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제를 시행했을 때 대표들이 월급을 못 주면 어떡하냐, 우리 회사 다 망한다 하면서 (정말) 망한다면 그분들은 사실 엔터테인먼트를 운영하시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국내에 5700개의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등록돼) 있다는데, 아동·청소년의 꿈을 볼모로 잡아 이들의 피와 땀으로 돈을 버는 형태가 얼마나 많은지… 이것(월급 지급)조차 못 한다면 대표자 자격이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전 틴탑 멤버 방민수)
열아홉 살에 데뷔해 서른두 살까지 그룹 틴탑(TEEN TOP)에서 캡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던 전 멤버 방민수의 발언이다. '대형 기획사'가 아닌 대부분의 소속사는 아이돌 그룹을 키우는 데 드는 돈을 회사가 책임지고 데뷔 후 발생하는 수익으로 갚는 방식을 채택한다. 이 때문에 많은 아이돌은 일을 하고도 본인 몫의 돈을 가져가지 못하는 기간을 거쳐야 한다. 방씨가 토론회 내내 '월급제의 필요성'을 강조한 이유다.
아동청소년미디어인권네트워크(아미넷)와 더불어민주당 이기헌·김준혁·박수현·임미애·장철민 의원실이 공동 주최한 '국회에 간 아이돌, K팝의 성공 뒤에 가려진 아동·청소년의 노동과 인권' 토론회가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4간담회의실에서 열렸다. 방씨 외에도 브레이브 걸스(Brave Girls) 출신으로 현재 솔로 가수로 활동 중인 노혜란씨, 전 단발머리 멤버이자 현재 K팝 연구자로 활동 중인 허유정씨가 참석했다.
'국회에서 아이돌 당사자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건 처음이지 않을까'라고 한 사회자의 말대로, 전·현직 아이돌이 얼굴을 드러내고 실명으로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K팝 신의 문제점을 짚는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자리였다. 토론회의 방향 역시 전·현직 아이돌이 직접 말하는 '실태'를 살펴보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현재 작가로 활동 중인 방민수 작가는 "주목받지 못한 99%의 잘되지 못한 아이돌"의 상황을 이야기하겠다며, "왜 (K팝 신은) 이렇게 기형적인 구조를 가지고 성장하고 있을까? 그 이유 중 하나가 열심히 일하는 것도 일하는 건데 제대로 된 임금을 받지 못하고 투명하지 못한 정산 속에서 저희가 활동하는 게 가장 문제점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방 작가는 "잘 되지 못해도 알바라도 할 수 있느냐, 그것도 안 된다. 아이돌은 다가가지 못할 것 같은 신비한 존재이니 알바한다는 것 자체가 아이돌 상품성을 훼손할 수 있다고 회사는 생각한다. 계약금 300만 원 전후로 받고 7년 동안 자기 의식주를 해결해야 한다. 99%의 아이돌이 부모님에게 돈을 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너는 네 발로 나가지 않았냐' '너는 어느 정도 잘 벌지 않았냐'라고들 하고, 과연 내가 이야기하는 게 맞을까 생각했지만 저는 그만둔 사람이기도 하고 이런 제가 이야기하지 않으면 사실상 현 실태에 대해서 이렇게 적나라하게 말해줄 사람이 없을 거 같아서 욕먹을 걸 알지만 여기 나오게 됐다. 아이돌들 연습생들에게 실질적으로 제일 현재 필요한 학습권의 보장이 아니라 최소한의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는 그런 금전적인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부연했다.
다만 '월급제'에 관해서는 더 깊이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는 게 중론이다. 김현목 문화체육관광부 대중문화산업과 과장은 "월급제 논의가 나왔는데 월급을 받으면 (아이돌에게) 노동자성이 생기는 문제가 된다"라며 "아티스트가 아닌 근로자가 되면 (논의가) 노동법으로 넘어간다"라는 점을 짚었다.
브레이브걸스 전 멤버 노혜란씨는 아이돌이 주체성을 가지기 어려운 환경의 어려움을 언급했다. 그는 "아이돌은 을의 입장이다. 회사가 어디로 가겠다, 우리가 이만큼 투자했다 하면 (저희는) 의견을 내놓는 게 아니라 회사가 만든 것을 잘 따라가 줘야 하는 입장이다. 지갑도 핸드폰도 없이, 세상과 차단된 부분이 많아서 본인 의견이나 생각이 묵살되기 쉬운 게 있다"라고 바라봤다.
노혜란씨는 "이번에 앨범을 처음부터 끝까지 준비해 보면서, 아이돌도 본인이 어떻게 음악을 만들고 (이후 과정을) 어떻게 해나가는지 배운다면 회사가 없더라도 본인 혼자서 할 수 있는 자생력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이돌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자생력이 없다는 점인데, 이런 게 개선됐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밝혔다.
