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독서의 계절'이 아니라는데…사색하면 안 될까?[책볼래]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자 '천고마비' 독서의 계절. 스마트이미지

가을은 말이 살 찌는 '천고마비'(天高馬肥)와 책 읽기 좋은 '독서의 계절'로 불린다. 농경 문화가 발달한 한반도에서 말은 주로 군마(軍馬)로 사용되어 그 관리가 까다롭고 한 마을이 말에게게 먹여야 할 곡식과 풀죽의 양이 어마어마해 백성들의 고충이 컸다.

대륙의 초원에서 크는 말들이나 살찌우기 편했지, '천고마비'는 언제부턴가 고온과 습도가 가시고 높고 푸른 하늘의 계절 변화와 곡식이 익는 풍성한 수확의 계절을 의미하는 표현으로 남았다. 당나라 초기 시인 두심언(杜審言)이 당나라 군대의 승리를 가을에 비유한 시구 '추고새마비'(秋高塞馬肥)에서 따온 말이다.

그런데 독서의 계절은 왜 가을일까. 이 역시 당나라 시인 한유(韓愈)가 아들에게 쓴 시에서 나온 '등화가친'(燈火可親)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가을은 시원하고 상쾌하니 등불을 가까이 하여 글 읽기 좋다는 의미다. 그럴듯해 보인다. 가을 모든 인력이 총동원 되는 농번주의 사회에서 일부 양반이나 상위 계급에서나 취급하던 한자와 까막눈인 백성들에게 책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예로부터 대중적인 메시지라고 보기는 힘들어 보인다.  

의학적으로는 가을이 되면 일조량이 점차 줄어들면서 빛에 의해 분비되는 신경전달 물질이자 엔도르핀 생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 세로토닌의 분비도 함께 줄어들어 활력이 떨어지는 대신 차분해져 독서를 하기 좋다는 이야기가 있다. 기상학적으로는 우리나라 평균 가을 날씨 기온이 18~20도이고 습도는 40~60%로 쾌적한 조건이어서 독서를 통한 사색하기 좋은 날씨라는 이야기도 있다.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4 서울국제도서전에서 20·30대 관람객들이 책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출판계나 역사 전문가들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문화통치를 통해 식민 교육을 장려했다거나 지식인들이 계몽운동을 펼쳐 당시 식민지 조선인의 교육과 성장을 도모하면서 유래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학교' '교육'라는 것이 산업혁명으로 고도화 되는 기술에 적합한 노동력이 필요해지면서 이 시스템에 유능한 인력을 키워내기 위해 계획적으로 탄생한 산물이 아닌가.

유래가 어떻든 '가을 하늘이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라는 애국가 가사처럼 가을은 맑고 청량한 하늘을 내어주고 산 능선을 타고 내려온 선선한 바람을 밀어주어 농부가 곡식을 수확하듯 책을 펴든 이의 마음에 양식을 가득 채워줄 수 있을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춥지도 덥지도 않으면서 맑고 화창한 날씨에 나들이와 야외 활동을 하기에도 좋아서 실제로는 가을 독서량이 오히려 무더운 여름이나 추운 겨울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표어가 출판계의 해묵은 마케팅이라는 분석도 있다.

무더위가 잦아들고 선선한 날씨에 쨍한 햇볕이 오히려 세로토닌의 분비를 촉진하고 엔도르핀을 활성화 한다니 오히려 산으로 계곡으로 들로 바다로 해외로 유혹하는 손짓에 흔들리기 쉬운 계절임은 분명하다.

한국과의 인연이 깊은 미국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펄 벅은 "조선의 가을 하늘을 네모 다섯모로 접어 편지에 넣어보내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우리 강산의 아름다운 자연을 찬양하기도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 성인 10명 가운데 6명은 1년 간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성인 독서율은 90년대 중반부터 2009년까지는 70%대를 유지했지만 2010년도 들어 60%중후반대로 떨어지면서 선진국을 밑돌고 있다.

그 와중에 20·30대 연령층에서 최근 독서량이 증가 추세를 나타냈다. 60세 이상 노년층의 종합독서율이 15.7%로 2021년(23.8%)보다 크게 줄어든 반면, 20대(19~29세)는 74.5%로 조사 연령 가운데 가장 높은 독서율을 보였다. 이른바 MZ세대를 중심으로 책 읽기는 최근 힙한 주제가 됐다. 오히려 절대 다수가 즐겨하지 않게 되면서, 지적인 소수자의 매력으로 남들과 차별화를 극대화 할 수 있어서다. 이른바 '텍스트힙'이다.  
 
광화문광장 등 서울 시내 야외도서관. 서울시 제공

출판사들은 매년 가을에 접어들면 바빠진다. 미뤘던 문학 작품과 신작 소설을 쏟아내고 사람들은 볕을 쬐며 서울광장과 광화문, 청계천은 밤낮으로 야외도서관을 찾는다. 답답한 서고를 벗어나 여가의 문화로 자리 잡아가는 순간이다. 가을의 도서 판매량이 뚝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예나 지금이나 독서의 계절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출판계에 있음은 분명하다. 그래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풀꽃 시인'으로 유명한 나태주 시인은 중앙선데이에 기고한 '가을의 명령'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가을에는 종그래기도 놀지 않고 고양이도 집을 지킨다'는 속담을 들며 수확의 일이 바쁘고 힘든 가을에 독서의 계절이라는 말이 '억지 춘향 노릇'이라며, 짬을 내어 책을 읽으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라 해도 이것 또한 억지스럽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가을 하늘의 구름으로 저마다 대리석 궁전을 지어보자며 사색을 권했다.

사색은 마음의 둘레를 넓히고 깊어지게 한다. 넓어진 만큼 채움에 대한 목마름은 자연스레 지혜를 채우는 길로 인도할 것이다. 밖으로, 자연으로 나가서 채울 그릇을 만들어오는 것도 책과 친해지는 또 하나의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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