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상급종합병원을 중환자 중심으로 개편하기 위해 3년간 10조원의 건강보험 재정을 추가 투입하겠다는 방침을 두고 시민사회에서 비판이 일고 있다. 현재 상급병원의 위기가 전공의 집단사직 등 정부의 의료정책 실패로 발생한 것인데, 건강보험 재정으로 손실을 메우려는 건 월권행위라는 지적이다.
29일 참여연대는 논평을 통해 "국민들의 보험료로 운영되는 건강보험을 정권의 금고처럼 사용하는 윤석열 정부를 규탄한다"며 "자신의 정책 실패로 야기된 대형병원의 손실부터 건강보험 재정으로 메워주는 이번 결정은 문제"라고 비판했다.
지난 27일 정부 의료개혁추진단은 상급종합병원에 연간 약 3조3천억원, 3년간 총 10조원의 건강보험 재정을 투입해 현재 50%인 중증진료 비중을 70%까지 상향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일반병상은 5~15% 축소하고 중환자실이나 4인실 이하 병실의 입원료 수가(의료행위 대가)는 50% 높여 중증 환자 치료 중심으로 상급종합병원의 체질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참여 의료기관이 정부가 제시한 기준에 맞춰 계획서를 제출하고 이를 준수하면 수가 등에서 파격적인 지원을 하는 방식인데, 해당 재원이 건강보험 재정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참여연대는 이번 정책이 보편적 보장성 강화 정책이 아니어서 건강보험 운영 원칙에 맞지 않고 재정운영의 형평성과도 어긋난다는 입장이다.
특히 현재 상급종합병원의 위기가 급작스러운 전공의 집단사직으로 인한 정책실패의 산물인 만큼 건강보험 재정이 아니라 정부가 국회의 동의를 얻어 일반예산에서 집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참여연대는 "당장 대형병원 재정위기의 급한 불을 끄기 위해 급조된 정책은 준비 없는 2천명 증원의 파국과 비슷한 위기만 부추길 것"이라며 "지금 필요한 것은 상급종합병원 구조조정 지원이 아니라 지역일차의료, 공공의료 지원"이라고 강조했다.
또 대규모의 건강보험 재정 투입 결정 과정에서 국민이 배제된 채 정부와 상급종합병원 간의 합의로만 이뤄진 점도 문제 삼았다. 건강보험 재정운용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라는 사회적 합의기구에서 논의‧의결해야 하는데 정부가 '재난상황'을 앞세워 해당 절차를 무시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참여연대는 "건강보험 재정에서 매달 1886억원씩 의료대란 지원금을 정부 '보고안건'으로 처리해 지출하고 있는데 이제는 장기적인 구조조정 계획에 이 재정을 마구 쓰려 한다"며 "명백한 정부의 월권행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현재 대형병원의 진료 손실은 그간 수도권 쏠림과 과잉진료, 경증 외래진료 등 반대급부에 의한 것이 크다"며 "대형병원이 포기해야 할 경증진료와 과잉진료영역에 대한 손실도 보상하겠다는 건 대형병원 살리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