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얼마나 많아서 이렇게까지 남을 돕느냐는 핀잔도 들었어요. 그렇다고 부자라고 해서 남을 많이 돕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강성기(51) 씨는 경기 과천시의 20년차 베테랑 환경미화원이다. 동네 구석구석 쓸고 닦아 한 달에 손에 쥐는 돈은 350만 원 남짓.
넉넉하진 않지만 그의 가계 지출목록 상단엔 늘 '기부금'이 적혀 있다. 연간 500만 원 안팎을 지역의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 데 보탠다.
"예전에는 벌이가 훨씬 적었어요. 그럼에도 씀씀이를 줄여 기부하면서 아내와 맞벌이로 알뜰살뜰 세 자녀까지 키워냈죠. 사회복지를 전공한 아내의 이해와 격려가 힘이 됐습니다."
그에게 타인을 위한 선행은 곧 '내 행복이자, 은혜를 갚는 과정'이다. 돈이 많지 않을 때 기부를 하면 마음이 더 따뜻해진다고 했다. 또 그 과정 자체가 살면서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은 데 대한 보답이라는 것. 작은 것에 감사하고 베풀 줄 알아야 한다는 취지로 읽힌다.
강씨는 지난 11일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내 사정이 어려울수록 남에게 도움을 줄 때 더 큰 보람을 느낀다"며 "청소부로 불리며 괄시받던 시절도 있었는데, 지금은 사회적 인식이 바뀌고 처우도 좋아졌다. 받은 걸 되갚는 중"이라고 덤덤하게 말했다.
돈으로 몸으로 '소통의 나눔'…"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봉사"
애초 그의 나눔은 돈이 아닌 '몸'으로 시작됐다. 한때 자전거가게를 운영하면서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공짜로 수리를 해주거나, 중고 자전거를 고쳐 선물하기 시작한 게 계기였다.시청에 공무직으로 입사한 뒤에도 관련 봉사와 물품기부를 지속했고, 이는 관변단체를 거쳐 보다 체계적이고 광범하게 자전거 무상수리를 할 수 있는 발판이 됐다.
강씨는 "과천시의 자전거 무료수리 예산이 배정된 배경이다"라며 "나눔을 더 확산할 수 있게 제도화된 걸 보면서 신기하고 기쁘기도 했다"고 뿌듯해 했다.
자전거 다음은 '집'이다. 그는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은 어디든 달려간다"는 각오로 주거환경이 열악한 취약가구들을 수소문해 집수리 봉사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곰팡이 핀 벽지와 장판을 교체하고 집안 곳곳 녹슬고 고장 난 부위를 손보는 게 '강반장'의 임무다.
이처럼 손재주로 재능기부를 하는 게 금전적인 도움을 주는 것보다 더 기억에 남는다고도 했다. 여러 사람과 현장에서 함께 호흡하고 소통할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그는 "물질적인 것은 한도가 정해져 있다"며 "반면 몸으로 하는 기부는 상대가 어떤 어려움에 처했는지 직접 몸으로 느끼고 또 함께 호흡하고 체험하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장비나 기술의 한계로 업체 관계자들에게 봉사활동 동참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은데, 흔쾌히 손을 잡아주는 사례가 많아 감사하다면서도 '복지 사각지대'가 많다는 점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도배팀, 장판팀 꾸려서 땀 흘려 집을 고치긴 했지만, 학대피해 아동 분리보호소나 저소득 가구 장애인시설 등은 주거환경 개선이 시급한 경우가 많다"며 "민간의 노력만으로는 역부족이다. 복지예산을 늘려서라도 보다 다각도로 지원하면 좋겠다"는 것이다.
경제난 등으로 기부가 위축되고 있는 실태에 대한 답은 간단했다.
"기부를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못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어려운 게 아니에요. 자신이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하면 됩니다."
"주는 게 기쁨"인 과천 기부왕, 폐업에도 나눔 지속
주머니를 털어 나눔의 행복을 누리는 천사는 또 있다. '과천 기부왕'으로 불리는 최순향(69) 씨다. 최씨는 개인 기부액 1억 원을 넘겨 아너소사이어티 명예회원에 이름을 올렸다.
