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 갈등으로 인한 의료공백 사태가 7개월을 넘긴 가운데 정부는 의료계를 향해 이제는 대화를 통해 신뢰관계를 회복하자며 여·야·의·정 협의체 등에 '조건 없이' 참여해줄 것을 재차 촉구했다.
다만, 의료현장의 목소리가 담겨야만 진정한 의료개혁이 이뤄질 수 있다고 한 발 물러서면서도, 의료계가 의제 반영을 요구 중인 '2025년도 의대 증원'에 대해선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거듭 쐐기를 박았다.
권병기 보건복지부 필수의료지원관은 4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브리핑에서 "비상진료체계가 운영된 지 7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의료이용에 불편을 겪으신 국민들과 고된 현장을 지키고 계신 의료진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또 "이제는 의료계와 정부 간 갈등을 마무리해야 할 때"라며 "충분한 대화를 통해서 그동안 쌓여 있던 오해를 풀고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필수·지역의료 소생을 위한 '의료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며, 의료계를 "개혁의 핵심 파트너"로 표현하기도 했다.
권 지원관은 "의료계가 적극 참여해 주실 때 현장의 생생한 경험이 녹아들어간 실질적인 의료개혁이 추진될 수 있다"며 "여야의정 협의체와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 조속히 참여해 주실 것을 다시 한 번 간곡히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8월 말 발표한 '의료개혁 1차 실행방안'의 후속 조치로 내놓은 의료인력 수급추계위원회 신설과 관련, 의료계가 오는 18일까지 위원을 추천해줄 것 또한 요청했다.
정부는 대한의사협회(의협)와 전공의단체 등 공급자단체가 추천한 전문가로 위원회 절반 이상을 채우겠다며 구성상 의료계 의견을 적극 반영할 수 있는 구조란 점을 강조하고 있다. 중장기 의료 수요 등을 고려해 향후 의대정원 등을 과학적·전문적으로 추계하는 데 해당 직종의 특성을 충분히 고려하겠다는 취지다.
반면 의료계는 해당 위원회가 아닌 복지부 산하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에 실질적 정책 결정권한이 있다는 점을 들어 사실상 '거수기'에 불과한 기구가 될 거란 입장이다. 의협은 의대교수 단체 등 의료계 연석회의를 통해 지난 2일 위원 추천의사가 없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대해 권 지원관은 "정부는 의료인력추계위에 대한 의료계 우려를 고려해 수급추계 논의과정에서 의료계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도록 논의구조와 절차를 마련했다"며 "합리적 논의를 통해 구축되는 인력 수급추계 조정 모형을 활용해 결과를 도출하면, 의사결정기구인 보정심에선 이 부분이 충분히 존중될 것이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이어 "의료인력 수급추계는 의료계의 핵심적인 관심사항이었고 추계조정 시스템 자체가 객관적인 통계와 직역 의견을 반영해 운영될 것이기에 의료계의 우려 등 상당 부분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정부도 열린 자세로 임할 계획이다. 의료계도 추계 논의 틀에 참여해 함께 심도 있는 논의를 해주시길 바란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의료계가 의·정 대화 물꼬를 트기 위한 전제로 내세우고 있는 '2025년도 의대정원 증원'은 논의대상이 될 수 없다고 다시 못 박았다.
권 지원관은 내년도 의대 정원은 재논의할 수 없다는 정부 입장이 불변인지 묻는 질의에 "여야의정 협의체 참석에 전제조건을 지속적으로 내세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관련 정부 입장은 저희가 계속해서 말씀드린 바 있다"며 "협의체가 시작되면, 보다 소상히 말씀드리면서 협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날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한 대통령실 장상윤 사회수석비서관도 "이미 수시 입시가 진행 중이고 대입절차에 상당 부분 들어가 있기 때문에 사실상 활시위를 떠났다"며 내년도 의대정원 논의 가능성을 일축했다.
현 사태의 핵심 당사자로 꼽히는 전공의들이 여전히 2025년도 증원 철회 입장을 유지하고 있는 데 대해선 "정부는 전공의들이 복귀조건으로 얘기한 7대 요구 중 '의대정원 전면 백지화'를 제외하고 대부분 정책에 반영해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한 "어떤 형식이든 의료계와 대화하기를 희망하고 있고, (전공의단체를 포함한) 의료계가 대화의 장에 나올 수 있도록 다각적인 접촉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부연했다.
한편, 권 지원관은 지난달 30일 학생들의 휴학 신청을 일괄 승인한 서울대 의대의 결정이 타 대학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 "교육부는 집단행동의 일환으로, 동맹휴학은 정당한 휴학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의대교육이 조속히 정상화되도록 관계부처 간에 긴밀히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답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