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역대급 세수 결손' 사태에 이어 올해도 국세 수입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정부가 현재까지 거둬들인 세금을 토대로 올해 세수 전망을 다시 계산해보니, 예산안에서 전망한 것보다 29조 6천억 원이나 모자랄 것으로 전망했다.
정부의 세수 추계가 4년 연속 크게 빗나가면서, 이 기간 동안 정부가 헛발질한 세수 오차 규모를 모두 합치면 총 200조 원을 넘어서게 됐다.
4년 연속 수십조씩 세수 오차…2년간 86조 세수 결손 일으켜
26일 기획재정부가 2024년 국세수입을 재추계한 결과, 올해 국세수입은 2024년도 예산안에서 전망했던 367조 3천억 원보다 29조 6천억 원 부족한 337조 7천억 원만 걷힐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따르면 예산안에서 계획했던 국세 수입 규모와 실제로 걷힐 것으로 전망되는 세금 간의 차이, 즉 예산 대비 세수 오차율은 -8.1%로 계산됐다.
정부는 해마다 예산안을 전년도 늦여름쯤 발표한다. 올해도 2025년도 예산안을 지난 8월 27일에 발표했다. 실제 세금을 걷는 시기보다 1년 가량 일찍 예산안을 발표하다보니 해마다 약간의 세수 오차는 발생하기 마련이다.
문제는 무려 수십조 원에 이르는 대규모 오차가 4년째 연거푸 발생했다는 점이다.
앞서 2021년에는 61조3천억 원, 2022년에는 53조 3천억 원씩 더 걷히는 오차가 발생했다. 그나마 예상보다 늘어난 세수는 추가 경정 예산을 편성해 사용할 수 있으니 큰 논란은 빚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무려 56조 4천억 원이나 예상보다 적게 걷히는 세수 결손 사태가 일어났고, 정부는 여론의 강한 질타를 받아야 했다. 그런데도 올해 역시 대규모 세수 결손 사태가 반복된 것이다.
그나마 올해는 앞서 3년 연속 이어진 두자릿수 오차율(실적 기준 2021년 17.8%, 2022년 13.3%, 2023년 -14.1%)은 피할 전망이지만, 전년 세수 부족분을 합하면 86조 원이나 된다. 이미 벌여놓은 예산에 비해 세금은 턱없이 부족하게 들어오니, 이를 메꾸느라 나라 살림에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앞서 2년간 세금을 더 걷었던 오차까지 합치면, 결과적으로 정부가 증감 여부를 떠나 4년 동안 200조 원 넘게 세수 규모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자신과 기재부가 '정부의 경제 컨트롤타워'라고 수차례 강조했는데, 우리나라 경제 컨트롤타워의 경제 상황 및 세수에 대한 예측 능력이 4년 연속 고장을 일으켰다는 얘기다.
올해도 법인세가 문제라는데…'尹정부 경제 컨트롤타워' 경제 전망 능력은 문제없나
이에 대해 기재부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경제 여건이 급변했기 때문이라고 해명한다.
기재부는 세수 결손 사태가 "글로벌 복합위기의 여파로 인한 2023년 기업 영업이익 하락, 고금리 장기화에 따른 자산시장 부진 등에 기인한다"며 "2023년 글로벌 교역 위축, 반도체 업황 침체에 따른 법인세 세수 감소폭이 당초 예상보다 큰 가운데, 부동산 거래 부진 지속으로 양도소득세 등 자산시장 관련 세수가 부진한 것이 주요 원인"이라고 밝혔다.
또 "민생안정을 위해 실시한 유류세 인하 연장, 긴급 할당관세에 따른 영향이 일부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해외 주요국들도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세수오차율이 증가했다. 기재부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15년~2019년과 2020년~2023년의 평균 세수오차율은 미국(6.9%→7.8%), 일본(3.7%→7.3%), 독일(1.5%→5.7%), 캐나다(2.8%→10.3%), 영국(2.1%→9.6%) 모두 커졌다.
그런데 기재부가 제공한 자료를 살펴봐도 같은 기간 한국은 5.5%에서 12.4%로 오차율이 급증해서, 위의 나라들보다 세수 오차 문제가 훨씬 더 심각하다.
기재부 정정훈 세제실장은 사전 언론브리핑에서 "지난해 (세수결손 이후) IMF, OECD와 협의하기로 해서 자문을 받아 법인세 추계모형을 보완했는데, 당시 IMF와 OECD 모두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이후 경제 여건 변동성이 굉장히 커지면서 기업의 영업이익, 세수에 미치는 영향이 커졌다고 한다"며 "특히 법인세와 자산 과세를 예측하는 데 모든 나라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은 국제기구의 자문을 받을 때 확인했던 내용"이라고 해명했다.
실제로 올해 세수 오차가 가장 많이 발생한 부분은 법인세다. 예산에서 전망했던 77조 7천억 원보다 14조 5천억 원 적은 63조 2천억 원만 걷힐 것으로 다시 추계됐고, 오차율도 -18.6%에 달한다.
소득세도 117조 4천억 원만 들어와 예산안에 적힌 125조 8천억 원보다 8조 4천억 원 덜 걷힐 것으로 보여, 오차율이 -6.6%를 기록하게 됐다. 이는 올해 1~7월 토지매매거래량이 전년동기보다 5.9% 감소하는 등 부동산 시장이 침체되면서 양도세·상증세가 6조 원 덜 걷히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반면 법인세, 소득세와 함께 세수가 주로 걷히는 3대 세목인 부가세는 예산안 편성 당시 81조 4천억 원 걷힐 것으로 전망됐는데, 실제로는 83조 7천억 원 걷힐 것으로 예상돼 오히려 2조 3천억 원 더 걷을 것으로 기대된다.
