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보험접수가 낫지"…회사가 식약처에 신고하기도
▶ 글 싣는 순서 |
①"치아 부속물이 이물질?"…진화한 '블랙컨슈머', 외식·유통업계 속앓이 (계속) |
2일 프랜차이즈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2일 부산의 한 햄버거 프랜차이즈 매장에서 아이스커피를 포장 주문한 A씨는 커피를 다 마신 뒤 컵에서 머리카락이 나왔다며 회사에 보상을 요구했다.
이에 사측은 환불 무료쿠폰을 제공했지만 A씨는 물질적인 보상을 요구했다. 회사가 난색을 표하자 A씨는 다음날 복통으로 병원 응급실에서 링거를 맞고 약을 받아왔다며 다시 보상을 요구했다. 결국 이 프랜차이즈 업체는 A씨의 보험접수를 진행했다.
자신의 치아에서 빠진 부속물(임플란트 나사, 아말감 등)을 식품에서 나온 이물질이라고 주장하는 황당한 경우들도 있다.
취재 결과, 국내 대표 햄버거 프랜차이즈 업체에는 2022년 7건, 2023년 9건, 2024년 9월까지 14건이 이같은 오인 사례로 집계됐다.
업계에서는 블랙컨슈머가 나타나도 즉각 대응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고 푸념한다. 차라리 보험 접수라도 할 수 있으면 다행이라고 말할 정도다. 그러면 적어도 보험사를 통해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보험 처리가 그래도 제3자의 판단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그나마 낫지, 고객들이 요구하는 보상금은 일종의 합의금과 같은 것"이라며 "떳떳하지 않은 고객들의 경우 '나 아는 기자 있다'면서 SNS에 이물질을 올리거나 온라인으로 곧바로 제보해 난처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시달림 끝에 먼저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에 신고하는 업체들도 많다고 한다. 식약처 관계자는 "제조 공정 과정에서 나올 수 없는 이물인데도 불구하고 피해에 대한 보상을 과도하게 요구하는 경우 (업체가) 차라리 식약처로 신고를 해 정확한 절차에 따른 조사 결과를 소비자에게 통보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커머스업계도 속앓이…'무료반품' 악용 사례 계속
블랙컨슈머들의 행태는 식당 밖에서도 벌어진다. B씨는 지난 7월 부산의 한 프랜차이즈 DT(Drive Thru) 매장에서 운전 미숙으로 차량 사고를 낸 후 보험 접수를 해달라며 해당 업체 고객센터에 50차례 이상 민원 신고를 넣었다.
사측이 요구를 거절하자 B씨는 결국 한국소비자원을 찾았다.
한국소비자원에 신고가 들어가면 업체 입장에서는 사실관계를 따지기 전부터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소비자원의 경우 소비자와의 커뮤니케이션 과정 전반은 물론, 회사가 대응한 모든 것들에 대해 정리해서 달라고 한다"며 "기본적으로 소비자의 목소리에 힘을 싣고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기관 차원에서는 (신고 단계에서) 소비자가 블랙컨슈머인지 알 수가 없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진행 경과라든지 증빙 자료는 양 당사자 모두에게 동일하게 요청하고 있고, 거기에 따라 사실관계를 확인해서 민원을 처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블랙컨슈머 문제는 비단 프랜차이즈업계 만의 일이 아니다.
올 초 서울남부지법 형사14단독(부장판사 홍윤하)은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20대 여성 이모씨에게 벌금 400만원을 선고했다. 쿠팡에서 주문한 상품을 환불 받으면서 물건은 돌려보내지 않는 방식으로 모두 481회에 걸쳐 832만원의 재물을 편취한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쿠팡의 무료 반품 정책을 악용한 사례다. 이에 쿠팡은 지난해 1월부터 '묻지마 환불' 반품 관련 규정을 신설해 블랙컨슈머에 대한 초강경 대응에 나서기도 했다.
반품과 재발송이 빈번한 이커머스 업계의 특성상 블랙컨슈머로 인해 다른 소비자들이 피해를 입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아기 엄마인 C씨는 최근 한 이커머스 업체에서 기저귀를 구매했지만 개수가 부족했다. 미개봉한것 처럼 반품한 다른 소비자 때문이다.
C씨는 "미개봉 상품이라고 해서 구매했는데 기저귀 빼는 쪽 비닐이 뜯어져 있어서 혹시나 하고 개수를 세어보니 4개가 부족한 상태였다"면서 "반품 상품의 품질 관리는 해야겠지만, 아기를 키우는 입장에서 기저귀 같은 민감한 상품을 뜯어서 써보고 미개봉한 것처럼 반품한 다른 소비자에도 화가 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