를 발판으로 대화의 장을 열겠다는 취지로 읽히는 가운데 과연 사회적 대화가 속도를 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사회적 대세로 떠오른 5인 미만 사업장의 근로기준법 적용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14일 '지속가능한 일자리와 미래세대를 위한 특별위원회'(이하 미래세대특위) 2차 간사회의를 진행했다. 이는 오는 16일 열릴 미래세대특위 10차 전체회의를 앞두고 주요 과제들을 점검하는 자리다.

이날 미래세대특위는 4대 의제 중 '산업 전환'을 대비하기 위한 별도 회의체를 만들고, △격차 해소 △노동 유연 안정 △노사 관계에 대해서는 전문위원회를 구성하는 방안 등을 논의했다. 이 중 격차해소와 관련해 근로기준법의 적용대상을 확대하는 문제도 거론될 것인지 주목된다.

현행 근로기준법 제11조에는 상시 근로자 수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일부만 적용하도록 규정하고, 구체적인 적용범위는 시행령에 담아두고 있다.

따라서 5인 미만 사업장은 연장·야간·휴일근무수당이나 연차공휴일 유급휴가, 부당해고 금지, 직장 내 괴롭힘 금지 등의 규정이 작동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5인 미만 사업장에서도 해고 30일 전 예고해야 하지만, 사용자가 이를 어겨도 노동자가 노동위원회를 통해 부당 해고 여부를 다툴 수 없다. 또 주52시간제도 적용되지 않는다.

이는 영세사업자가 근로기준법을 모두 지키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이유로 방치됐다. 예를 들어 각종 수당을 챙기려면 출퇴근 시각 등 노동시간을 정확히 계산해야 하는데, 작은 사업장에서 일일이 챙길 여력이 없다는 식이다.

답변하는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연합뉴스

뒤집어 말하면 영세한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야말로 저임금, 불안정한 고용 등 열악한 노동조건에 노출됐으니 법적 보호가 더 시급하다는 반론도 끊이지 않았다. 또 매출 상황이나 업종 등에 관계없이 그저 일하는 노동자의 수가 적다는 단순한 이유만으로 노동자의 기본적인 권리를 법 밖에 내팽개치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다는 비판도 많다.

이 때문에 노동계는 물론, 야권에서도 모든 사업장에 근로기준법을 전면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반면 여당인 국민의힘은 경사노위의 사회적 대화를 통한 단계적 확대 적용을 추진하고 있다. 여당은 지난 22대 총선에서도 경사노위의 사회적 대화를 거쳐 유급공휴일을 확대 적용하는 방안을 공약으로 제시한 바 있다.

다만 아직 경사노위에 근로기준법 확대 여부에 관한 논의가 공식 테이블에 오르지는 않았다. 경사노위 관계자는 "5인 미만 사업장의 근로기준법 적용 문제를 논의 의제로 포함하느냐 여부는 노사와 협의해야 할 사안"이라며 "노사 모두가 동의해야 의제로 설정할 수 있는데, 아직은 좀 더 공론화 과정이 필요한 단계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김문수 "출산·육아 관련 조항부터 논의 시작하자"…그런데 무슨 조항요?


이런 가운데 김문수 장관은 근로기준법 확대 적용을 '승부수'로 밀고 있다. 지난 4일 열렸던 여당의 노동전환특별위원회 회의에서도 김 장관은 "근로기준법 적용조차 못 받는 5인 미만의 근로자들, 플랫폼·프리랜서·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것은 오직 국가와 정부가 해야 하고, 여당이 해야 할 일"이라며 강조했다.

김 장관은 취임 직후부터 근로기준법을 확대 적용하도록 사회적 대화로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거듭 강조해왔다. 사회적 대화를 통해 근로기준법을 단계적으로 확대 적용하자는 것 자체는 기존 여당·정부의 주장과 궤를 같이 하는 얘기다.

더 나아가 김 장관은 지난달 30일 장관 취임 후 가진 첫 기자간담회에서 "특히 출산이나 육아, 보육 등부터 해야 하지 않겠나"라며 보다 구체적인 개편 방향까지 제안했다.

