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병사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은 '바OOO' 탓이었다"

[신간] 역사가 묻고 미생물이 말하다

지상의책 제공

'역사가 묻고 미생물이 말하다'는 의과대학 미생물학 교수인 저자가 지구에 최초로 나타난 생명체인 미생물에 오히려 인간이 종속된 존재가 아닐까 하는 의문에서 탐구를 시작하는 책이다. 인간 이전부터 살아왔고, 어쩌면 인간 최후 이후에도 살아남을 이 생명체가 인류 역사 속 격변의 순간에 늘 자신의 존재감을 증명해왔던 과학 이야기들이 담겼다.

인류 역사의 향방을 바꾼 수많은 사건 또한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 짓이었다는 사실도 우리는 최근에야 알게 됐다. 저자는 투키디데스가 생생하게 남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사실 '아테네 역병'의 참혹한 기록이었으며, 일명 '콜럼버스의 교환'으로 일컬어지는 아메리카 대륙 발견을 둘러싼 일들은 사실 '면역 전쟁'이라 할 만한 불균등 미생물 교환이었다고 지적한다. 동행하고 대적하고 협력하며, 역사의 결정적 순간에 늘 미생물이 있었던 셈이다.

우리나라에서 지금은 거의 퇴치된 결핵균을 저자는 '산업혁명 세균'이라고 말한다. 급격한 도시로의 인구 집중, 열악한 노동 환경, 빈약한 위생 시설로 말미암아 인간 스스로 불러온 파괴적인 병원균이라는 것이다. 결핵균이 인간의 역사를 바꾸었다기보다는 인간이 역사에서 가장 급격하고도 본질적인 변화의 시기에 결핵균을 불러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20세기 들어 1·2차 세계 대전의 전투보다 더 많은 병사를 죽음으로 몰아간 숨은 원인이 세균이 아니라 바이러스 탓이라는 사실을 알기까지는 수많은 장애물을 넘어서는 과학자들의 집념이 필요한 일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21세기 인류에게는 코로나바이러스라는 초유의 팬데믹 물결을 이제 막 한 단계 넘어서는 중이라며 끊임 없는 관심과 지혜를 촉구했다.

책은 인류와 미생물이 '공생하고 공격하며 공진화해 온' 흐름을 보여주는 연대순으로 구성되었다. 시작은 호모사피엔스의 진화에 이바지한 '효모' 이야기다. 이후 '콜럼버스의 교환' '산업혁명' '세계대전' 등 역사의 결정적 순간에 미생물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어떻게 암약했는지 이면을 파고든다. 후반부에는 인류를 오래 괴롭혀 온 세균을 역설적으로 이용해서 지금껏 해결하지 못한 질병을 치료하려는 여러 노력 등 미생물 연구의 현주소를 살펴본다.

고관수 지음 | 지상의책(갈매나무) | 2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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