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올해 추석 당초 우려됐던 '응급의료 대란'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 중인 가운데 연휴기간 전국 응급실의 인력난으로 인한 진료 제한건수가 지난해 대비 약 68%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연휴도 태반이 '12시간 이상 연속근무'로 버텼다는 의대교수들의 자체 설문에 비춰보면 남은 인력의 여력도 임계치에 달했다는 게 현장의 평가다. 전공의 공백을 7개월째 메워 온 응급실 의사 과반은 실제 사직 의향이 '있다'고 밝힌 상태다.
이에 대해 정부는 "연휴 이후 응급의료 상황은 연휴 이전 비상진료 상황과 유사하게 유지되고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2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조국혁신당 김선민 의원실이 국립중앙의료원(NMC)으로부터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14~18일 닷새간의 추석 연휴 동안 전국 각 병원 응급실에서 중앙응급의료센터에 알린 진료제한 메시지는 총 1879건으로 집계됐다.
작년 추석 연휴(2023년 9월 28일~10월 3일) 엿새 동안 들어온 진료제한 메시지 1523건과 비교해 23.4%(356건) 늘어난 수치다. 하루 평균 기준으로 따지면, 올해가 376건으로 전년도(254건)보다 48% 더 많다.
특히 응급실 근무 인력 부족으로 인해 표출된 진료제한 메시지가 총 645건으로 전체 34.3%에 달했다. 지난해 추석 연휴 당시 383건에 비해 68.4%(262건) 급증했다.
상급종합병원 또는 300병상 초과 종합병원 중 복지부 장관이 지정하는 권역응급의료센터의 경우, '인력 부족'에 따른 진료 제한은 전체 진료제한 메시지 중 43.5%(588건 중 256건)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추석 당시 현장 의료진 부족으로 인한 진료 제한은 전체 26.5%(597건 중 158건) 정도였다.
지역응급의료센터에서도 인력 부족이 직접적 원인이 된 진료제한 비율이 작년 26.4%(759건 중 200건)에서 38.2%(934건 중 357건)로 뛰었다.
대형병원을 지탱해온 전공의가 대거 이탈한 이후 진료 비중이 커진 지역응급의료센터는 전체 진료제한 메시지도 지난해 추석 대비 23.1%(175건)나 증가했다. 전체 종별 응급의료기관 중에서도 최다 수치다.
반면 지역응급의료기관은 진료제한 중 인력 부족이 차지하는 비율은 줄어든 것으로 파악됐다(15.0%→9.0%). 다만, 총 진료제한 메시지 건수는 167건에서 357건으로 2배 이상 불어났다.
김선민 의원은 이 같은 통계에 대해 "복지부는 이번 추석 연휴기간 응급실을 찾는 환자들이 작년 추석에 비해 30% 이상 감소해 큰 혼란이 없었다며 자화자찬하고 있지만, 실제로 그 응급실에서 진료를 해야 하는 의사들의 혼란은 작년 추석 때보다 더 많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언제까지 아픈 국민들에게 응급실을 가지 말라고 (대형병원) 응급실 진료비를 올려가며 겁박을 할 것인가"라며 내년 설에도 이 같은 '땜질' 식 대책을 이어갈 순 없다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복지부는 무리한 의대 증원으로 인해 병원을 떠난 전공의와 의사들이 병원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근본적인 대안을 빠르게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현장에서는 쌀쌀해진 날씨와 맞물려 심뇌혈관 질환 등 응급환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계절적 요인도 위험 요소로 지적되고 있다. 수요 측면에서 '비수기'에 해당했던 9월보다 내원 환자가 점차 증가할 거란 전망인데, 응급실을 지키는 의료진은 이미 한계 상황이란 진단이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가 전국 수련병원 34곳에서 근무 중인 응급의학과 전문의 89명에게 추석 연휴가 포함된 이달 13~20일 근무 현황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9.7%(62명)는 12시간 이상 연속 근무를 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중 16.9%(15명)는 16시간 이상을 내리 일했고, 36시간 이상 근무했다는 답변도 3.3%(3명) 있었다.
전의교협은 수면 이후 깨어 있는 시간과 업무 수행능력을 비교한 그래프를 들어 "깨어난 후 16시간부터 업무 수행능력이 급격히 감소해 20시간이 넘어가면 음주운전과 비슷한 상태가 된다"며 특히 아침 기상 시부터 새벽까지 연속근무가 이어지면 사실상 '음주 근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환자 안전에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덧붙였다.
응급실에 남아있는 전문의 과반(51.7%·46명)은 실제 사직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또 전공의 복귀가 무산된다면, 이보다 많은 61.8%(55명)가 추후 사직의사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의교협 측은 "우리는 정부가 호언장담하듯 현재의 의료대란이 앞으로 개선될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며 "정부가 하루가 멀다 하고 발표하는 정책은 미봉책에 불과하며, 앞으로 더 큰 부담으로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 명확하다.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응급실 대란은 의료대란이 진행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밝혔다.
아울러 "수련병원의 많은 전문의와 교수들은 응급의학과를 비롯한 필수의료 유지를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으나, 이러한 불안정한 상황이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음을 너무 잘 알고 있다"며 "불통과 무능력, 무책임한 정부의 의료정책은 전공의와 학생뿐만 아니라 전문의들마저 병원과 학교를 떠나게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정부는 이날 기준 전국 411개 응급실 중 406곳(이대목동병원·세종충남대병원·건국대충주병원·강원대병원·명주병원 제외)이 '24시간 정상가동'되고 있다며, 전반적으로 연휴 이전 비상진료 수준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20일 기준 응급실 내원환자도 평시(1만 7892명) 대비 80% 수준인 1만 4294명라고 전했다.
전공의 집단행동으로 인해 의료현장의 어려움이 지속되곤 있지만 국민과 의료진, 지자체·소방·경찰 등의 노고와 헌신으로 응급의료체계가 일정 수준 유지되고 있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정윤순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정부는 긴장감을 갖고 계속해서 응급의료상황을 면밀하게 점검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은 증상이 경미할 경우 우선 동네 병·의원을 찾아 주시고 큰 병이라 생각되면 119에 신고하시는 등 응급실 이용수칙을 지켜 주시기 바란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