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여사의 '공천 개입' 의혹에 이어 '한동훈 공격 사주'의 용산 배후설까지 등장하면서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 간 불협화음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당내 친한계 인사가 '배후'를 거론한 데 이어 한 대표는 직접 전직 용산 대통령실 관계자에 대한 감찰 조사를 지시했고, 무산되자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한 대표로선 드라이브를 걸었던 '여야의정(與野醫政) 협의체'가 무산되면서 정치적 타격이 예상되는 시점에서 자신과 관련해 지난 7·23 전당대회 과정에서 제기된 공세를 계기로 돌파구를 모색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은 직접적인 대응은 삼가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불쾌한 기색이 역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2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만찬에서 한 대표가 불참한 가운데, 윤 대통령과 여권 고위 관계자들이 보인 화기애애한 모습은 한 대표의 고립된 처지를 보여주는 단면과도 같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한동훈 "김대남 감찰" 반격…용산은 '한동훈 패싱' 만찬
한 대표는 이날 서범수 사무총장에게 김대남 서울보증보험 상근감사위원에 대한 감찰을 지시했다. 한지아 수석대변인은 이날 "보수정당 당원이 소속 정당 정치인을 허위사실로 음해하기 위해 좌파 유튜버와 협업하고 공격을 사주하는 것은 명백하고 심각한 해당행위이자 범죄"라며 "당 차원에서 필요한 절차들을 통해 진상을 규명하고 그 결과에 따라 엄중히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앞서 김씨는 지난 7월 전대를 약 2주 앞둔 같은달 10일쯤 유튜브 채널 '서울의소리'와의 통화에서 총선 당시 여의도연구원에서 한 대표에 대한 이미지 여론조사를 진행한 것을 전달하며 "(한 대표가) 대통령 되려고 비대위 때부터 수작했다고 (보도)하면 된다"고 전달한 바 있다. 그는 "너희가 이번에 그것을 잘 기획해서 (한 대표를) 치면 아주 (김건희) 여사가 좋아하겠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 같은 내용의 통화 녹취가 폭로되자 당내 친한(친한동훈)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대통령실을 겨냥한 '용산 배후설'이 제기됐다. 김씨는 윤석열 대통령의 팬클럽에서 활동하다가 2022년 대선 캠프에 합류했고, 이후 지난해 10월까지 대통령실 시민소통비서관실 선임행정관으로 근무했기 때문이다. 7·23 전당대회에서는 '친윤'(친윤석열) 후보였던 나경원 의원을 도왔고, 이후엔 공공기관 감사로 취업했다.
김종혁 최고위원은 "한동훈에 대한 공작을 지시한 김대남의 배후는 누구인가. 김대남을 선택한 자리로 보내줄 정도로 막강한 실력자는 누군가. 수사를 통해 누가 배후이고 어떤 공작이 있었는지 명명백백히 밝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지호 전략기획부총장 또한 "(김씨가 사주한 내용은) 총선백서팀들이 여의도연구원 관계자 조사 과정에서 취득한 내용인데, 김씨는 그 정보를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며 "어떻게 알고 보도 사주를 했나 연결고리를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대표 또한 전날 본인의 페이스북에 "정부투자 금융기관 감사로 재직 중인 인물이 좌파 유튜버와 통화하면서 나를 공격하라고 사주했다"며 "국민들과 당원들이 이 상황을 어떻게 보실지 부끄럽고 한심하다"고 적기도 했다.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김씨를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대통령실은 직접적인 대응은 삼가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불쾌한 기색이 역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윤 대통령은 한 대표를 '패싱'하고 추경호 원내대표와 김상훈 정책위의장 등 원내지도부와 여당 소속 국회 상임위원장과 간사들을 대통령실로 초청해 만찬을 진행하기도 했다. 한 대표의 거듭된 '독대 요청'도 묵살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건희 사과' 이어 '김대남 녹취'…尹-韓 갈등 재점화
친한계를 중심으로 김건희 여사가 직접 사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한 대표는 그간 명품백 수수 의혹에 대해 김 여사가 사과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윤 대통령과의 독대 자리가 성사될 경우 김 여사 문제를 논의하겠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는 지난 30일 기자들과 만나 김 여사 사과 요구에 대해 "일관된 입장을 밝혀왔다"고 말했다.
특히 다음 주(7일)부터 시작되는 국정감사에 대비해 야권의 공세를 낮추기 위해서라도 김 여사의 사과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신 부총장은 "(김 여사의) 진솔한 사과, 여론의 분노 게이지를 낮추는 식의 사과가 이뤄진다면 (야권 공세를) 방어하고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대표 측근인 장동혁 최고위원도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시는 부분이 있다면 어떻게든 해소가 돼야 한다. 사과든,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든 정치적으로 해결할 필요성은 있다"며 "김 여사가 직접 표명할 필요가 있다. 시기는 이런저런 것들을 고려할 수도 있겠지만 빠를수록 좋다"고 언급했다.
계파색이 옅은 소장파 초선인 김재섭 의원 또한 이날 본인 페이스북을 통해 "대통령실은 하루빨리 제2부속실을 설치하거나 특별감찰관을 임명해야 한다. 궁색한 핑계도 하루 이틀"이라며 "김건희 여사가 사과하셔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오늘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사건이 불기소 처분됐다"며 "법적으로 처벌하지 못한다는 것이 김 여사에게 정치적, 윤리적 책임이 없다는 의미도 아니다. 여당 의원들의 침묵을 김 여사에 대한 이해나 동조로 착각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반면 친윤계를 중심으로는 김 여사 사과론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국정감사 시기에 김 여사가 사과할 경우 오히려 논란을 키워 야당에게 빌미만 줄 수 있다는 이유다. 5선 중진인 윤상현 의원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수사가 완료가 안 됐고, 섣불리 사과할 타이밍이 아니다"라며 "사과 한마디 하면 야당은 국감에서 '잘못을 시인했다'며 다음 단계로 또 나아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尹, '김건희 특검법' 또 거부권…與 '8표' 이탈 가능성은?
한편 윤 대통령은 이날 김건희 여사 특검법과 채 상병 특검법, 지역화폐법 등에 대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했다. 김 여사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는 이번이 두 번째다. 올 초에는 '총선용 악법'이라는 이유로 국회로 돌아간 뒤 재표결을 통해 폐기된 바 있다.
하지만 이후 명품백 수수 의혹이 터지고, 검찰의 '황제 조사' 의혹이 불거지면서 논란이 더욱 커졌다. 두 차례 열린 수사심의위원회에서 명품백을 수수한 김 여사는 불기소를, 명품백을 제공한 최재영 목사는 기소를 권고하는 등 상반된 결과가 나오면서 여론이 악화됐다. 검찰이 최종적으로 두 사건을 모두 불기소 처분하면서 논란은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국회 재표결 전망은 오는 4일 국회 본회의에서 친한계의 이탈 여부에 달렸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의 국회 본회의 재의결은 재적 의원 과반 참석과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전체 108명의 여당 의원 중 8명이 이탈하면 재의표결은 가결 처리된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재의하게 되면 국민의힘 의원들은 다시 한번 하나로 똘똘 뭉쳐 폐기시킬 것"이라며 '당론 부결' 방침을 밝혔다. 다만 표결이 무기명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마냥 부결을 장담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