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왔으니 망정이지" 청주 여관 화재 목격담 '아찔'

순식간에 연기 가득…4층서 거동 불편한 어머니 모시고 대피 소동
골목길 사이로 인근 주택 다닥다닥…"비 안 왔으면 번졌을 수도"
'투숙비 문제 갈등' 40대 방화…다른 투숙객 등 3명 숨져

21일 오전 1시 40분쯤 발생한 충북 청주시 상당구 남주동 여관 방화사건 현장에서 경찰과 검찰 등이 현장 감식을 벌이고 있다. 최범규 기자

"동네가 홀랑 다 타버릴 뻔했다니까. 비가 왔으니까 망정이지 주변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다른 집으로 번졌으면…"
 
21일 새벽 청주 도심 한복판에서 발생한 여관 화재 현장을 목격한 주민들은 아직도 진정이 되지 않는다.
 
여관 건물 4층에 살고 있던 주민 A(60)씨는 주말이라 늦게까지 잠을 자고 있지 않았던 게 천만다행이었다.
 
A씨는 "새벽에 타는 냄새가 슬슬 나더니 이내 매캐한 연기가 집 안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며 "정신이 번쩍 들어 밖을 봤더니 화염과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고 말했다.
 
더구나 다른 방에는 연세가 많고 거동까지 불편한 어머니(92)가 자고 있었던 상황.
 
A씨는 급히 어머니를 깨워 밖으로 나가려 했지만, 이미 계단에 온통 연기가 가득했었다.
 
겨우 1층까지 내려온 A씨는 입구 쪽에 있던 화분과 나무 집기류 등 곳곳에서 불이 붙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누군가가 일부러 불을 질렀다는 것을 직감했지만 일단 몸을 피하는 게 먼저였다.
 
A씨는 "타는 냄새를 맡은 뒤 대피하고, 건물에 불이 번지기까지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던 것 같다"며 "아마 잠이 들었다면 큰 화를 당할 뻔했다는 생각에 아찔하기만 하다"고 토로했다.
 
화재로 인한 공포는 다른 주민들도 마찬가지다.
 
여관 건물과 2m 남짓한 골목길 사이를 두고 거주하고 있는 B(72·여)씨는 밤새 쏟아진 비가 그저 고맙기만 했다.
 
여관 건물 바로 옆에 있던 나무에 불이 붙었다면 주변에 있는 다른 주택까지 화염에 휩싸일 뻔했다는 게 B씨의 설명이다.
 
B씨는 "여관 건물 창문 등을 통해 시뻘건 불길이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며 "인근 나무에 불이 붙었으면 바람을 타고 우리 집으로도 번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가 내내 와서 불이 번지지 않은 것"이라며 "비가 고맙기까지 했다"고 덧붙였다.
 
21일 오전 1시 40분쯤 발생한 충북 청주시 상당구 남주동 여관 방화사건 현장. 최범규 기자

이날 오전 1시 40분쯤 청주시 상당구 남주동 4층짜리 여관에서 불이 났다.
 
이 불로 여관에 투숙하던 80대 C씨 등 3명이 숨졌다. 이들은 모두 일용직으로 생활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여관 건물 여러 지점에서 발화 흔적이 있었던 점으로 미뤄 방화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인근 CCTV 분석 등을 통해 이 여관에 장기 투숙했던 D(48)씨가 불을 낸 것을 확인하고 추적에 나서 3시간여 만에 인근에서 그를 붙잡았다.
 
D씨는 여관 주인과 투숙비 문제로 갈등을 빚다가 전날 퇴실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D씨를 상대로 정확한 경위 등을 조사한 뒤 현주건조물방화치사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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