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프로야구가 시작된 1982년 이후 외국인 타자가 타율 1위를 기록한 적은 단 2번뿐이다.
첫 주인공은 출범 후 22년이 지난 2004년이 돼서야 나왔다. 현대 유니콘스에서 뛰던 미국 출신 클리프 브룸바였다. 브룸바는 해당 시즌에 타율(3할4푼3리), 장타율(6할8리), 출루율(4할6푼8리)까지 모두 1위를 기록하고 KBO리그 최초 외국인 타격왕의 영예를 안았다.
브룸바 이후 11년 동안 타율 1위는 다시 국내 선수의 몫이었다. 이병규(은퇴·당시 LG 트윈스), 이대호(은퇴·당시 롯데 자이언츠), 이현곤(은퇴·당시 KIA 타이거즈), 김현수(LG·당시 두산 베어스), 박용택(은퇴·당시 LG), 김태균(은퇴·당시 한화 이글스), 서건창(KIA·당시 넥센 히어로즈) 등이 각종 기록을 세우며 타격왕 자리에 올랐다.
국내 선수들이 독식하던 타격왕 흐름을 깬 외국인 타자는 2015년 에릭 테임즈(당시 NC 다이노스)였다. 테임즈는 2015시즌에 타격 부문 4관왕(타율 3할8푼1리·130득점·장타율 7할9푼·출루율 4할9푼7리)을 기록하고 리그 최우수선수(MVP)를 차지했다.
테임즈 이후 작년까지 8시즌 동안은 다시 국내 선수들이 타율 1위를 차지했다. 이정후(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당시 키움 히어로즈)를 비롯해 최형우(KIA), 김선빈(KIA), 김현수, 양의지(두산), 손아섭(NC) 등이 그 자리를 점했다.
하지만 올해는 양상이 다르다. 정규 시즌이 막바지로 향하는 시점에서 현재 타율 1, 2위를 외국인 타자들이 선점하고 있다.
타율 1위를 기록 중인 선수는 기예르모 에레디아(SSG 랜더스)다. 에레디아는 올 시즌 133경기에 출전해 528타수 21홈런 189안타를 기록, 타율 3할5푼8리를 작성 중이다.
2위 역시 외국인 타자다. 빅터 레이예스(롯데 자이언츠)는 현재까지 140경기 556타수 15홈런 196안타 타율 3할5푼3리를 기록했다.
그 뒤를 국내 타자들이 쫓고 있다. 'KBO 최고 스타'로 떠오른 김도영(KIA)이 타율 3할5푼으로 3위에 올라있고 구자욱(삼성·타율 3할4푼3리), 송성문(키움·타율 3할4푼)도 열심히 뒤따르고 있다.
하지만 남은 경기 수를 고려할 때 국내 타자들이 에레디아와 레이예스를 모두 뛰어넘기는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렇게 시즌이 종료된다면 KBO리그에서 9시즌 만에 외국인 타자가 타율 1위를 차지하게 된다.
올 시즌 각 팀의 외국인 타자들은 여러 타격 지표에서 고르게 리그 1위를 차지 중이다.
우선 홈런 1위 맷 데이비슨(NC)이다. 데이비슨은 현재까지 46개의 아치를 그리며 이 부문에서 압도적 선두를 달리고 있다. 2위 김도영(38홈런)과 격차를 감안하면 사실상 데이비슨의 홈런왕 수상은 확정적이다.
타점 선두 자리에는 'LG 복덩이' 오스틴 딘이 앉아있다. 오스틴은 138경기에 나서 130타점을 올려 LG 구단 역사상 최초 타점왕이 되기 일보 직전이다. 타점 역시 외국인 타자들이 상위권에 포진돼 있다. 오스틴 다음으로는 119타점을 친 데이비슨이 2위에, 115타점을 기록 중인 에레디아와 구자욱이 공동 3위를 마크했다.
가장 많은 안타를 때린 타자도 외국인이다. 타율 2위 레이예스가 올 시즌에 안타를 가장 많이 생산하고 있다. 레이예스는 25일 광주 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2024 신한 SOL 뱅크 KBO리그' KIA전에서도 안타 2개를 추가했다. 이로써 레이예스는 올 시즌에만 196개의 안타를 제조했다.
가을 야구 도전이 끝난 롯데 팬들의 시선은 레이예스의 방망이로 향한다. 레이예스가 남은 4경기에서 200안타 고지를 밟는다면 외국인 타자 최초로 200안타 대기록을 달성하게 된다. 레이예스는 지난 24일 kt 위즈전에서는 시즌 194안타를 때려 손아섭이 보유하던 구단 단일 시즌 최다 안타(193안타)를 넘어섰다.
레이예스가 안타 1위로 시즌을 마감한다면 역대 KBO리그에서 두 번째로 이 타이틀을 거머쥐는 외국인 타자가 된다. 앞서서는 지난 2019년과 2020년 두산 소속 호세 미겔 페르난데스가 각 197개, 199개의 안타를 생산해 2년 연속 최다 안타를 친 선수가 됐다.
데이비슨이 홈런 1위를 기록하면 외국인 타자의 홈런왕 수상은 2020년 멜 로하스 주니어(kt·47개) 이후 4년 만이 된다. 타점 역시 2020년 로하스(135개) 이후 외국인 타자 오스틴이 차지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