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별 보험료 차등 인상에 더해 자동조정장치 도입 등 '재정 안정'에 방점을 찍은 정부의 국민연금 개혁안을 두고 전문가들이 팽팽한 설전을 벌였다. 연금제도의 지속가능성을 중시하는 재정안정론 측은 '받는 돈'(소득대체율)을 시민 공론화안(案)보다 낮춘 정부안(42%)이 적절하다고 본 반면, 소득 보장강화론 측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인 노인빈곤 해소엔 역부족이라고 반박했다.
다만, 가장 논란이 됐던 사안 중 하나인 자동조정장치 도입에 대해선 진영을 떠나 모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해외와 달리 연금제도가 충분히 무르익지 않은 상황에서 이를 섣불리 적용할 경우, 연금 급여가 대폭 깎일 수 있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이기일 제1차관이 주재한 브리핑에서 연금 전문가인 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사회학 박사)를 초청해 '긴급진단 연금개혁안을 논하다' 1차 토론을 진행했다. 두 전문가는 제5차 재정계산위원회의 민간자문위원으로 활동했고, 올 4월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공론화위원회에도 참여한 바 있다.
앞서 정부는 지난 4일 현 9%인 '내는 돈'(보험료율)을 13%로 올리되 세대별 인상 속도를 달리 하고 소득대체율은 40%에서 42%로 올리는 개혁안을 내놨다. 다음은 정부의 개혁안을 둔 남 교수와 오 위원장의 주요 발언들이다.
'더 내고, 조금 더 받자'…"적절한 안" vs "판 깨자는 것"
(이 1차관) "(정부가 제시한)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다."
(오 위원장) "보험료율 13%는 지난 21대 국회 때 여야가 사실상 합의를 한 것이기 때문에 이를 반영한 것이라고 본다. 큰 논란은 없을 것 같다. (논쟁이) 가장 뜨거운 건 소득대체율인데, 개인적으로 정부 입장에선 ('42%'가 아닌) 40%를 제출하는 게 맞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개인적으로도 소득대체율을 인상하는 건 좀 어렵다고 본다. 보험료율이 또 더 올라야 되니까.
한편에선 '적절하다'고도 생각한다. (시민대표 500명이 참여한) 공론화위원회에선 '소득대체율 50%'가 다수의 지지를 받았고, 국회 논의 과정에서도 '45%' 혹은 '44%'까지 나왔으니 지금 정부가 제시한 42%보다는 높아야 된다는 의견도 당연히 제시될 수 있다.
하지만 2007년 노무현 정부 때 현금개혁을 통해 당시 (소득대체율) 60%을 40%로 낮추기로 한 20년의 이행 프로젝트는 사회적 합의로 정해졌다. 만약 여기서 더 올리면 그 합의가 훼손되기에, 집행하는 게 대단히 중요하다고 본다."
(남 교수) "정부가 낸 '보험료율 13%·소득대체율 42%' 안은 대단히 잘못됐다. 우선 보험료와 소득대체율을 별개로 해놓고 '전자는 합의됐고 후자는 따로(다)', 이렇게 논의하는데 그건 아니다.
예를 들어 (노사) 단체 협약을 할 때 노동시간을 늘리기로 하고 임금도 올리기로 했는데, 임금 인상 협상이 잘 안 되고 노동시간 확대는 노사가 의견이 맞았다고 해서, '노동시간은 합의된 거고 임금은 따로 (협상)하자', 이렇게 할 수는 없지 않나. 마찬가지다.
또 이 정부에서 연금개혁 공론화를 추진했는데, 일종의 사회적 합의를 한 거다. 정부·여당이 하자고 해서 추진한 공론화에서 국민들이 선택한 '(요율) 13%·(소득대체율) 50%', 정신을 지키는 게 필요하다.
정부가 낸 '소득대체율 42%'는 협상 상대방을 굉장히 무시한 안이기도 하다. 공론화 직후 여당이 처음 낸 안이 43%였고, 그 다음은 44%였다. 22대 국회에 와서 정부가 처음 낸 안이 42%면 그 협상에 누가 나가겠나. 이건 판을 깨자는 것이 아닌가 싶다."
