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랬어."
한밤중 가족 단톡방이 울렸다. 부친이 실종된 후 막내 김민국(가명·34)씨가 보낸 메시지였다. 첫째 민지씨(가명)는 본능적으로 큰일이 났음을 직감했다. 잠에 든 어린 자녀를 뒤로한 채 막내가 있는 경북 상주로 향했다.
존속살해라고 했다. 동생은 아버지를 살해하고 시체를 유기한 혐의로 긴급체포됐다. 당황, 분노 같은 상투적 단어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거대한 감정이 민지씨를 덮쳤다. 잠을 잘 수도 음식을 먹을 수도 없는 각성상태가 지속됐다. 혼란스러웠던 민지씨와 둘째 민서(가명)씨는 그저 매일같이 상주경찰서 유치장을 찾았다.
동생을 이해하고 싶었다. 사실을 받아들이기 위해서였다. 민지씨는 동생 방에 남은 물건들을 보며 정확한 진실을 알아내려 애썼다. 컴퓨터를 치워달라는 민국씨의 말에 응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면회 중 민지씨가 "치워줄 건 없어?"라고 묻자, 민국씨는 입 모양으로 '컴퓨터'라고 말했다. 민지씨와 민서씨는 컴퓨터를 차에 실었다.
아버지의 49재가 지났을 무렵 컴퓨터를 맡긴 사설 포렌식 업체에서 연락이 왔다. 검찰에 컴퓨터를 넘기라는 조언이었다. 두꺼운 포렌식 자료를 한 장 넘기자마자 '후두부', '친족 살해', '망치 살해'와 같은 끔찍한 단어들이 쏟아졌다. '밧줄', '항공권' 등을 검색한 흔적도 있었다. 민국씨는 범행 전 166차례나 구체적 범행 수법을 검색한 것으로 조사됐다.
"민국이가 그럴 애가 아닌데"라며 울던 민지씨가 달라진 것도 이때부터였다. 아버지를 위해 거짓을 바로잡겠다고 다짐했다. 당시 민국씨는 말다툼 중 벌어진 우발적 살해를 주장하고 있었다. 민지씨가 동생의 컴퓨터를 제출하며 수사는 급물살을 탔다. 계획범죄 혐의가 인정되며 민국씨는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밧줄 타고 내려와 부친 숙소 향했다…잔혹한 계획범죄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구고법 형사1부(정성욱 고법판사)는 오는 26일 오전 10시 존속살해와 사체은닉, 증거은닉교사 혐의로 구속기소돼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민국씨의 항소심 판결을 선고한다.
앞서 검찰은 1심 판결 직후 양형부당을 이유로 항소했다. 검찰은 항소이유서에서 "피고인의 범행은 그 이상 중대한 범죄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중대하고 개전의 정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며 "피고인을 영구히 격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사형을 선고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1심 판결문을 보면 지난 2023년 11월 6일 새벽 3시쯤, 민국씨는 부친이 머물고 있던 축사 숙소에 몰래 침입했다. 폐쇄회로(CC)TV가 없는 화장실 창문을 통해서였다. 잠에서 깬 아버지에게 축사를 물려달라고 요구했지만, 아버지는 이를 거절했다. 그러자 민국씨는 그곳에 있던 망치로 아버지의 머리를 네 차례 가격해 숨지게 했다.
민국씨는 사건 이후 가족에게 보낸 편지에서 "아버지를 화장실로 옮겼는데, 별 거 아니라는 듯 머리를 만지며 일어나셨다가 눈이 안 보이는 건지 이내 곧 넘어지셨고 (이를) 굉장히 많이 반복하셨다"고 당시를 묘사했다.
범행 후에는 부친의 시신을 인근 야산으로 옮겨 암매장했다. 고인은 구덩이 안에서 웅크린 자세로 얼굴을 땅에 처박은 채 발견됐다. 민국씨는 범행현장에 설치된 CCTV 영상과 범행 현장의 혈흔 등 흔적을 제거했고, 현장에 있던 외국인 노동자에게 침묵을 종용하며 겁박하기도 했다.
자신의 집에서 축사까지 가는 동안 CCTV 촬영을 피하기 위해 보인 행동은 매우 치밀하고 계획적이었다. 아파트 27층에 사는 민국씨는 7층까지 계단으로 내려간 뒤 7층 테라스에서 밧줄과 안전띠를 이용해 1층까지 내려갔다. 이후 그는 약 13km 거리를 가로등도 뜸한 시골길을 따라 3시간에 걸쳐 걸어갔다.
