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거점 병원들을 '빅5' 병원 못지않게 키워서, 서울 안 가도 충분히 훌륭한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지난 13일 화순전남대병원 암센터를 찾은 한덕수 국무총리의 말이다.
한 총리는 이어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를 언급하며 "선발 제도를 지금까지 한 30~50%까지 했다면, 60% 또는 필요하면 70%까지 대학이 판단해서 늘릴 수 있게 하겠다"고 언급했다.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는 장학금이나 주거 지원 등을 제공해 의사들이 일정 기간 지역에 근무하도록 하는 제도로, '인센티브'를 통해 의사들이 스스로 지역에 머물 수 있게 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지역 의과대학 교수들은 단순한 금전적 지원으로 지역 의사를 늘리기는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오히려 지역 의료를 살리는 것이 먼저라는 지적이다.
전문의 수당 월 400만원·의대생 장학금·전공의 생활비 '인센티브'
23일 정부에 따르면, 자율적 선택에 따라 지역에서 안정적으로 장기 근무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가 도입된다.
전문의의 경우 취득 3년 미만이 대상으로, 지역병원 장기 근무를 조건으로 지자체와 계약하게 된다. 지역근무수당 월 400만 원, 지자체의 주거 지원, 해외 연수기회 등도 지원된다.
의대생과 전공의에 대한 지원 내용도 있다. 의대생의 경우 학부에서 전공의까지 장학금과 생활비, 해외 연수 등이 지원된다. 전공의는 생활비, 연구지원, 해외 연수, 국립대병원의 경우 전문과목 선택 우선권 등을 제공한다.
기존에 논의되던 '지역의사제'는 대학 입시 단계에서 지역에서 근무할 의사를 뽑아 법으로 지역 근무 의무를 부여하는 방식인데, 이는 거주지 선택의 자유 등을 해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에 정부는 법으로 강제하기보다 인센티브를 제공해 계약을 유도하는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정부는 내년 상반기부터 시범사업에 참여할 지자체를 공모한다는 계획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내년 상반기에 사업에 참여할 지자체를 공모하고, 인력을 채용하고 실제 (계약형 지역필수의사로) 뽑혀서 활동하는 것은 하반기가 될 것"이라며 "지역 현장의 의견도 더 듣는 등 사업 계획을 구체화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지역 의대교수 "지역 환자 수 자체가 부족"…'커리어 격차'도
하지만 지역 의대교수들은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의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한다. 단순한 금전적 인센티브로 지역 의사를 키우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환자들이 지역이 아닌 수도권 병원으로 몰리는 현 상황이 의사들을 지역에서 떠나게 한다고 꼬집었다.
한 지역의대 A 교수는 "인구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고 지역에는 인구 자체가 적은데 지역 의사들이 남아서 진료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질지 의문"이라며 "지역의 환자 수 자체가 부족하다 것이 큰 문제"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같은 의대를 졸업하더라도 서울로 간 의사의 경우 1년에 갑상선 수술 300건을 할 수 있는데, 지역에 남은 의사의 경우 1년에 30건 하기도 어렵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두 의사의 역량 차이는 크게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만 비수도권 의대의 지역인재 전형 선발 비율을 높이는 방침에 대해서는 긍정적 평가가 나왔다. 2026년까지 비수도권 의대의 지역인재 전형 선발 비율을 60% 이상으로 올리고, 지역 의대생이 지역 병원에서 수련받을 수 있도록 비수도권 전공의 배정 비중도 50%로 끌어올린다는 게 정부의 계획이다.
지역의대 B 교수는 "우리 대학의 경우 60%가 서울 및 수도권에서 온 학생인데, 이들이 돈을 더 준다고 여기 있을지는 의문"이라며 "여러 가지 유인책을 써왔지만 지금까지 지역에 남아있지 않았다. 인턴 모집 정원도 못 채울 정도"라고 말했다.
실제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백승아 의원이 교육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의학계열 학과 졸업생 중 상세 취업정보가 확인된 2633명의 60.7%(1599명)가 수도권에 취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의대 졸업생 가운데 자신이 졸업한 의대가 속한 지역에 취업한 현황을 보면, 지난 5년 동안 경북은 17명(3.3%), 울산 16명(8.6%)이었다. 경남, 강원, 충남지역도 각각 77명(19.6%), 214명(21.1%), 194명(31.5%)으로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
다만 "지역이 고향이고, 지역 균형 인재로 들어온 학생들은 그대로 있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게 B 교수의 설명이다.
"의료도 서울 중심…권역 안에서 의료 시스템 완결돼야"
이들은 지역 의료를 살리기 위해서는 지역 의사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지역 안에서 의료 시스템을 완결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환자들이 무조건 서울과 수도권 병원으로 향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B 교수는 "우리나라도 국민 건강보험이 통합되기 전까지 해당 권역을 벗어나려면 반드시 3차 의료 기관에 종사하는 의료진의 의뢰서를 받아야만 했다"며 "영국은 자기가 사는 곳의 주치의를 반드시 거쳐야만 병원을 옮길 수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지금은 환자들이 '나는 당신을 보러 온 것이 아니고 당신이 써준 진료 의뢰서가 필요할 뿐'이라고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 의료도 서울 중심으로만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환자들이 수도권 병원만 찾을 정도로 병원간 역량 차이가 크지는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A 교수는 "환자들이 수도권 병원만 찾고 있지만 그러한 쏠림 현상이 나타날 정도로 진료 역량에 큰 차이가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면서 "지역 국립의대의 역량이 충분한데도 불구하고 서울로 가는 것이 현실"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다른 병원으로 환자를 전원하는 것은 진료 의사가 판단할 문제"라며 "환자가 원하면 진료 의뢰서를 써주고 상급종합병원에 가도록 해주는 것은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유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