고액 기부의 출발점은 엉뚱하게도 아들 결혼식이었다. 예식장이나 신혼여행 비용 등을 모아 가치있는 일에 쓰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고, 신랑신부가 동의해 1천만 원을 기부했다.
2016년 당시 해마다 천만 원씩 기부금을 늘려보자는 게 최씨의 다짐이자 아들과의 약속이었다. 고깃집 사장이던 그는 독거노인 등 소외계층들에게 식사 대접을 하고 식료품을 나눠주면서도, 수익 일부를 차곡차곡 모아 기부액을 높여갔다. 한번에 5천만 원을 쾌척하기도 했다.
이후 코로나19에 직격탄을 맞아 식당문을 닫는 위기도 있었지만, 기부만큼은 멈추지 않았다. 지자체를 통해 사랑의 열매에 기부한 공식 누적 금액만 2억 원에 육박한다.
'너무 큰 돈 아닌가'라는 기자 질문에 최씨는 "누구를 도운 날은 하루 종일 내가 더 기쁘다.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른다"며 "그래서 계속 주고 싶다"고 웃으며 답했다. 우문현답이었다.
"궁핍 통해 타인의 고통 이해…사회에 보탬 돼야"
나눔을 향한 열정은 그의 인생을 관통해 왔다. 공식적으로 기부한 돈 외에 티 나지 않게 기부하던 게 "습관이었다"고 했다. 기부가 운명이자 본능이었던 셈이다.
고향인 대구에서 아버지 사업이 부도나면서 고등학생이던 최씨는 학업을 중단하고 생업에 뛰어들어야 했다. 몇 개월 직장생활도 해봤지만 저학력으로 무시를 받던 그는 창업을 결심하고 20대 젊은 나이에 작은 화장품가게를 열었다.
그러고는 대박이 났고, 나눔의 싹도 함께 트였다. 최씨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겪어보니까 다른 사람들의 어려움도 달리 보이더라"며 "고아원(보육원)에 있는 아이들을 데려와 직원으로 채용하고, 결혼할 때도 적게나마 돈을 보태주고 그랬다"고 돌이켰다.
과천 식당을 접은 뒤로 일부 부동산 월세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그는 유산 상속에 대해서도 고개를 저었다. 두 자녀에게 10원도 물려주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 이유 역시 기부였다.
"더는 먹고 사는 문제에 연연하고 싶지 않아요. 사회에 '플러스'가 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영원한 나눔 확산 위해 민·관 협력+제도 개선 필요"
이번 인터뷰에서 둘은 "기부는 계속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사회가 단절되고 나눔이 사라질수록 공공과 시민사회, 지역사회가 적극적이고 체계적으로 힘을 모아야 한다는 얘기다.
강씨는 "과천은 집값 비싸고 부자들 많기로 유명하지만, 아직 구석구석에는 어려운 분들이 많다"며 "한부모 가정 자녀와 독거노인 등에게 단순히 금전적 지원만으로 그칠 게 아니라, 친근한 소통으로 세밀하게 보살피는 복지 손길이 필요해 보인다"고 강조했다.
또한 "다소 위험할 수 있는 봉사현장에서는 2인 1조 편성이라든지 보호장치 마련이라든지 참여율을 높일 수 있는 제도적 대책도 있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최씨는 "인간미 넘치던 도심 속 시골이었던 과천에 고층 빌딩 숲이 들어서고 풍경이 바뀌면서 사회 분위기도 변했다"며 "서로 어울리고 교감하는 문화가 줄어들면서 기부 문화도 쪼그라든 것 아닌가 싶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그는 "계좌명을 '사랑의 열매'로 하고 원래 내 돈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입금하고 있다. 그래서 더 마음도 훈훈하다"며 "이런 마음을 더 많은 시민들이 가질 수 있도록 과천에도 사랑의 열매 지부 같은 단체를 만드는 일을 추진하고 있다"고 거듭 기부 활성화를 독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