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집단행동에 동참하지 않고 의료 현장에 복귀한 의사 등의 명단을 작성해 인터넷에 게시한 혐의를 받는 사직 전공의 정모씨가 구속됐다.
의정갈등 속에서 불거진 이른바 '의료계 블랙리스트' 사건 수사 관련 첫 구속 사례다. 이로써 의사들의 진료 복귀를 방해하는 행위에 대해 엄정 대응 방침을 밝혀온 경찰의 수사에도 한층 힘이 실릴 전망이다.
20일 서울중앙지법 남천규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를 받는 정씨에 대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열고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사직 전공의 정씨는 지난 7월 의사 커뮤니티와 텔레그램 채널 등을 통해 '감사한 의사'라는 제목의 복귀 전공의 등 명단을 최초로 작성하고 게시한 혐의를 받는다. 해당 명단에는 의료 현장에 남거나 복귀한 전공의 등의 근무 병원을 비롯한 개인 신상 정보가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3부(김태훈 부장검사)는 경찰이 정씨에 대해 신청한 구속영장을 13일 청구했다.
지난 2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 사태 이후 근무 중인 의사들의 명단이 악의적으로 공개되는 일이 계속되면서 경찰 수사도 이어져 왔다.
3월 초에는 의료 현장을 떠나지 않은 전공의들의 신상이 '참의사'라는 이름으로 의사 온라인 커뮤니티 '메디스태프'에 공개됐다. 6월 말에도 같은 커뮤니티에 복귀 전공의를 포함한 '복귀 의사 리스트'가 등장했다. 최근에는 '감사한 의사 명단'이라는 제목의 '아카이브(정보기록소)' 사이트에서 전공의, 전임의, 의대생 뿐 아니라 응급실 근무 중인 의사 실명 등을 공개한 자료까지 나돌아 경찰이 수사 중이다.
지난 14일에는 정부의 엄정 대응 기조 속에서도 해당 사이트의 업데이트 버전이 등장하기도 했는데, 게시자는 경찰을 향해 "헛짓거리 그만하고 의사 선생님들을 그만 괴롭히길 바란다"는 조롱성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경찰은 지난 10일까지 이 같은 '의료계 블랙리스트 사건' 총 42건을 수사해 32명을 검찰에 송치했다. 아카이브 사이트 관련자들도 계속 추적 중이다.
경찰청은 "의사 집단행동 초기부터 진료 복귀를 방해하는 명단 공개, 모욕·협박 등 조리돌림에 대해 신속·엄정 조치 중"이라며 "의료 현장에서 성실히 근무하는 의사들의 명단을 악의적으로 공개하는 행위는 엄연한 범죄 행위를 보고, 중한 행위자에 대해선 구속 수사를 추진하는 등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신속‧엄정하게 대응하겠다"고 앞서 밝혔다.
한편 의료계 내에서도 블랙리스트 유포가 의료계 내 합리적인 논의를 막는다는 지적이 나왔다.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10일 "'감사한 의사 명단' 일명 응급실 블랙리스트 작성·유포로 인해 의료계 내 갈등이 불거지고 국민들께 우려를 끼친 것에 대해 심각한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다만 "명단 유포 피해자의 직접 고발없이 정부의 유불리에 따라 선별적으로 수사 대상자를 특정해 수사하는 경찰의 행태에 유감을 표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