그동안 통상 근로기준법의 단계적 확대 적용을 거론할 때에는 직장 내 괴롭힘 등 당장 사용자에게 큰 부담을 안기지 않는 조항들이나, 애초 법 안에서 모순을 빚는 부당해고 구제 관련 조항을 우선 적용하자는 얘기가 많았다. 혹은 사용자가 법을 어긴 경우 처벌해야 하는 강행규정에 한해 영세사업장을 예외로 두자는 주장도 자주 제기됐다.

이런 와중에 김 장관이 근로기준법을 통한 저출생 해법부터 우선 논의하자고 새로운 접근을 시도한 셈이다.

발언하는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황진환 기자

다만 김 장관의 구상과 달리 경사노위가 관련 논의를 시작하더라도 정작 출산·육아에 대한 내용은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애초 현행 근로기준법의 출산·육아 관련 조항 중 5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되지 않는 조항이 드물기 때문이다.

육아휴직 등 노동자의 육아·보육에 관련된 제도는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에서 주로 다루고 있고, 이는 사업장 규모에 관계없이 적용된다. 다만 육아휴직 기간을 연차 유급휴가로 보장하는 근로기준법 60조의 경우, 애초 연차휴가 자체가 5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빠져있을 뿐이다.

또 근로기준법에 임산부가 아닌 18세 이상의 여성은 보건·임신·출산에 유해·위험한 일을 하지 않도록 보호하거나(65조) 월 1일의 생리휴가(73조), 태아검진을 위한 임산부의 유급 정기건강진단(74조의 2), 생후 1년 미만인 유아를 키우는 여성 노동자의 유급 수유시간을 보장(75조)하는 법 조항 정도가 눈에 띌 뿐, 이 외에는 출산·육아를 위해 근로기준법을 확대적용할 여지는 따로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김 장관이 굳이 출산·육아를 강조한 배경에는 법 개정을 위한 사회적 대화를 서두르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노사 간에 팽팽히 대립할 수밖에 없는 사안에서 그나마 모두가 부정할 수 없는 대의명분인 '저출생 해결'을 간판으로 내걸고, 이를 토대로 '일단 테이블에 앉아 대화를 시작해보자'는 취지인 셈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특정 조항이 되고 안 되고를 따졌다기보다는, 최근 모성보호 3법의 통과 등을 고려할 때 사회적 공감대가 있는 부분을 우선 논의해보자는 취지"라며 "근로기준법이 지난 35년 동안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는데, 일부라도 진전한다면 의미가 있다는 차원에서 비록 작은 문제라도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것부터 다루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영계 결사반대 뚫고 사회적 대화 올릴 수 있을까…"노동부 역할이 제일 중요"


다만 노사 모두 아직은 뜨뜻미지근한 반응이다. 애초 경사노위 논의 테이블에 노사의 입장이 정면으로 부딪히는 근로기준법 확대 적용과 같은 민감한 의제를 올리는 일 자체가 쉽지 않다는 점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소상공인연합회 관계자는 "소상공인들에게는 어떤 조항을 확대 적용하든 무조건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며 "저출산에 대한 사회적인 문제의식이나 노동자와의 상생도 이해하지만, 현재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의 경영 상황에서 이런 논의가 가능하지 않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며 논의 자체를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경사노위에 노동계를 대표해 참여하는 한국노총의 이지현 대변인은 "애초 현재 근로기준법 조항에서 대폭 개선할 만한 내용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단순히 모성 보호 조항을 마구잡이로 확대하면 자칫 여성 고용을 기피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적용되는 법 조항을 좀 더 늘리는 것보다 이미 현재 적용되고 있는 제도가 현장에서 실제로 사용될 수 있느냐를 돌보고, 남성을 포함한 전체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을 줄이는 작업이 더 중요하다"며 "자칫 이를 빌미로 노동시간 유연화를 추진하려는 것은 아닌지도 우려된다"고 강조했다.

다만 "근로기준법의 확대 적용은 노동계가 강력히 주장했던 사안으로, 경사노위 특성상 경영계가 강하게 반대하면 의제 상정조차 할 수 없기 때문에 노동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며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도 단계적 확대 적용을 거론했고, 정부 주장대로 근로기준법을 선진화하자는 측면에서도 ILO(국제노동기구) 국제협약에도 맞지 않는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차별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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