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규는 역사에 어떻게 남을까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 황진환 기자

"결국 역사가 평가해 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난 24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현안 질의에 증인으로 출석한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남긴 말이다.

2013년부터 대한축구협회를 이끌어 온 정 회장은 올해 3번째 임기를 마친다. 하지만 지난 5월 아시아축구연맹(AFC) 집행위원으로 선출되면서 축구협회장 4선 도전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해졌다.

체육단체장은 3연임부터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해야 도전할 수 있는데, 단체장이 국제단체 임원 자리에 오르면 스포츠공정위 심의를 통과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날 현안 질의에서는 정 회장의 4선 도전 여부를 묻는 국회 문체위 소속 여야 의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하지만 정 회장은 "심사숙고하겠다"라며 즉답을 피했다.

조국혁신당 김재원 의원은 최근 행보가 4선을 위한 포석이 아니냐며 추궁했다. 이에 정 회장은 "내 모든 축구 관련 활동이 연임을 위함이라고 말씀하신 것에 대해 동의하기 어렵다"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결국 역사가 평가해 주지 않을까 생각한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그렇다면 정 회장이 한국 축구에 남긴 업적은 무엇이 있을까.

9월 5일 저녁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B조 1차전 대한민국과 팔레스타인 경기 시작 전 붉은악마 응원단이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과 홍명보 축구대표팀을 규탄하는 현수막을 펼치고 있다. 류영주 기자

▲ 승부조작 축구인 기습 사면, 클린스만 선임…시작에 불과했다

'정몽규호' 축구협회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평가가 지배적이다. 정 회장 체제에서 지난 11년 동안 행정, 경영, 외교 등 모두 낙제점을 받았다.

축구협회는 계속된 헛발질로 뒷걸음치기 일쑤였다. 이른바 '승부 조작 축구인 기습 사면'이 대표적 사례다. 지난해 3월 최성국 등 승부조작에 가담한 축구인 100인에 대한 사면을 의결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철회한 바 있다.

위르겐 클린스만 전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긴 뒤에는 엄청난 후폭풍에 시달렸다.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을 이끈 파울루 전 벤투 감독과의 재계약을 뿌리치고 이미 실패한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은 클린스만을 선임한 대가는 혹독했다.

클린스만의 실패는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그는 2019년 11월 헤르타 베를린(독일)을 이끌다가 단 10주 만에 지휘봉을 반납했는데, 당시 구단과 상의 없이 SNS를 통해 사퇴를 발표하는 등 각종 논란에 휩싸였던 인물이다.

지난 1~2월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클린스만은 우승을 호언장담했지만, 준결승에서 탈락하며 무능함만 입증해 보였다. 손흥민(토트넘), 이강인(파리 생제르맹),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등 역대 최고 전력을 앞세워 1960년 이후 64년 만의 정상 탈환을 노렸지만 허무하게 좌절됐다.

그런 클린스만 선임에 정 회장이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정 회장은 "오해가 있는 것 같다. 벤투 감독 선임 과정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했다"고 해명했지만, 여전히 명확한 증거는 내놓지 못하고 있다.

홍명보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7월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열린 취임 기자회견에 참석해 사과하고 있다. 류영주 기자

▲ 홍명보 감독 선임 둘러싼 의혹…의원 질타에 꿀 먹은 벙어리

축구협회는 후임 감독을 선임하면서도 논란에 휩싸였다. K리그1 울산HD를 이끌던 홍명보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는데, 이 과정에서 절차적 하자와 특혜가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감독 선임 작업을 주도한 정해성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장이 돌연 사퇴한 뒤 전권을 위임받은 이임생 축구협회 기술총괄이사가 홍 감독 선임을 단독으로 결정해 절차적 정당성을 어겼다는 지적이 나왔다. 여기에 홍 감독은 외국인 후보자들과 달리 면접 없이 선임돼 특혜 논란까지 일었다.

홍 감독 선임 파문이 일자 문체부는 축구협회에 대한 감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축구계를 넘어 국민적 관심사가 된 만큼 절차상 문제가 없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앞서 국회 문체위는 축구협회에 대한 현안 질의를 진행했다. 증인으로 출석한 정 회장과 홍 감독, 이 기술이사는 여야 의원들로부터 강도 높은 질타를 받았다.

의원들은 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에서 절차적 정당성이 충족됐는지를 집중적으로 따져 물었다. 이에 정 회장은 "위법이 없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당사자인 홍명보 감독 역시 "불공정하거나, 특혜가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명쾌한 해명을 내놓지는 못했다. 특히 정 회장은 여러 차례 버벅거리는 모습을 보이며 체면만 구겼다. 결국 축구협회는 의원들에게 '동네 계모임보다도 못한 조직'이라는 평가를 들어야 했다.

현안 질의에서 의원들의 날카로운 질문이 쏟아졌지만 냉정하게 바라보면 별 소득은 없었다. 축구협회를 향한 여러 의혹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대한축구협회 등에 대한 현안질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 문체부 감사에 국정감사까지…물러설 곳 없는 축구협회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문체부는 10월 2일 중간발표를 통해 홍 감독 선임 절차에 문제가 있었는지를 밝히고, 천안축구종합 센터 건립 과정에서 600억대 마이너스 통장을 문체부 승인 없이 개설한 문제 등 축구협회 운영 논란에 대해서는 추후 감사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다.

정 회장은 문체부의 중간발표 뒤 다시 국회로 가야 한다. 10월 7일부터 25일까지 국정감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문체위는 정 회장을 22일 열릴 대한체육회 국감 증인으로 채택했다. 정 회장은 불과 한 달 만에 다시 국회에 출석해야 한다.

이제 문체부가 발표할 감사 결과에 시선이 집중될 전망이다. 정 회장을 비롯한 축구협회가 여기서도 공정을 증명하지 못하면 더 거센 비판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정 회장은 쉼 없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아직 문체부 감사 결과가 나오진 않았지만, 극적으로 모든 의혹을 말끔히 씻어내지 않는 한 비판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 회장의 말대로 이 모든 건 역사에 남는다. 어떤 평가를 받을지는 불 보듯 뻔하다. '박수 칠 때 떠나라'는 말이 있지만, 박수받을 기회는 이미 놓쳤다. 최소한의 명예라도 지키고 싶다면 이제는 스스로 회장직에서 물러나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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