민국씨는 아버지로부터 재산을 물려받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에 이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 부친의 축사에서 10년가량 일한 그는 자신의 친모와 이혼한 사이였던 부친에게 결혼을 전제로 교제하는 여성이 생기자 축사를 증여받지 못할 것이라 여겼다.
범행 발생 5개월 전인 지난해 6월에는 부친이 축사를 바로 증여해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흉기를 들고 "소를 다 죽여버리겠다"고 난동을 부린 일도 있었다. 그럼에도 부친은 "괘씸하지만 아들을 주지 딸을 주겠나. 소를 누가 키우겠느냐"고 주변에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구속된 직후에도 민국씨는 '재산'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피해자의 재산을 적정한 가격에 신속히 처분할 방법을 모색하는 것에 몰두했고, 기소 이후 재판 과정에서는 피해자에 대한 일방적인 비난이나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할 만한 발언조차 주저하지 않았다"고 판결문에 적시했다.
두 쪽 난 가족…"감형 위해 고인 모욕" vs "빌려간 돈 갚아라"
사건 직후만 해도 가족들 대부분 막냇동생의 선처를 구하는 입장이었다. 우발적인 '사고'로 아버지를 잃었지만 남은 가족이라도 지키자는 심정이었다. 검찰 수사와 포렌식 등을 통해 재산을 노리고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살인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상황은 바뀌었다.민지씨와 친척들은 잔혹한 계획범죄를 저지른 민국씨의 엄벌을 촉구하고 있다. 반면, 고인의 전처이자 민국씨의 친모와 둘째 민서씨는 막내 편에 서며 가족 간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친척들은 "피고인 측이 반성하지 않고 고인이 폭력적이고 경제적으로 무능했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모친의 행동이) 아들을 지키기 위함도 있을 테지만, 결국 돈을 달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모친은 오히려 큰 딸 민지씨가 부친의 재산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태도가 돌변했다는 입장이다. 고인이 자신의 건물을 담보로 4억가량의 빚을 냈는데 이를 갚지 않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모친은 "이혼 후 내 명의의 건물에 4억 빚이 남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축사 부지 구입과 신축 등을 위해 나의 가게를 담보로 대출을 받은 것"이라며 "내 식당은 연 매출 10억 원이 넘은 적 있을 정도로 유명했지만, 돈 관리는 모두 고인이 했고 나는 통장조차 만져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또한 민국씨 등은 고인이 축사를 운영하며 아들에게 임금을 한 푼도 주지 않았고, 가족들에게 폭력과 폭언을 일삼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친척들은 크게 반발했다. 그들은 "고인은 자녀에 손찌검 한 번 한 적이 없다. 피고인에게 적정한 임금을 지불했고, 가족 생활비나 교육비 등도 다 고인이 부담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울 일이 없음에도 피고인은 어머니에게도 식당을 물려달라며 행패를 부린 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민국씨가 재산에 집착하는 듯한 모습을 종종 보였다는 것이다.
4억 빚에 대해서는 "등기부등본과 대출 관련 자료를 법원에 제출한 상태며 전혀 관계가 없다"고 일축했다. 등기부등본을 확인한 결과 어머니 단독 명의의 상주 땅 1085평, 가게 두 곳에는 아버지 사망 후인 올해 새로 발생한 근저당권만 남아있는 상태다.
친척들은 "오히려 고인은 자신의 두 손으로 콘크리트를 바른 그 식당을 모친에게 줬다"며 "공동명의로 수원의 오피스텔을 사줬고 발생 수익도 줬다. 관련 빚도 혼자 힘으로 작년에 다 갚은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아버지를 잃고 막내의 엄벌을 촉구하며 원가족과도 멀어진 민지씨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바뀌었고, 괴롭힘이 끝나지 않을 것 같다"며 씁쓸해했다. 어머니는 주변 친척과 지인들에게 아들의 선처를 구하는 탄원서를 요청하는 동시에, 고인과 민지씨를 비난하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있다고 한다.
민지씨는 "동생에게 최고의 벌은 진심으로 반성하는 것"이라며 "본인이 무슨 짓을 했는지를 진정으로 깨닫는 날이 왔으면 한다. 유족들이 그저 고인을 묵묵히 애도만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몇십 년 후 막내가 출소해 저를 찾아올지도 몰라요. 앙심을 품고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제가)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어요. 그저 아빠를 빨리 뵈러 가서 죄송하다고 사죄하고 싶은 마음뿐이에요. 남은 인생은 그렇게 밖에 살 수 없어요."
울먹이던 민지씨. 그는 아버지를 두 번 죽게 할 수 없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오는 26일 열릴 항소심 판결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