자동조정장치 필요할까…"세계적 추세지만 일러", "노인빈곤 심화"
(이 1차관) "여러 가지 의견이 많은 자동조정장치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남 교수) "차관이 말씀하실 때 OECD 국가 중 24개국이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했다고 했고, OECD 보고서에도 그렇게 돼있는데 사실은 개념이 모호하다. 적립식 확정기여 방식을 도입한 나라도 자동조정장치 도입국으로 포함하고 있기 때문인데, 그렇게 보면 연금에서 자동조정장치가 아닌 게 없다. 최대로 치면 17개국, 좀 낮게 잡으면 14개국 정도로 봐야 한다.
전형적인 자동조정장치는 명목금액은 안 내려갈지 몰라도 실질가치가 줄게 된다. 퇴직 후 연금의 실질가치 유지를 위해 물가에 따라 임금을 올리는 게 우리 방식인데, (자동조정장치는) 그 인상 폭을 기대여명·제도부양비 등의 변수를 갖고 줄이자는 것이다. 물가가 5% 오를 때 임금이 3% 오르면 사실상 임금이 줄어드는 것과 비슷하다.
특히 이게 누적되면 후기 노인들은 빈곤에 노출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 현재대로 소득대체율을 40%로 낮추게 되면 2060년대엔 (노인)빈곤율이 27%, 2080년대에 가도 30% 가까이 된다는 국민연금연구원의 전망도 있다."
(오 위원장) "다른 나라에서 자동조정장치가 도입되기 시작한 건 일종의 '탈(脫)정치화' 취지다. 연금이라는 게 무척 중요하다 보니 제도를 바꾸려면 당연히 의회 논의를 거치게 되고, 굉장한 갈등을 겪게 되는데 보수정부든 진보정부든 이에 대한 정치적 비용이 너무 큰 탓이다. 즉 인구·경제 변화에 따라 제도가 적응할 수밖에 없는 것들은 자동으로 바꾸도록 메커니즘을 만들어놓은 것이다. 대부분 기대여명이 길어지면 조금 급여를 깎는 방식이다.
점진적으로 다른 나라에서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하는 나라가 굉장히 빠르게 늘고 있는 추세는 분명하다. 그래서 정부도 도입하겠다는 건데, (다만) 저는 남 교수와 입장이 같다. 지금 국민연금에서 자동조정장치를 얘기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
서구 국가들이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한 건 일정한 재정안정화를 갖춰놓은 뒤였다. 자동조정으로 인한 변화가 크지 않기에 자동조정장치에 의한 결과도 사회적으로 수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연금은 재정 불균형이 무척 큰 상태라 자동조정장치를 탑재하면 보험료율 대폭 인상, 급여 삭감 등 굉장히 급진적인 개혁을 요구받을 수 있다."
세대별 보험료 차등인상? "청년들 개혁 수용성↑" vs "비민주적"
(오 위원장) "제일 뜨거운 쟁점일 것 같다. 지금 국민연금에 가입한 앞 세대나 뒤 세대나 연령대별로 내는 것과 받는 것이 똑같은 수준이라면 차등화하면 '차별'이 되니, 안 될 말이다. 반대로 현 제도 안에서 형평성이 깨져 있다면, 그를 바로잡는 차등은 굉장히 적극적인 차등이다.지금 50대 중장년은 (소득대체율이) 높았던 시절의 금액이 자기 계좌에 입력되어 있다. 그런데 청년들은 42%나 40% 등 낮은 수준의 소득대체율을 적용받을 것이고, 국민연금 여건상 보험료율도 꽤 빠르게 올라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형평성 문제가 존재하고, 이걸 그대로 놔두는 게 오히려 문제라고 본다.
정부안으로는 제 계산으로 지금의 형평성 문제를 다 해소할 수는 없다. (다만) 조금이라도 개선을 통해 청년 세대의 (연금)개혁에 대한 수용성을 높여 주는 취지라고 보여진다."
(남 교수) "거듭 말씀드리지만, 세대별 차등 보험료 인상은 재정계산위나 연금특위에서 한 번도 논의된 적이 없다. '더 내고 더 받는' 안에 20대가 거의 다 찬성한 연금개혁 공론화 결과에도 정면으로 위배된다. 왜 정부가 몇 개월이 지나지도 않아 지금 와서 '세대 갈라치기'를 하는 안을 내는지 이해할 수 없다.
공론장에서 채택되지 않은 안을 국가 권력을 내세워서 들고 나오면서 '너희 불이익 받고 있지? 너희 억울한 거야'라고 얘기하는 것은 당정이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이다. 대단히 비민주적이고 불통(不通)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