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이전 공사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보고서가 발표된지 어느덧 한달이 지났다. 그간 '대통령 관저의 이전과 비용 사용 등에 있어 불법 의혹 관련'이라는 제목의 감사보고서를 다섯 번은 넘게 읽은 것 같다.
다섯 번이나 읽은 이유는 보고서가 주장하는 내용을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감사보고서가 '난수표', 아니면 '암호문'이란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대한민국 감사의 중추기관인 감사원이 발표한 보고서라면 국민 누구나 읽어서 그 내용을 쉽게 알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관저 감사보고서는 사실과 맥락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 보고서가 '현기증'을 일으키려는 목적이 아닌지 모르겠다. 그래야 여사가 안전하니까…
보고서를 한줄한줄 꼼꼼하게 읽어갈때마다 감사보고서를 작성한 감사관은 "알려고 하지마라. 알면 다친다"는 투일 뿐이다. 감사관들조차 21그램의 관저공사 실체를 알고 싶어하지 않는 기색이 역력했다. 200페이지에 걸쳐 감사원이 말하고 싶은 내용은 딱 두가지 뿐이다. 하나는 김건희 여사와 가까운 21그램이라는 실내인테리어 공사업체가 관저의 모든 공사를 주관했다는 사실이다. 두 번째는 관저공사가 국가계약법 등 실정법을 모두 위반했음에도 불구하고 "관저공사의 시급성 때문에 모든 것이 용서된다"는 결론이다.
심지어 보고서는 행안부와의 관저 보수공사 1차 계약 주체가 21그램인지, 아니면 21그램이 데려온 설계업체 에이노마드라는건지 감사보고서 상 계약주체도 헛갈리게 만들었다.(36쪽). 2022년 5월 12일, 21그램이 대통령비서실에 견적서를 제출했다고 했다가, 변경계약 과정에선 느닷없이 에이노마드가 산출내역서를 제출했다고 기록한다. 21그램과 에이노마드가 무슨 관계인지 모르겠으나 엄연히 다른 법인이다. 관저계약이 주먹구구로 형성되다보니 감사보고서마저 일관성이 없는 엉터리다.
보고서 내용은 또 어떤가. 보고서는 육하원칙에 따라 기술하면 된다. 그런데 조사 내용을 축소하고 왜곡하려다보니 진술들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 관저공사에서 핵심적 인물은 행안부에서 대통령 비서실로 파견한 권준영 과장이다. 그는 현재 행안부 청사관리본부에서 과장으로 일하고 있다. 보고서에 그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보고서에서 그의 이름은 "비서실 공사감독자"이다.
이 비서실 공사감독자는 이 사건 진상규명에서 키를 가진 인물이다. 그는 비서관 C(김오진 당시 관리비서관)와 퇴직한 황모씨(관세청 출신)를 상관으로 두었다. 관저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그는 공사현장을 1~2주에 한번씩 방문하며 실무적인 일을 도맡은 것으로 확인됐다. 그가 5월 중순, 21그램에게 다음과 같이 공사범위를 지시했다고 보고서는 기록한다.(*5월 중순은 5월 15일을 가르키는데 감사원은 읽는 사람이 이해를 못하도록 '중순'이라고 표시한 것 같다. 보고서에 이런 경우는 한두번이 아니다. 정확한 일시, 장소야말로 조사의 기본이다.)
"2022년 5월 중순 확인한 (계획설계) 도면에 증축부가 그려져 있어서 실내건축공사업만으로는 공사를 할 수 없다고 얘기하였고, 기타 21그램의 면허로 수행할 수 없는 공사는 수행하지 말라고 (21그램에) 명확하게 이야기를 했습니다."(29쪽)
요체는 21그램은 '증축 공사' 자격이 없으므로 "증축공사를 하지마라"고 '명확하게' 21그램측에 지시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황당하다. 그가 증축공사 불가지시를 하고 불과 이틀 뒤인 5월 17일, 행안부에 제출된 21그램의 견적서에 '관저 주거동 증축공사 등 전체 공종'이 포함돼 있다.(28쪽) 발주처인 행안부 출신의 비서실 공사감독자가 '증축공사 엄금지시'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증축공사가 포함돼 있는 것이다. 심지어 6월 27일 에이노마드가 21그램과 변경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공사비를 23억 5천만원으로 산정한 산출내역서에도 "증축을 위한 철근.콘크리트,철골공사 포함"이라며 '증축'이 분명하게 적시돼 있다.
그렇다면 권 과장은 공사감독자로서 21그램이 '증축공사 금지'를 왜 어기고 강행했는지 당장 따지고 추가조치를 취했어야 마땅하다. 감사원도 권 과장에게 "왜 그러한 조치를 하지 않았는지 추궁해야 한다. 그러나 보고서에 이에관한 어떤 설명도 없다. 보고서 한쪽에 "비서실 감독자는 2022년 6월 당시 종합건설사가 증축공사를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은 21그램에게 들어 알고 있었으나, 해당업체가 원담인지는 7월경 2차 관저 보수공사 계약방식을 검토하면 알게 되었다"(62쪽)고 적고 있다.
5월 17일 행안부에 제출한 견적서에 '증축'이 포함돼 있는데, 공사감독자는 까맣게 모르다가 6월에 알게 됐다는 변명이다. 공사감독자를 허수아비 취급하고 또다른 '실력자'가 증축공사를 강행하도록 지시했다는 것인가? 감사원도 권 과장도 숨기기에 급급하다.
감사보고서가 모두 '사실'이라고 전제할 수도 없다. 권 과장이 감사원 조사과정에서 '증축공사가 이뤄진 사실을 사실대로 진술했는데도 감사원은 권 과장 진술을 누락하고 왜곡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관저공사 불법에 면죄부를 주기로 작정한 감사원 아닌가. 국회는 권 과장을 국정감사에서 기관증인으로 채택해 캐물어야 한다.
21그램은 한남동 관저공사를 시종일관 주도했다. 21그램은 현장사무소까지 운영했다. 유 모씨에게 현장소장직을 맡겼다. 유 씨는 권 과장과 함께 관저공사의 알파부터 오메가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인물이다. 경호처와 더불어 현장인부들을 모두 통제했던 이가 유씨이다. 감사원은 핵심 인물인 유 씨를 직접 조사하려했으나 유 씨가 끝내 응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감사원은 감사가 끝날무렵인 7월 하순쯤 겨우 유 씨에게 서면진술서를 보냈고 조사를 마쳤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감사보고서에 유씨의 진술내용은 단 한글자도 포함돼 있지 않다. 유 씨는 유령인물인 셈이다.
추가로 조그마한 사실을 하나 더 적는다. 관저 감사를 실무적으로 주도했던 손동신 감사원 행정.안전감사국 제 1과장은 올해 연말 공로를 인정받아(?) 해외연수를 떠난다고 한다. 확인하려고 전화했지만 그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