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0%에 도전하게 만드네…"
이강철 KT 위즈 감독이 준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패한 뒤 남긴 말이다. 역대 준플레이오프 1승 1패 상황에서 3차전을 내준 팀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사례는 없다. 확률로 표기하면 0%다.
그런데 이미 KT는 0%의 기적을 연출한 바 있다. 2015년에 도입된 4-5위 팀 간의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5위 팀이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한 건 올해 KT가 처음이다. 4위 팀은 한 번만 이기면 되지만 5위 팀은 적지에서 두 번을 다 이겨야 하는데 KT가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KT는 3차전에서 지면서 다시 벼랑 끝에 섰다. KT는 이미 정규리그 막판부터 벼랑 끝 승부를 해왔던 팀이다. SSG 랜더스와 5위 경쟁이 워낙 치열했기 때문이다. 한 번이라도 지면 5위 경쟁에서 멀어지는 상황을 이겨내고 SSG와 승부를 KBO 사상 첫 5위 결정전으로 끌고갔다. 그리고 극적인 역전승으로 5위를 차지했다.
그래서 이강철 감독에게는 지금 상황이 익숙하다.
이강철 감독은 9일 오후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열린 2024시즌 KBO 리그 LG 트윈스와 준플레이오프 4차전을 앞두고 "항상 매경기 이렇게 벼랑 끝에 가야 잘하려나, 오늘 이기면 진짜 그런 생각이 들 것 같다"며 웃었다.
이번에도 벼랑 끝 KT는 강했다. KT는 2회초 김현수와 박해민에게 연속타자 솔로홈런을 맞고 선취점을 내줬다. 큰 경기에 강한 선발 윌리엄 쿠에바스가 지면 시즌이 끝나는 승부 초반부터 흔들렸다. KT에게는 위기였다.
KT는 2회말 문상철의 솔로포로 1점을 만회했다. 그러나 4회초 문성주에게 적시타를 맞고 다시 2점차로 끌려갔다. 이제는 타선의 힘이 필요할 때 4번타자 강백호가 힘을 냈다.
강백호는 4회말 선두타자 2루타를 때렸고 이때부터 KT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황재균이 1사 후 적시타를 쳤고 계속된 1사 1,3루에서 오윤석이 스코어를 3-3 원점으로 되돌리는 안타를 때렸다. 이후 김민혁이 만루에서 희생플라이를 날려 스코어를 뒤집었다.
다시 강백호부터 시작된 5회말 공격에서는 벼락같은 홈런이 나왔다. 강백호가 LG의 두 번째 투수 김진성을 상대로 솔로홈런을 날렸고 KT는 5-3으로 앞서갔다.
그리고 5회부터 마운드를 이어받은 고영표는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고영표는 KT가 벼랑 끝 승부를 시작한 시점부터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팀에 기여했던, 벼랑 끝 생존의 상징과도 같은 선수다. 이번에도 이강철 감독의 기대에 부응했다.
그러나 8회말 변수가 생겼다. 고영표가 선두타자 문보경에게 볼넷을 내줬고 1사 후 강판됐다. 이어 등판한 소형준이 2점 차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동점을 허용했다. 계속된 만루 위기에서 마무리 박영현이 등판해 어렵게 불을 껐다.
박영현은 제 몫을 했다. 오스틴 딘, 문보경이 차례로 타석에 선 9회초를 완벽하게 틀어막았다. KT는 한숨을 돌렸다.
승부는 연장전에서 결정됐다. 연장 11회말 강백호가 선두타자로 나서 2루타를 쳤다. 좌측 파울라인 부근에 떨어지는 타구였는데 비디오 판독 결과 파울이 아닌 명확한 2루타였다. 경기 내내 날카로운 타격 감각을 자랑했던 KT 간판 강백호를 통해 다시 한 번 활로가 뚫렸다.
KT는 11회말 무사 만루 기회를 잡았다. 김상수가 고의볼넷으로 걸어나갔고 황재균의 번트 때 3루수 문보경이 3루 승부를 선택했지만 늦었다. LG는 정우영을 투입해 아웃 카운트 2개를 잡아냈다. 그러나 심우준이라는 마지막 고비를 넘기지 못했다. 심우준은 투수 뒤로 빠지는 내야 땅볼을 때렸고 2루수와 유격수가 서로 공을 잡으려다가 그만 부딪히고 말았다.
공식 기록은 심우준의 끝내기 안타. 그렇게 대혈투가 마감됐다.
마운드에서는 마무리 박영현의 활약이 결정적이었다. 박영현은 연장 10회와 11회에도 등판해 동점을 만들며 저력을 발휘한 LG의 흐름을 끊었다. 3⅓이닝 3탈삼진 무실점 호투로 경기 막판을 지배했다.
결국 KT는 LG를 6-5로 누르고 또 한 번 생존했다. 이강철 감독의 말대로 다시 한 번 0%의 기적에 도전할 기회를 잡았다. 양팀의 준플레이오프 최종 5차전은 오는 11일 장소를 서울 잠실구장으로 바꿔 치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