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할 노릇이다. 절차적 하자가 발견됐지만, 아무런 제재를 가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7월 말부터 약 2개월 동안 대한축구협회의 축구 대표팀 감독 선임과 관련한 감사를 벌여왔다. 최근 홍명보 감독 선임을 둘러싼 의혹이 축구계를 넘어 국민적 관심사가 된 만큼 절차상 문제가 없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2일 문체부 감사 중간발표에서 축구협회가 홍 감독을 선임하는 과정에서 규정을 위반한 것이 밝혀졌다. 축구협회가 홍 감독을 선임하면서 권한이 없는 이임생 기술총괄이사가 최종적으로 감독 후보를 추천하고, 면접 과정이 불투명·불공정하게 이뤄지는 등 제대로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는 게 문체부의 설명이다.
이 기술이사는 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을 이끌던 정해성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장이 돌연 사의를 표명한 뒤 선임 작업을 주도했다.
이에 문체부는 "축구협회는 정 위원장의 요청에 따라 해당 역할을 기술이사에게 맡긴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감사 과정에서 정 위원장은 축구협회에 이와 같은 요청을 한 사실이 없던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기술이사에게 감독 추천 권한이 있었다는 축구협회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문체부는 축구협회가 면접 과정에서도 규정을 어겼다고 진단했다. 다른 외국인 감독 후보자와 달리 이 기술이사가 홍 감독과 면접 과정에서 '늦은 밤 자택 근처에서 사전 인터뷰 질문지, 참관인 없이 면접을 진행했고, 이 과정에서 감독직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문체부는 이와 관련해 "홍 감독 선임 과정에서 규정 및 절차를 위반한 점이 감사를 통해 확인된 만큼 문체부는 축구협회에 이에 대한 시정 방안을 마련할 것을 통보하고자 한다"고 전했다.
다만 이같은 절차적 하자에도 홍명보 감독 선임 계약 자체를 무효로 돌릴 수 없다는 게 문체부의 입장이다.
브리핑을 진행한 최현준 문체부 감사관은 "홍 감독 선임 과정에서 절차적 하자가 발견됐지만, 하자가 있다고 해서 홍 감독과의 계약이 무효라고 판단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이어 "축구협회의 독립성이 존중받아야 하고, 전문적인 분야이기 때문에 협회가 자체적으로 검토해서 국민 여론과 상식과 공정이라는 관점에서 자율적으로 판단할 걸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지난달 30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현안 질의와 문체부 감사를 주시하고 있다는 내용의 공문을 축구협회에 보냈다.
해당 공문에는 FIFA 정관 제14조 '회원 협회는 독립적으로 운영돼야 한다. 제삼자의 간섭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명시했고, 제15조 '각 협회는 모든 정치적 간섭으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FIFA는 이를 위반한 협회에 대해서는 자격 정지 등 징계를 내린다.
앞서 2015년 쿠웨이트 정부가 자국 체육단체의 행정에 개입할 수 있도록 체육 관련 법률을 개정하자 FIFA는 쿠웨이트축구협회의 자격을 정지해 국제대회 출전권을 회수해 갔다. 이에 따라 쿠웨이트는 2018 러시아 월드컵과 2019 아랍에미리트 아시안컵 예선 잔여 경기를 몰수패 처리당했다.
이를 두고 축구협회 내부에서는 '선을 넘은 게 아니냐', '최악의 경우에는 월드컵에 못 나갈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 바 있다.
지난달 24일 국회 문체위 현안 질의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박문성 축구 해설위원은 이 내용을 언급하며 축구협회를 향해 작심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정치권이 축구협회 인사권에 자꾸 개입할 경우 'FIFA가 월드컵에 못 나오게 한다'고 겁박을 준다"면서 "팬들의 눈치도 보지 않고 국민들이 선출한 국회의원의 눈치도 보지 않으면 대체 어디 눈치를 보겠다는 건가"라고 질타했다.
K리그 감독 사이에서도 이에 관한 설전이 오갔다.
이정효 광주FC 감독은 "이렇게 월드컵에 나가서 뭐 할 것인가"라며 "먼저 쇄신하고 정확하게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갈 건지에 대해서 명확하게 짚은 다음에 일을 하는 게 맞다고 본다. 그다음에 월드컵을 생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치하시는 분이나, 유튜버나 정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뭔지 지혜롭게 판단해야 한다. 월드컵에 못 나가면 누가 책임질 거냐"는 김판곤 울산 HD 감독을 겨냥한 듯한 발언이었다.
일단 문체부가 홍 감독 선임에 대한 직접적인 제재를 하기는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다만 문체부 감사가 아직 진행 중인 만큼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총책임자인 정몽규 축구협회장이 4선 연임 도전을 포기하고 물러난다면 성난 여론은 어느 정도 가라앉을 것으로 보인다.
유인촌 문체부 장관은 "기본적으론 (4선이) 안 되나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가 허가하면 할 수 있다"면서도 "공정위가 정말 공정하다면 다시 출마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는 게 명예롭지 않나 생각한다"며 사실상 불출마를 요구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정치권이 축구협회에 개입했다고 볼 수 있지만, 프랑스 축구 대표팀의 사례를 보면 크게 우려할 부분은 아니다.
프랑스는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조 최하위에 머물렀는데, 이 때문에 레몽 도메네크 감독과 장 피에르 에스칼레트 프랑스 축구협회장이 국회 청문회에 출석해야 했다.
당시 제프 블레터 FIFA 회장은 "사르코지 대통령을 비롯한 프랑스 정부는 축구협회에 정치적으로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프랑스 의회는 "내부의 일이니 우리가 해결하겠다"며 맞받아쳤고, 결국 FIFA로부터 어떤 제재도 받지 않았다.
문체부는 이달 말 정 회장의 4선 연임 도전 관련 문제, 천안축구종합센터 건립 과정에서 600억대 마이너스 통장을 문체부 승인 없이 개설한 문제 등 축구협회 운영 논란에 대한 감사 결과를 최종 발표할 예정이다. 축구협회를 향한 거센 추궁은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