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랍도록 비슷한 남북 지도자의 말…'힘에 의한 평화'

남북에서 공명하는 '힘에 의한 평화'
北 핵위협→尹 '북한정권종말'→金 '서울·한국 영존 불가'
선 넘는 남북 지도자의 말 폭탄 '적대적 경쟁'
北, 美 대선 전후 ICBM·핵실험 도발 가능성

연합뉴스

"강력한 힘, 이것이 진정한 평화이고 우리 국가 발전의 절대적인 담보입니다."
 
누구의 말일까?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달 9일 북한 정권수립기념일 연설에서 한 발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시절부터 강조했던 '힘에 의한 평화' 발언과 아주 유사하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2022년 12월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적으로 규정한 남한에 대해 처음으로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언급한 뒤 북한의 대남 핵 위협은 일상화됐다.
 
김 위원장은 자신들의 국가 정체성을 핵을 보유한 전략국가로 규정하더니 지난해 연말 전원회의에서는 남북에 대해 '적대적인 2국가이자 전쟁 중인 교전국 관계'로 규정하기에 이르렀다. 
 
김 위원장이 '적대적 2국가'를 선언하며 남북의 동족성과 동질성을 부정한 것은 동족에 대한 핵 사용 가능성의 명분을 열어두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북한의 핵 위협이 일상화되자 윤 대통령은 지난 1일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 "북한이 핵무기 사용을 기도한다면, 우리 군과 한미동맹의 결연하고 압도적인 대응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그날이 바로 북한 정권 종말의 날이 될 것"이라고 강하게 경고했다. 
 
'북한 정권 종말' 발언은 사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4월 26일 윤 대통령과의 한미정상회담 뒤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당시 "북한이 미국이나 동맹, 파트너 국가들에 핵 공격을 가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으며, 그런 행동을 하는 어떤 정권이든 종말을 맞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이 오는 7일 최고인민회의에서 헌법 개정을 통해 남북의 '적대적 2국가' 관계를 제도화하는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국군의 날' 계기에 바이든 대통령이 썼던 '북한 정권 종말'이라는 경고를 보다 직설적으로 북한에 한 셈이다.
 
북한은 사실 지난 8월초부터 남한에 대한 언급 자체를 피해왔다. 대한적십자사의 수해지원 제의와 윤 대통령의 '8.15 통일 독트린'에 대해서도 아무런 반응 없이 무시로 일관했다. 적대적 2국가를 선언한 마당에 남한과의 상종 자체를 피한 것으로 해석됐다.
 
그러던 북한이 윤 대통령의 국군의 날 기념사에는 강하게 반발했다.
 
김 위원장은 윤 대통령을 비난하며 "적들이 '만약' 우리의 거듭되는 경고를 무시하고 한미동맹에 대한 과도한 '신심(信心)'에 넘쳐 한발 더 나아가 공화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무력사용을 기도하려든다면 가차 없이 핵무기를 포함한 수중의 모든 공격력을 사용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성남 서울공항 국빈행사장에서 열린 건군 76주년 국군의날 경축연에서 축하 인사말을 한 뒤 주먹을 불끈 쥐어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김 위원장은 특히 "핵보유국과의 군사적 충돌에서 생존을 바라며 행운을 비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할 부질없는 일일 것"이라며 "그러한 상황이 온다면 서울과 대한민국의 영존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위협의 강도를 높이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연말 전원회의에서 '만일의 경우'라는 가정 하에 '유사시 핵 무력 등 모든 물리적 수단과 역량을 동원한 남조선 전 영토 평정 방침'을 강조했는데, 윤 대통령의 '북한 정권 종말' 발언에 자극을 받아 위협 수준을 더 높이고 '서울과 대한민국의 영존 불가능'을 협박하고 나선 것이다.
 
남북의 지도자가 각각 '핵과 전략무기의 사용을 기도한다면'이라는 '가정(假定)'의 방식으로 서로를 향해 경고와 위협을 하는 말의 방식이 똑같다.
 
'힘'을 '평화'와 연결시키는 남북 지도자의 인식도 유사하다. 남북의 적대적 경쟁 속에 최고 지도자들의 발언이 이렇게 선을 넘고 있다. 
 
김 위원장의 말 폭탄은 오는 11월 미국 대선을 전후로 ICBM 발사와 7차 핵실험 등 고강도 무력 도발 가능성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남북의 최고지도자가 대립과 대결의 정점에 우뚝 서 있다"며 "최고 지도자의 대북관과 대남관의 인식 전환이 시급함을 보여 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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