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당국은 최근 헤즈볼라 대원 수천명의 사상자를 낳은 '삐삐 폭탄'을 언제든지 작동시킬 수 있는 '버튼'이라고 부르는가 하면, 이번에는 지하 벙커에 있었던 헤즈볼라 지도부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소식통을 인용해 "나스랄라는 암살 직전인 지난 27일 밤, 레바논 베이루트 남부 다히예의 지하 18m 깊이 벙커에서 지도부 회의를 열고 있었다"며 "이곳은 번화한 노동자 계층 거주 지역이었다"고 보도했다.
나스랄라는 민간인 거주지역 땅속 깊은 곳에 있었지만, 이스라엘의 '표적 공습'을 피하지는 못했다.
이스라엘은 이곳을 콕 집어 약 80톤의 폭탄을 투하했고, 폭탄은 시간을 두고 연쇄 폭발하는 방식으로 지하 벙커를 관통해 나갔다.
이번 공격은 최근 주요 도시에 대한 가장 규모가 큰 단일 공습 중 하나로 기록될 전망이다.
이스라엘은 이번 공습으로 많은 민간인이 죽거나 다칠 수 있는 도시 지역에서 작전을 감행했다. 국제사회의 비난 등을 감수하면서까지 나스랄라 제거 확률을 그만큼 높이려 했던 것이다.
나스랄라 암살 당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미국 뉴욕 유엔 총회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었다. 그는 연설에서 "우리는 지난해 10월 7일과 같은 테러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이스라엘 북부 국경에 자리잡은 테러 단체들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때 나스랄라 등 헤즈볼라 지도부들은 지하 벙커에서 네타냐후의 연설을 보며 배석한 이란혁명수비대 지휘관에게 "이란이 이스라엘에 더 공세적으로 나가야한다"는 불만을 전달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따라 네타냐후의 유엔총회 연설도 '연막 작전'이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헤즈볼라 입장에서는 총리가 해외에 있는 상황에서 이스라엘군이 과감한 작전을 수행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네타냐후 총리는 유엔 총회 연설 전 뉴욕의 한 호텔방에서 전화로 작전 승인 명령을 내렸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이스라엘 당국자를 인용해 "네타냐휴 총리는 유엔 연설 전 나스랄라 암살 공격을 미리 승인했고, 연설 후 언론 브리핑을 진행하던 네타냐휴는 보좌관으로부터 암살 소식을 전해들은 뒤 즉각 브리핑을 중단하고 앞당겨 귀국길에 올랐다"고 보도했다.
특히 나스랄라 암살은 이스라엘이 헤즈볼라 수뇌부 한 세대를 몰살시키려고 했던 계획의 정점이었고, 이는 중동에 적지않은 변화를 몰고올 것으로 보인다.
런던에 있는 싱크탱크인 SOAS 중동연구소의 리나 카티브 소장은 WSJ에 "이스라엘이 헤즈볼라에 대한 이번 작전을 통해 이란의 중동 영향력이 상당히 약화되는 새로운 시대로의 문을 열었다"고 말했다.
이같은 정교한 이스라엘의 첩보전의 배경에는 지난 2006년 레바논 침공(2차 레바논 전쟁)에서의 경험이 토대가 됐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당시 이스라엘은 '인질 2명을 구출하겠다'는 명분으로 헤즈볼라 토벌을 위해 지상군을 투입해 한달간 공세를 펼쳤지만, 백여명이 넘는 전사자를 낳는 등 이렇다 할 전과 없이 퇴각했다.
당시 참패를 교훈 삼아 이스라엘은 이후 도·감청, 위치추적, 통신망 해킹 등 막대한 자원을 정보 역량 확보에 투입했고, 그 결과 헤즈볼라를 손바닥 들여보듯 파악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이번 기회에 레바논에 지상군까지 투입해 헤즈볼라와의 '40년 악연'을 끝내려는 기세를 보이고 있다.
이스라엘이 지난 1982년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를 쫓으면서 레바논 남부를 침공했을 당시(1차 레바논 전쟁) 결성된 헤즈볼라는 그 이후 반이스라엘을 기치로 내걸고 폭탄 테러·로켓 공격 등을 감행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