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중국 대신 중국으로 오라!
중국 관영통신 신화사의 지난 10일자 사설 제목이다. 신화사는 이 사설에서 폭스바겐과 메르세데스-벤츠 등 독일 자동차 브랜드들이 자국에서는 생산시설을 축소하면서도 중국에 대한 투자는 늘리고 있는 상황을 전했다.
또 "독일 엔지니어들은 예전에는 중국인에게 자동차 만드는 법을 가르쳤지만 이제는 전기 자동차와 자율주행 분야에서는 중국 자동차 회사들이 독일을 가르치고 있다"는 독일 자동차 전문가의 발언도 소개했다.
그러면서 "보호무역주의는 낙후된 산업을 보호할 수 없고 경쟁력을 향상시킬 수 없으며 시장의 불확실성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라며 미국 주도의 대중국 제재를 비판한 뒤 "'탈중국' 대신 '중국으로 오는게' 올바른 선택"이라고 사설을 마무리했다.
신화사가 자국의 거대 시장과 향상된 기술력을 뽐내며 외국 기업의 투자를 독려하는 내용의 사설을 내보낸날 중국 소셜미디어(SNS)에는 외국인 혐오를 부추기는 내용의 동영상이 화제가 됐다.
10일 중국 SNS 웨이보 등에는 중국 베이징의 유명 관광지로 청나라때 황실 정원인 원명원에서 한 인플루언서가 일본인 관광객을 상대로 시비를 거는 영상이 공유됐다.
32만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인플루언서 '아인'(亞人)이 지난 7일 촬영해 처음 올린 이 영상에서 그는 일본인 여행 가이드가 사진 촬영을 위해 좀 비켜달라고 요구하자 이를 거절하면서 일본인 관광객 2명에게 시비를 건다.
아인은 "나보고 일본인을 위해 비켜달라고 하는 거냐. 여기 원명원에서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화를 냈고, 심지어 뒤늦게 나타난 관리소 직원은 한술 더 떠 "(일본인은) 못 들어온다. 일본인들 증오한다. 그놈들 치워버리는 거 나도 찬성한다"고 막말을 퍼부었다.
원명원이 19세기 서구 열강에 의한 아픈 침탈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기는 하지만 아인의 이같은 행동은 명백히 외국인 혐오를 부추기고, 이를 통해 조회수를 높이려는 상술에 불과하다.
신화사의 사설과 아인의 동영상은 극명히 대비되는 내용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현재 중국이 외국인과 외국기업에게 취하고 있는 두얼굴 역시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중국 당국은 부동산과 내수 부진 등으로 인한 경기 침체, 그리고 미국 등 서방진영의 대중국 견제로 외국인 직접투자가 갈수록 줄어드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어떻게든 외국인 투자를 늘리려고 발버둥치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애국주의', 또는 '중화민족주의'을 내세우며 외국인을 배척하고 있다. 아인의 행동은 물론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잇따르고 있으며, 그런 범죄 행위자를 옹호하는 이들도 많다.
중국 당국이 뒤늦게 SNS에 외국인 혐오를 부추기는 게시물을 삭제하는 등 수습에 나서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지만 사실 중국 당국 역시 오랜기간 이런 극단적인 애국주의나 중화민족주의를 정치·안보 상황에 맞춰 이용해온 것도 사실이다.
중국 국회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가 '중화민족의 정신을 훼손하고 감정을 해치는 행위'를 처벌하도록 관련법의 개정을 추진하는가 하면, 후시진 전 환구시보 편집장처럼 애국주의를 앞세워 한국과 일본 등 주변국을 노골적으로 조롱하고 비난하는 이들이 당국의 비호 아래 '관변언론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한국의 경우 지난 2016년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이후 8년 넘게 '한한령'(한류 금지령)에 시달리고 있다. 중국 당국은 한한령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있지만 최근에도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 인디밴드의 베이징 공연까지 막을 정도로 그 위세는 여전하다.
사드 배치 문제는 한국과 중국은 물론 미국과 북한까지 얽히고설킨 문제지만 엄연히 외교나 안보 측면에서 풀어야할 문제다. 하지만 중국은 경제·문화적 압박을 가하고, 대중을 동원해 불매운동을 벌이면서 애꿎은 한국 기업과 문화·연예계 등이 피해를 입었다.
중국에 진출한 한 기업인은 "한한령 이후 중국 시장에서 우리 제품이 한국산이라는 걸 숨겨야 그나마 판매가 되는 상황"이라며 "중국 정부가 말로는 외국 기업에 대한 차별과 규제를 없앤다고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라고 하소연했다.
관광객 괴롭힘 영상에 대해 중국 외교부는 "중국은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국가이기 때문에 특정 국가에 대해 차별적인 관행을 취하지 않을 것"이라며 수습에 나섰다. 하지만 중국 당국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외국인과 외국기업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중국이 '탈중국' 대신 '중국으로 오라'고 자신있게 말하기 위해서는 말로만 개방과 포용을 내세울 것이 아니라 중국인의 눈에만 보이지 않는 차별을 해소하는 것이 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