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6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전남 영광·곡성 야권 텃밭 사수를 위해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이 같은 신경전은 단일화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보수 우세지역에서의 협력에도 걸림돌이 되는 모양새다. 4·10 총선 때부터 서로에 대해 '경쟁적 협력관계'라 칭한 두 정당이 이번 재보선을 계기로 분열할지, 진영의 파이를 키울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혁신당 '호남살이' 맞서 민주당도 호남 방문…신경전은 '점입가경'
민주당 지도부는 23일 전남 영광군에서 현장 최고위원회의를 연다. 이어 24일 전남 곡성군을 찾고 25일에는 부산 금정구에서 최고위를 열 예정이다. 영광·곡성 군수 재선거 상임선대위원장을 맡은 정청래 의원은 지난 20일 "선거 승리는 어떤 당에도 양보할 수 없다"며 영광군을 방문해 지원 유세를 벌이기도 했다.조국 대표 등 혁신당 지도부는 이미 지난달 말부터 호남 '지역살이'까지 하며 현장 유세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추석 연휴 직전 지역 언론사 여론조사에서 민주당과 혁신당이 '초접전' 양상을 보이자 당내 분위기가 고무되기도 했다. KBC광주방송이 리서치뷰에 의뢰해 11~12일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혁신당 후보를 지지(36.3%)한다는 답변은 민주당 후보를 지지(30.1%)한다는 답변을 오차범위 내에서 앞섰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그동안 전남 선거에 대해 "자신 있다"며 특별한 대응에 나서지 않던 민주당은 영광군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자 본격 견제에 나섰다. 민주당 관계자는 "해당 여론조사 기간 혁신당 후보 경선이 있어서 혁신당 측 지지자가 과표집됐을 것"이라고 확대해석을 자제했지만, 혁신당에 대한 대응 수위는 추석 연휴 전과 확연히 달라졌다.
민주당 김민석 최고위원은 지난 19일 조 대표를 비롯한 혁신당 일부 의원들이 김건희 특검(특별검사)법 등 법안 처리를 위한 국회 본회의에 선거 지원을 사유로 불참하자 민주당 관계자들과의 채팅방에 "쇄빙선 내려서 동네 선거하나? 부끄럽다. 지방의원인가"라는 메시지를 보냈고, 이 모습이 언론 카메라에 찍혔다. 혁신당이 민주당은 되기 힘든 '개혁의 쇄빙선(碎氷船)이 되겠다'고 자임했음에도 정작 특검법을 처리하는 회의장에는 나타나지 않은 채 재보선에만 사활을 거는 점을 비꼰 것이다. 민주당 전남도당위원장인 주철현 최고위원은 지난 2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조 대표가 민주당의 본산인 전남에서 스스로 큰집이라고 칭했던 민주당을 상대로 집안 싸움을 주도하고 있다"며 불편함을 대놓고 드러냈다.
혁신당은 이 같은 비판에 대해 물러서지 않고 정면으로 반박에 나섰다. 혁신당 서왕진 의원은 주 최고위원을 향해 "호남에서는 민주당 이외의 당이 후보를 내면 분열이고 집안싸움이냐"며 "박지원 의원에 이어 민주당 최고위원까지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을 보면 민주당 내에 이런 생각을 가진 분들이 상당한 것 같은데 누가 민주당에게 이런 '초헌법적' 판정 권한을 부여했느냐"고 따져 물었다.
한편으론 민주당이 지나치게 민감하게 대응하고 있다며 갈등 확산을 자제하자는 목소리도 내고 있다. 혁신당 이규원 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혁신당과 민주당은 윤석열 검찰독재 정권의 조기종식을 위해 함께 싸우는 정당"이라며 "선거 끝나고 다시는 안 볼 사이처럼 굴지는 말자"고 자제를 촉구했다. 이 대변인은 "혁신당이 지난 총선은 물론 재보선에서도 '윤석열 정권과 1:1 구도'를 만드는 데에 변함이 없다"며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전남 영광과 곡성 군수 선거는 민주당과 경쟁하되 부산 금정구청장 선거에선 단일화를 제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혁신당 '금정 단일화' 제안에 답 없는 민주…野 분열 우려에도 민주 "쇄빙선 역할하라" vs 혁신 "언제까지 비례정당일순 없어"
전남 선거에서 비롯된 신경전은 야권 연대가 있어야 국민의힘과의 승부를 기대할 만한 보수 우세 지역 선거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분위기다. 혁신당은 재보선 지역 4곳 중 인천 강화군엔 후보를 내지 않는 대신 부산 금정구에는 후보를 내고, 민주당에 후보자 간 공개 토론과 단일화를 거듭 제안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은 "단일화는 후보 경쟁력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며 답변을 계속 미루고 있다. 야권 후보 단일화 시 선거에 승리할 가능성이 커지는데도 불구하고 일단은 민주당 '텃밭'에 도전한 혁신당과의 '기싸움'을 이어가겠다는 것으로 보인다.전략적 판단이 필요함에도 단일화 논의를 시작조차 안 하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일각에서는 재보선 경쟁이 야권 분열로까지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민주당은 혁신당을 향해 "쇄빙선 역할부터 다하라"며 견제구를 멈추지 않고 있다. 재보선 이후 2026년 지방선거까지 약 2년간 선거가 없는 만큼 우선 텃밭에서 승리함으로써 지지층을 다지고, 이런 기반을 유지해야 다음 대선까지 안정적인 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혁신당 또한 비례대표 선거에만 참여했던 지난 총선과 달리 전국 정당이 되기 위해서는 이번 재보선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둬야 하는 상황이다. 지방선거 전까지 당이 지역적 기반을 만들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선거가 이번 재보선 뿐인 점을 고려하면 민주당과의 갈등도 불사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혁신당 관계자는 "혁신당이 언제까지고 비례 정당일 순 없다"며 "호남에선 민주당과 선의의 경쟁을 하고, 부산에선 민주당이 단일화에 대한 답을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