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빈은 무너졌다. 반면, '빅게임 피처'의 명성은 그대로였다.
두산 베어스는 2일 오후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4시즌 KBO 리그 KT 위즈와 와일드카드 결정전 1차전에 에이스 곽빈을 선발투수로 내세웠다. 정규리그 4위 두산은 1차전을 잡으면 곧바로 준플레이오프행 열차에 탑승하는 유리한 고지에서 포스트시즌을 시작했다.
곽빈은 그동안 포스트시즌 무대에서 약한 편이었다. 가을야구 승리 경험이 없고 통산 평균자책점은 6.00이다. 하지만 올해 곽빈의 위상은 달라졌다. 15승으로 원태인(삼성 라이온즈)와 함께 리그 공동 다승왕에 올랐다.
우려보다는 기대감이 컸다. 이승엽 두산 감독도 "곽빈이 5~6이닝을 버텨주는 게 최상의 시나리오"라고 했다. 발라조빅을 불펜에 대기시키면서 곽빈이 조기 강판하면 팀내 두 번째 투수로 기용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것이었다.
그런데 최악의 상황이 실제로 벌어졌다.
곽빈은 1이닝 5피안타 2볼넷 4실점을 기록했다. 자신의 통산 세 번째 와일드카드 결정전 무대에서 최악의 결과를 낳았다.
곽빈은 리드오프 김민혁을 볼넷으로 내보낸 뒤 4연속 안타를 허용했다. 1회에만 안타 5개를 얻어맞고 4점을 내줬다. 2회에도 마운드에 올랐지만 선두타자 심우준에게 볼넷을 허용하자 이승엽 감독은 곧바로 투수를 발라조빅으로 교체했다.
발라조빅은 4이닝 동안 안타 1개만을 내주며 6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해 두산의 희망이 됐다. 그러나 문제는 타선에 있었다. KT가 자랑하는 '빅게임 피처' 윌리엄 쿠에바스를 전혀 공략하지 못했다.
쿠에바스는 6이닝 동안 볼넷 없이 4피안타 9탈삼진 무실점 호투로 두산 타선을 완벽하게 틀어막고 KT의 4-0 승리를 견인했다.
타자 몸쪽과 낮은 코스의 스트라이크존 경계를 노리는 제구력이 일품이었다. 6회말 1사 1,3루 위기에서 두산의 4번타자 김재환을 상대로 낮은 코스 슬라이더를 던져 루킹 삼진을 잡아낸 장면은 이날 경기의 백미였다.
쿠에바스는 5년 연속 가을야구 무대를 밟은 KT와 늘 함께했던 투수다. 포스트시즌 통산 6경기에 등판해 3승 1패 평균자책점 2.87을 기록했다.
KT가 우승한 2021시즌은 그가 '빅게임 피처'라는 별명을 얻은 해다. 두산과 한국시리즈에서 7⅔이닝 1실점 호투를 펼쳤고 그에 앞서 삼성 라이온즈와 1위 결정전에서 압도적인 기량으로 팀의 한국시리즈 직행을 이끌었다.
이강철 감독의 기대를 뛰어넘는 호투였다. 이강철 감독은 경기 전 "오늘과 내일은 선발에 큰 의미를 두지 않으려고 한다. 당장 오늘 이기는데 집중할 것"이라며 "쿠에바스도 지켜봐야 한다. 많은 이닝을 소화했고 타순이 한 바퀴 돌면 구위가 떨어진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쿠에바스의 몸 안에는 마치 '가을야구 DNA'가 심어져 있는 듯 했다. KT는 쿠에바스의 호투를 발판으로 한 투타의 조화에 힘입어 5위 결정전에 이어 또 한 번 벼랑 끝 승부에서 살아남았다. 이제 한 번만 더 이기면 KBO 사상 최초로 5위 팀의 와일드카드 반란이 현실로 이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