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중개사가 부동산 매매계약을 중개할 때 법적 판단이 필요한 법률 사무까지 매도인에게 설명할 의무는 없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지난달 12일 A씨가 공인중개사 B씨와 한국공인중개사협회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취지로 판결하고 사건을 울산지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2018년 11월 자신이 소유한 울산 중구의 한 아파트를 한 정부 공단과 임대차보증금 2억원의 임대차계약을 체결했다.
A씨는 이후 B씨의 중개로 2020년 5월 해당 아파트를 2억8천만원에 매수인 C씨에게 매매했다. 임대차보증금 2억원은 C씨가 인수해 매매대금에서 공제하기로 약정하고, A씨는 차액인 8천만원만 받았다.
문제는 C씨가 공단에 내 줄 보증금 2억원을 지급하지 않고 아파트를 담보로 돈을 빌렸는데, 이후 아파트가 경매에 넘어가게 됐다. 결국 공단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다.
법인 임차인은 주민등록이 불가능해 주택임대차보호법상 제3자에게 자신의 임대차관계를 주장할 수 있는 권리(대항력)가 없다. 매수인도 임대인의 지위를 승계하는 것이 아니어서 임차인의 동의 없이는 임대차보증금 반환채무가 매수인에게 면책적으로 인수되지 않는다.
공단은 전세금보장신용보험 회사에 보험금을 청구해 보증금을 돌려받았다. 보험사는 A씨를 상대로 구상금 소송을 냈고, 2억원 배상 판결이 확정됐다.
이에 A씨는 공인중개사 B씨와 협회에 "채무인수가 불가능한 상황과 대비책 등에 관한 정확한 설명 없이 매매계약을 중개했다"며 "공인중개사법이 정한 공인중개사로서의 주의의무를 위반했다"고 소송을 냈다.
1심과 2심 판단은 달랐다. 1심은 공인중개사의 주의의무를 인정하지 않고 A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반면에 2심은 B씨가 주의의무를 위반해 재산상 손해가 생겼다며, A씨가 입은 손해를 배상하라고 판단했다. 다만 A씨의 부주의도 있다고 보고 B씨의 책임을 50%로 제한했다.
1, 2심이 엇갈린 가운데 대법원은 공인중개사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고 봤다.
대법원은 "채무인수의 법적 성격을 가리는 행위는 단순한 사실행위가 아닌 법률 사무"라며 "공인중개사가 부동산을 중개하는 과정에서 채무인수의 법적 성격까지 조사·확인해 설명할 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공인중개사의 중개행위는 당사자 사이 매매 등 법률행위가 용이하게 성립할 수 있도록 조력하고 주선하는 것이지 변호사 등이 하는 법률 업무와는 구별된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중개 과정에서 그릇된 정보를 전달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채무인수의 법적 성격에 관하여 조사·확인해 설명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 신의를 지켜 성실하게 중개행위를 해야 할 의무를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