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30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 김건희 여사·채 상병 특검법 재의요구안(거부권 요구안)을 의결하면서 국민의힘은 다시 한 번 '이탈표 정국'에 휘말렸다. 하지만 국민의힘으로서는 이전 거부권 행사 때보다 정무적 부담감은 한층 올라갔다. 김건희 여사 리스크는 지난 12일 도이치 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 항소심 선고를 기점으로 증폭됐고 신지호 당 전략기획부총장의 '뺨 때리고 싶다' 발언으로 친윤-친한계의 갈등이 노골적으로 터져나온 상태다.
이날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윤 대통령의 24번째 거부권 행사가 임박하면서 국민의힘 의원들 사이에서 특검법 반대에 대한 부담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에 원내 지도부에는 친한계 이탈이 이전보다 늘어날 수 있다는 경계심마저 퍼지고 있다. 더욱이 당과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도 동반 최저치를 기록했을 만큼 여론도 악화일로다.
"특검 반대할 명분 달라" 아우성…출장 자제령 내린 與지도부
윤 대통령은 이날 정부의 재의요구권 의결에 따라 빠르면 오는 2일 이를 재가할 예정이다. 대통령실은 거부권 행사를 기정사실화하면서도 "아직 시간이 있다며" 법적 시한인 다음달 4일 안에 재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야권에서는 주말인 5일에라도 본회의를 열고 재의요구안을 상정하겠다는 각오다. 김 여사의 총선개입 의혹 공소시효가 이달 10일 끝나는만큼 그 전에 표결에 붙이겠다는 것이다.국정감사 전에 재표결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국민의힘 내에서는 김 여사 사과 필요성이 더욱 공공연하게 거론되고 있다. 친한계 내에서는 "김 여사 특검법에 대한 여론이 워낙 높은 데다 사실상 대통령 본인 가족과 관련된 의혹을 여당이 감싸주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운 일"이라며 "사과라도 해야 여당도 방어해줄 명분이 생길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친윤계 의원들 사이에서 조차 간단한 입장 표명 정도는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는 모습이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 23일부터 3일간 전국 성인 1005명에게 물은 결과, 야당이 추진하는 김 여사 특검법에 대한 찬성 여론은 65%, 반대 여론은 24%였다. 특히 여당 지지세가 높은 대구·경북(TK)과 부산·울산·경남(PK) 지역에서도 특검법 찬성 여론이 각각 58%로 과반을 넘어섰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원내 지도부 역시 이탈표 관리에 주력하고 있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최근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가부(可否)를 잘못 쓰는 등 무효표를 만들지 말라'고 직접 당부했다고 한다. 또 국정감사가 끝나더라도 언제 재표결이 있을지 모르는 만큼 해외 출장을 자제해 달라고 한 것으로도 전해졌다.
다만 재의표결 결과에 대해서는 "이탈표는 없을 것"이라는 것이 친윤계는 물론 친한계의 중론이기도 하다. 특검법의 최종 목적지는 대통령 탄핵인 만큼 이탈표가 늘면 괜히 당내 자중지란에 대한 책임을 친한계가 떠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친윤-친한계 간 갈등은 신 전 부총장이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추 원내대표까지 겨냥하면서 극에 달한 상태다.
대통령실-여당 공멸 중? '이탈표' 한 표라도 늘까 노심초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여당 동반 최저치를 기록할 정도로 여권에 부정적인 여론은 친한계가 직면한 딜레마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자중지란에 대한 책임을 떠안기도 부담스럽지만, 김건희 여사 리스크에 윤 대통령은 물론 당 지지율이 곤두박질 치고 있는 점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여론의 흐름은 한 대표 개인에 대한 당 안팎의 실망으로도 이미 이어진 상태다.
리얼미터가 이날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 윤 대통령은 지지율 25.8%, 국민의힘은 29.9%를 기록했다. 국민의힘 지지율이 20%대를 기록한 것은 현 정부 출범 이후 처음이다. 윤 대통령의 국정 수행 긍정 평가 역시 최저치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일부 의원들이 '보여주기'식으로라도 이탈표를 던질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오는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당내에서는 "표면적으로는 단일대오를 유지하고 있지만 심리적으로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평가도 심심찮게 나온다.
특히 지난 재표결 때보다 1표라도 늘면 또 다른 갈등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 지난 7월 채상병 특검법 재표결 시 이탈표는 4표로 추산됐다. 이는 지난 22대 국회에서 있었던 첫 표결 때보다 늘어난 결과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당시 "결속이 깨졌다고 보고 싶지 않다"고 끝까지 단일대오를 강조하기도 했다.
이탈표가 늘어날 경우 단일대오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는 표면적인 해석 외에 친윤-친한계가 결별 수순을 밟고 있다는 신호로 읽힐 여지도 있다. 이에 대해 한 국민의힘 재선의원은 "이번 표결에서 1표라도 늘면 민주당은 대통령 거부권을 무력화할 때까지 법안을 반복해 통과시키고 이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 동반 하락을 유도하려고 하지 않겠느냐"며 "그렇게 되면 당내에서도 '대통령실과 갈라서야 한다'는 압력이 높아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