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여사 앞 무릎꿇은 法을 어떻게 일으킬까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22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체코 공식 방문을 마치고 전용기인 공군1호기편으로 귀국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건희 여사가 지나가는 길에 법은 무력하다. 감시 의무가 있는 공무원들은 부역하듯 법을 강제로 무릎꿇게 만들고 있다. 일명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청탁금지법 절반은 사실상 사문화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탁금지법은 공직자의 비위에서 뇌물 범죄로 처벌하기 어려운 부정한 관행을 뿌리뽑기 위해 만든 법이다. 액수가 적든, 범위가 사각지대에 있든, 뇌물 등으로 그 공직자를 직접 처벌하기 어려운 경우, 배우자나 가족을 통해 전달되는 청탁이나 촌지·선물 등의 부정한 관행을 일소하려고 만든 것이 청탁금지법이다.
 
대한민국 부패수사 역량에서 절대적 역량을 가진 집단은 서울중앙지검이다. 검찰은 김 여사의 명품백 선물에 대해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청탁금지법은 공직자의 배우자를 처벌하기 어려운 법이 되고 말았다.
 
검찰에 앞서 국민권익위원회도 물폭탄 맞은 갈대마냥 맥없이 엎어졌다. 권익위는 청탁금지법의 주무기관이다. 권익위의 유권해석은 수사기관에서 강제력을 갖지 못했지만 주요 판단의 기준을 제공한다. 권익위는 '반부패·청렴 전문강사'를 운용한다. 국가 및 공공기관들은 매년 청렴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전국에서 청렴 강사만 4~500명에 이른다. 매해 수십명이 일정 자격시험을 통해 강사 자격증을 갖게 된다.
 
요즘 청렴 강사가 할 일이 없다고 한다. 명품백 사건 이후, 공공기관에서 청렴 교육이 확 줄었다고 한다. 한 청렴 강사는 "지난 5월부터 단 한 번도 강의 요청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교육도 교육이지만 청렴 강사들의 고민은 다른데 있다. 공직자 배우자의 행위를 빼놓고 청탁금지법을 논하는 것은 '앙꼬없는 찐빵과 같다'는 것이다. 청렴 강사도 교육에 참여한 공직자들도 난처하기만 하다. 김여사의 명품백을 빼놓고 무슨 청렴 교육을 할 수 있겠는가. 청탁금지법은 현장에서 죽었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류영주 기자

김 여사와 관련된 일에 법이 무릎꿇는 일은 또 있다. 200 페이지에 이르는 감사원의 <관저 이전 감사보고서>를 읽다보면 대한민국 대통령 부부가 머무는 한남동 관저는 불법투성이로 공사가 이뤄진 사실을 누구나 알게된다. 무법천지 관저공사에 오직 '권력'만 존재한다.
 
국가계약법도, 건설산업기본법도, 국유재산관리법도, 모든 관계 법령들이 그 꼴이 말이 아니다. 절대적인 하나의 원칙만이 존재한다. 그것은 "당시 제반 상황과 여건상 예산이 완전히 확보되지 않아 계약체결이 어려운 상태에서 우선 공사에 착수할 수밖에 없었던 불가피성이 인정된다"는 면죄부이다. 대관절 '관저 공사의 시급성'이 무엇이길래, 청탁금지법에 이어 '국가계약법'도 사문화시켰단 말인가.
 
감사원은 관저 이전 공사에서 그토록 불법을 자행하게 한 '장본인'을 알거나 찾고 싶어하지 않았다. 입만 열면 "법치, 법치"를 외치는 대통령이 사는 공간에서, 동네 여염집에서조차 가능하지 않은 일들이 국가계약이라는 이름으로 만신창이가 됐건만, 책임자 처벌은 없고 '주의 면죄부'만 남발됐다. 그간 국가계약법을 어겨 중징계 처분을 받은 수많은 공직자들이 보면 억울함에 기절할 일들이다.
 
법치는 무너졌고 공정은 부러졌다. 관저 이전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러나 관저 공사는 법률에 의거해 이뤄져야 한다. 통치행위로 대북지원을 할 수 있지만 법을 어겨 대북송금을 해선 안되는 이치와 같다. 관저 공사는 영부인 뜻대로 할 수 없는 공사다. 관저는 국가 소유이고 그는 자연인일 뿐이다. 관저 이전으로 공사가 필요하면 법을 준수해 진행하고 그 공간에서 거주할 대통령 부부는 그에 맞춰 살면 그것이 법치주의이다.
 
류영주 기자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항소심 선고가 나온 지 벌써 3주째를 맞이하고 있다. 검찰은 국민들에게 항소심 판결을 참고해 김 여사에 대한 기소여부를 결정하겠다고 약속했다. 검찰은 더 회피할 명분도 없다. 이 사건에서 피의자를 비롯한 모든 참고인조사가 마무리됐다. 그들은 햇수로는 4년, 현 정부 집권으로는 2년 6개월간 그 결정을 묵혀왔다. "우리 부인은 주식해서 손해만 봤다"고 했던 사건에서 김 여사의 주가조작 가담에 대한 정황증거들은 적지 않다. 김 여사는 또 법의 문턱을 밟고 지나갈까.

만일 항소심 판결이 난 지 한 달이 지난 시점에도 검찰이 결정하지 못한다면 정치권은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검사 탄핵 말이다. 서울중앙지검장과 4차장검사, 반부패부장, 그리고 주임검사에 대한 탄핵심판을 청구해야 한다. 대통령은 거부해도 상관없다. 여사 앞에서 법을 더 무릎 꿇리도록 만드는 일을 누군가는 막아야 한다. 국회가 제동을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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