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거장 구로사와 기요시 "내게 영화란 '영화적'인 것"[29th BIFF]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을 수상한 구로사와 기요시가 3일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 문화홀에서 열린 갈라 프레젠테이션 '클라우드', '뱀의길'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내 안에서 한 방향, 한 장르로만 직진하는 건 예전이나 지금도 상상하지 못했고, 상상하지 않고 있다."
 
장르 영화에서 독보적인 색채를 드러내고 있는 거장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 올곧게 '장르 영화'의 길을 걷는지, 노장이 되어서도 여전히 새롭고 독특한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지 그 이유를 밝혔다.
 
1955년 고베 출생인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간다천 음란전쟁'(1983)으로 데뷔한 뒤 '큐어'(1997)를 통해 국제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도쿄 소나타'(2008)로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심사위원상, '해안가로의 여행'(2014)으로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감독상을 받았으며 '스파이의 아내'(2020)로 베니스영화제 감독상을 받았다.
 
올해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에 '클라우드'와 '뱀의 길' 두 편을 들고 관객들을 찾아온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의 영예를 품에 안았다.
 
거장 봉준호 감독이 '광팬'이라고까지 표현하며 기요시 감독의 수상을 축하한 데 대해 감독은 "너무너무 감격했다. 봉 감독이 세계적인 거장으로 인정받으면서 내 손이 안 닿는 구름 위 사람이라고까지 생각했는데, 내 팬이라며 작품명까지 말해줘서 아직 날 친구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뻤다"라고 화답했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신작 '클라우드' 스틸컷.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신작 '뱀의 길'과 '클라우드'는 각각 산세바스티안영화제와 베니스영화제에 초청된 작품이다. '뱀의 길'은 일본에서 만든 '뱀의 길'을 프랑스에서 리메이크한 작품이며, '클라우드'는 집단 광기로 가득한 액션 스릴러로 두 편 모두 구로사와 기요시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먼저 '클라우드'는 액션 영화를 찍고 싶다는 바람에서 시작했다. 그러나 일본 내에서 장르 영화에 대한 투자가 원활하지 않은 데다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라 몇 년 동안 영화를 찍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그런 가운데 일본 젊은 배우를 대표하는 배우 중 한 명인 스다 마사키가 주인공으로 합류하며 상황은 급반전됐다. 투자 결정이 이뤄지고, 영화 촬영을 시작할 수 있었다.
 
감독은 "마사키는 일본에서 굉장히 인기가 많아서 너무 바쁜 배우 중 한 명이라 내 작품에는 안 와줄 거라 생각했다"라며 "그런데 배우로서 또 다른 도전을 하고 싶어 하던 시기에 내 제안이 잘 맞아떨어지지 않았나 싶다. 나에겐 행운이었던 거 같다"라고 고마움을 전했다.
 
한 해에 두 편의 영화를 선보인다는 건 젊은 감독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69세 노장은 해냈다.
 
5년 전 프랑스 프로덕션에서 기요시 감독에게 자신의 작품 중 다시 찍고 싶은 게 있다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감독은 주저하지 않고 '뱀의 길'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작품을 셀프 리메이크한 이유는 '내 작품'으로 재탄생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처음 각본 쓴 사람이 '링' 각본가로도 유명한 타카하시 히로시다. 그가 쓴 '뱀의 길'은 너무 잘 쓰이고 개성적인 각본이었다. 그렇기에 히로시의 성향이 많이 들어간 작품"이라며 "많은 작품 중 유독 이 영화는 내 작품이 아닐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에 내 작품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욕망이 발동했다"라고 설명했다. 주인공을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꾸고, 마지막에 큰 반전을 가져오는 등 오리지널과 차별화를 했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신작 '뱀의 길' 스틸컷.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클라우드'나 '뱀의 길'과 같이 '큐어' '회로' '로프트'(2005) '절규'(2006) '크리피: 일가족 연쇄 실종 사건'(2016) 등을 통해 호러 장르의 대가로 입지를 굳힌 그는 로맨스 영화와 SF 영화를 제작하며 장르적으로 국한되지 않은 감독임을 증명했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일본에 젊고 유능한 감독은 많지만, 나처럼 장르 영화를 목표로 하는 감독은 거의 없지 않을까 싶다"라며 "그런데 한국에는 나와 같은 작업을 하는 젊은 감독이 많아서 부러울 따름이다. 일본에서도 많이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곤란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라고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장르 영화' 'B급 영화'의 길을 묵묵히 걸어오며 '거장'으로 인정받은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의 매력을 한마디로 표현하기 굉장히 어렵다고 했다.
 
그는 "영화적인 무언가, 영화만으로 표현이 가능한 게 장르 B급 영화 아닌가 싶다"라며 "그 순간이 스크린에서 나오면 눈을 다른 데 두지 못하고 못 박힌 듯 봐야 하는, 영화가 끝나고 다시 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굉장히 익사이팅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게 장르 영화"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영화 중에는 사회적인 문제를 제기하며 신랄하게 비판하는 영화도 필요하고, 인간의 깊은 내면 파헤치는 것도 영화"라면서도 "가능성이 굉장히 많은 게 영화지만, 내게 영화란 영화적이어야지만 영화의 길과 가능성이 더 많아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영화로서면 표현할 수 있는 걸 해나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관객들은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작품을 보며 그의 색채를 뚜렷하게 느끼지만, 감독은 여전히 자신만의 스타일은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영화를 사랑하고, 영화를 보는 게 좋아서 감독이 된 거장은 여전히 자신의 작품은 다른 훌륭한 작품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아무리 열심히 찍어도 내가 생각한 일부밖에 달성 못 해요. 항상 생각하는 게, 어디서 봐도 부족하지 않은 영화를 찍고 싶습니다. 그래서 나는 일직선으로 한 방향만 추구하는 게 아니라 360도를 추구하면서 늘 빙글빙글 돌고 있는 거 아닌가 싶어요. 내 안에서 한 방향, 한 장르로만 직진하는 건 예전이나 지금도 상상하지 못했고, 상상하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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