전 단발머리 멤버이자, 현재 문화예술경영학 부문을 공부하며 K팝 연구자로 변신한 허유정씨는 "(회사는) 미성년자인 아이돌 연습생을 보호할 책임이 있지만, 교육적 지도를 할 사람이 없다"라며 아이돌 연습생들이 △비전문적 관리와 일관성 없는 교육 방식 △관리 책임 회피 및 연습생 간 갈등 조장 △권위주의와 감정노동에 노출돼 있다고 지적했다.
허유정씨는 미성년 연습생이 보호받지 못하고, 심리적 억압과 불합리한 처우를 받으며,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못하는 점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실적으로 99.9%의 연습생이 데뷔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남은 인생을 책임지지 못할 거라면 이들을 방치하거나 착취하는 건 무책임하다"라고 힘주어 말한 허씨는 "저도 (연습생과 아이돌 활동 등으로) 8년 동안 낮에 햇빛을 보지 못하다 보니 뼈 나이가 80살이라고 하더라"라며 "꿈을 키우는 환경은 권리를 지키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아동·청소년 연예인의 인권 보호를 위해 고안된 법안이 바로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 개정안이다. 더불어민주당 유정주 의원의 대표 발의로 21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까지 갔으나, 회기가 끝나 폐기됐다. 이 법안은 △노동권·학습권·건강권 등 권리 보호 명시 △취약한 제작 현장을 관리하기 위해 청소년인권보호관을 둘 것 △용역 제공 시간을 연령대에 따라 세분화해 12세와 15세 기준으로 그 미만 연령대 아동·청소년에 대한 보호 강화 3가지를 골자로 한다.
하지만 현장에서 '일치된'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김 과장은 계약기간을 7년으로 명시한 표준계약서 개정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기획사에게 'K팝 산업 망하게 하려고 하냐'라는 비판을 들었다"라고 전했다. 이어 "기획사끼리도 다르다. 큰 기획사, 작은 기획사, 배우냐 가수냐 등 업종에 따라서도 굉장히 다르다. 처한 상황에 따라 아티스트, 연습생 의견도 다르다. '우린 데뷔만 시켜주면 뭐든 하겠다' 하는 분들도 있어서"라고 말했다.
김 과장은 "기획사들이 최근 10년간 외형적으로는 많이 성장했지만 마인드는 1990년대 말이나 2000년대 초에 머물러 있는 분들도 많다. '산업이 같이 성장해야 한다'라고 생각한다면 음악, 무용, 영상, 미디어 등 정말 다양한 재능이 (업계에) 들어와야 하지만, 중소 소속사가 많다 보니 단기 이익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라며 "K팝의 화려함 이면에는 연습생들과 당사자들의 땀, 노력이 있었다. 다 같이 보호되고 커갈 수 있게 관심과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라고 밝혔다.
엔터테인먼트 업계 현업자로 익명 참석한 아이돌 트레이너 A씨는 내부에서 나타나는 긍정적인 변화에 관해 언급하며 "저희도 조금 발전하고 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다"라고 당부했다. A씨는 "요즘은 초1도 연습생을 하는데, 중1 때까지는 일반 학생들과 배울 수 있게 사회성 길러주는 위탁 교육을 한다"라며 "(학업도) 자퇴시킨다기보다, 성적에 제약을 걸기도 한다. (공부를) 보험용으로 미래 대비할 수 있게. 요즘은 공부 잘하는 것도 아이돌의 경쟁력이라서 대학도 가게 한다"라고 말했다.
A씨는 "엔터에서 수업하는 시간은 하루 3~5시간 정도다. 그런데 부모님들이 연락해서 '더할 수 없냐' '여기 엔터는 이것도 해 준다'라고 하신다. 비용이 더 들 수밖에 없다고 해도 '저희는 괜찮다'라고 하시고, 어린 친구들의 경우 어머님이 주도권을 쥐어서 (회사가) 마음에 안 들면 계약금 물고 파기하고 나가시기도 한다. 저희가 원치 않아도 (장시간) 수업할 때도 있다"라며 "또, 키가 덜 자랄 수도 있어서 무리한 다이어트를 시키지 않으려고 한다. 너무 '데뷔 직전의 (극단적) 다이어트'만 이야기되는 것 같다"라고 전했다.
이기헌 의원은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사람'의 문제를 중심에 놓고 법 개정하고 제대로 바꿔내고 기본적인 최소 권리를 위해 국회가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다"라며 "'생존권' 문제다. 사람이 일단 살고 봐야 한다. 그것이 아이든, 어른이든, 기본적인 자기 존재감이 무너진다면 예술인도 아이돌도 아이도 어른도 없다. 22대 때는 어떻게든 통과시켜서 기본적인 최저 기준선이라도 만들어 보겠다는 각오의 말씀 드리겠다"라고 발언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