소득·매출에 비례하는 법인세, 소득세와 달리 사실상 모든 국민이 내는 부가세만 증가하면서 '부자 감세' 논란이 되풀이될 위기다. 다만 기재부는 "세제개편 효과는 세입예산안에 이미 반영되어 있다"며 이번 세수 결손 사태의 원인은 아니라고 반박한다.
이처럼 부가세가 증가한 이유에 대해 기재부는 민간소비와 수입이 완만히 증가했기 때문이라지만, 민간소비는 전년과 같은 1.8% 증가에 그쳤다. 수입액은 2.0% 증가해 전년 -12.1%에 비하면 크게 늘었다지만, 2021년 31.5%, 2022년 18.9%와 비교하면 오히려 변동폭이 매우 낮은 셈이어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에 대해 정 실장은 "소비, 수입 증가율 자체는 그렇게 높지 않은데, 상반기 동안 환율이 굉장히 높아서 수입 부가세에 영향을 미쳤다"며 "부가세는 과세·면세 물건이 각각 있는데 소비 수준이 올라가면서 전반적으로 면세 소비보다 과세 소비 비중이 조금씩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이어 "저희들이 의도적으로 직접세를 낮추고, 간접세를 높인 적은 한 번도 없다"며 "2, 3년 전에는 어마어마하게 직접세가 간접세보다 올랐던 시절이 있었고, 이제 직접세의 등락이 커진 것일 뿐 의도적이든 다른 여러 가지 이유로든 직접세와 간접세에 대한 그런 것(개입)은 전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매년 재추계하고, 추계 과정에 외부 기관 참여키로…정작 세수 결손 대응 방안은 '묵묵부답'
이처럼 대규모 세수 오차가 반복되니 애초 정부가 세수를 제대로 예측할 능력 자체를 잃었다는 우려도 나온다.
앞서 정부는 민·관 합동 세수추계위원회를 설치하고, 민간의 기업실적 전망을 추계에 반영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올해는 세입예산을 편성하면서 '시장자문단'을 신설하고, IMF(국제통화기금)로부터 기술 자문 등을 받아 법인세 추계모형을 보완했다.
내년부터는 세수추계 시작 단계부터 예산안 편성까지 국회 예산정책처, KIPF(한국조세재정연구원), KDI(한국개발연구원) 등이 참여하도록 개편하기로 했다. 정부의 추계모형·과세정보를 각 기관에 공개하고, 관련 주요사항을 원점부터 논의하겠다는 계획이다.
더 나아가 앞으로는 아예 매년 9월마다 당해연도 세수를 다시 전망하고, 민간의 전문인력을 채용하는 등 조직 개편도 추진한다. 또 AI(인공지능)·빅데이터를 활용한 세수추계 모형을 개발하고, 사회구조 변화나 납세자 행태변화 등을 반영하도록 미시 과세정보 활용을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법인세수에 대해서는 공시대상기업집단의 중간예납에서 가결산 의무화 방안을 추진한다는 방침도 재확인했다.
이처럼 정부는 세수를 더 정교하게 추계하기 위한 방안은 내놓았지만, 정작 당장 올해의 세수 결손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기재부는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유지하면서도 민생안정 등 재정사업이 차질없이 집행될 수 있도록 국가재정법 등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기금 여유재원 등을 최대한 활용"하고 "불가피하게 연내 집행이 어려운 사업 등도 고려하여 대응해 나갈 계획"이라는 원론적 답변만 내놓았다.
이어 "지방교부세(금) 집행 등의 구체적인 방안은 국회의 지적사항 등을 충분히 고려하여 관계부처 협의 등을 통해 마련하고 이를 추진해 나갈 예정"이라고 덧붙일 뿐, 구체적으로 어디에서 어떻게 재원을 마련해 부족한 세수를 메울 것인지는 언급을 피했다.
세입경정 추경 여부에 대해서도 "추경예산 편성은 경기침체 등 예외적 사유에 보충적으로 활용하는 수단"이라며 "정부 내 가용재원을 활용해 우선 대응"하겠다며 말을 아꼈다.
지난해에는 세수재추계 결과와 함께 외국환평형기금 20조 원과 세계잉여금을 동원해 세수 결손을 메꾸겠다고 밝힌 것과는 대조적인 대응이다.
기재부 김동일 예산실장은 "(지난해) 국회 결산 단계에서 정부가 국회·지자체와 소통을 적게 했다는 지적이 굉장히 많아서 저희가 대응방안을 만들어내는 것이 불가능하게 됐다"며 "(결손 세수를 보완하기 위해) 자금을 운용하면서 규모가 너무 큰 부분들은 국회와 상의를 해야 된다는 여러 가지 지적이 있었다"고 해명했다.
이어 "실무안이야 검토할 수 있는데, 국회 논의 과정도 있고, 정부부처와 협의도 해봐야 한다"며 "저희가 최종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어서 협의한 다음 최종안이 만들어질 것이라는 말씀만 드린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이날 열리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정부가 과연 어떤 대책 후보들을 내놓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