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를 묻는 류승완 감독의 영화적인 방식 '베테랑2'[노컷 리뷰]

영화 '베테랑2' 스틸컷. CJ ENM 제공

※ 스포일러 주의
 
'사적 복수' 혹은 '사적 제재'라는 콘텐츠가 주는 사이다가 당연해진 요즘, 우리에게 '정의'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류승완 감독은 자신이 제일 잘하는 '영화', 그중에서도 '액션'이라는 장르를 통해 당연하다 여기는 것을 어떻게 다시 바라볼 것인지,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바로 9년 만에 돌아온 '베테랑2'를 통해서 말이다.
 
베테랑 형사 서도철(황정민)과 강력범죄수사대 형사들은 지금도 여전히 가족들도 못 챙기고 밤낮없이 범죄들과 싸운다. 어느 날, 한 교수의 죽음이 이전에 발생했던 살인 사건들과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밝혀지며 전국은 연쇄살인범으로 인해 떠들썩해진다.
 
이에 형사들은 단서를 추적하며 수사를 시작하지만 이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연쇄살인범은 다음 살인 대상을 지목하는 예고편을 인터넷에 공개하며 또 한 번 전 국민을 흔들어 놓는다. 강력범죄수사대는 서도철의 눈에 든 정의감 넘치는 막내 형사 박선우(정해인)를 투입하고, 사건은 새로운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영화 '베테랑2' 스틸컷. CJ ENM 제공

역시나 믿고 보는 액션 영화 장인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2'는 '베테랑' 이후 9년이라는 긴 시간을 기다려 온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오히려 '베테랑2'는 9년의 시간을 농축한 듯 깊이 있고 더욱 묵직해진 액션으로 돌아왔다.
 
1970년대 음악인 블론디(Blondie)의 '하트 오브 글래스'(Heart Of Glass)로 신명 나게 시작했던 '베테랑'처럼 '베테랑2' 역시 1970년대 음악인 스페인 여성 듀오 바카라의 '예스 썰, 아이 캔 부기'(Yes Sir, I Can Boogie)로 시리즈 특유의 분위기를 살리며 서도철 형사가 돌아왔음을 알리며 시작한다.
 
'베테랑2'의 오프닝 시퀀스는 '베테랑'의 분위기를 그대로 잇는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심플했던 '베테랑'과 달리 '베테랑2'는 서사나 카메라 무빙, 편집 등 모든 면에서 다변화한 모습을 보인다.
 
무엇보다 '베테랑'이 죄지은 놈을 때려잡는다는 서도철의 정의를 바탕으로 시원하게 직진해 나갔다면, '베테랑2'는 형사이자 아버지로서 갈등하고, '형사'라는 테두리 안에서 '정의'를 이야기하며 여러 길을 오간다.
 
영화 '베테랑2' 스틸컷. CJ ENM 제공

사회적인 주제를 끌어안으며 깊어진 만큼 '베테랑'2에서는 때때로 누아르와 심리극에 가까운 색채를 드러낸다. 이는 영화의 주제와 관련이 있다.

어찌 보면 단순하면서도 명확하게 죄지은 놈들을 거침없이 때려잡았던 서도철 형사 앞에 놓인 질문은 '사적 복수'다. 그동안 '더 글로리' '모범택시' 시리즈, '비질란테' 등 다양한 콘텐츠에서 사적 복수 내지 사적 제재를 다뤄왔다. '정의 구현'이라는 이름으로 사적 복수를 다룬 콘텐츠가 내세운 것은 이른바 '사이다'다.
 
이러한 사적 복수를 다룬 콘텐츠에서 경찰과 법은 무기력하고, 무너져버린 세상의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법과 사회의 테두리를 벗어나야만 가능한 것처럼 그려냈다. 영화적인 것을 넘어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판타지'에 가깝지만, 시청자와 관객들은 이에 열광했다.

문제는 콘텐츠 속 '정의 구현' 방식은 오직 가해자만을 응징하는 것으로 이뤄진다는 데 있다. 현실에서 유스티티아의 저울은 돈과 힘 있는 자 쪽으로 기울어졌고, 힘없는 피해자들을 구해주지 못한다는 데 대한 실망감은 사적 복수에 열광하게 했다. 그러나 그러는 사이 현실 정의 구현을 위한 시스템과 사적 복수로 구원받지 못한 피해자들에 대한 고민은 한쪽으로 밀려나게 됐다.
 
실제로 최근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 가해자들의 신상 공개가 이뤄지며 사적 제재에 대한 딜레마에 직면하게 됐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정의 구현이라 표현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과연 가해자 신상 공개라는 사적 제재 방식이 성폭력 사건을 막는 데 도움이 될 것인지, 누구를 위한 사적 정의 구현인지 생각해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영화 '베테랑2' 스틸컷. CJ ENM 제공

류승완 감독은 이러한 현시대의 질문을 과감하게 영화 안으로 가져왔다. 콘텐츠가 다루는 '사이다'에 대한 과정과 기준이 달라지고, 사회 역시 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가운데 범인을 때려잡는 사이다를 제공하는 것으로 그 역할을 했던 영화는 달라진 시대를 반영하게 된 것이다.

'베테랑2'에서 서도철 형사가 말하듯 사적 정의 구현이 주는 통쾌함에 빠져든 사이, 우리는 좋은 살인과 나쁜 살인을 나눠 생각하게 된다. 영화는 서도철 형사에게 이러한 질문이 담긴 사건을 던져줌으로써 관객에게도 사적 복수는 정말 '정의 구현'이라 부를 수 있는지 질문한다.
 
그만큼 9년 전 '베테랑'이 나왔을 때와 비교해 현실은 격변했고, 시스템에 대한 불만과 문제가 쌓였다. 류승완 감독은 '베테랑'을 단순한 오락 영화만으로 다루지 않고 시대와 함께하는 영화로 깊이를 더했다. 사적 복수를 소재를 다루는 영화가 어떠해야 하는지, 그리고 영화라는 장르성을 어떻게 살려야 하는지 '베테랑2'가 보여준 것이다.

사회의 변화를 조금 더 파고들었고, 서도철의 정의이자 우리 사회의 정의를 고민하고 묻기에 영화는 자연스럽게 '베테랑'보다 더 깊고 무거워졌다. 서사적으로도 범인을 잡는 이야기에 더해 아들과의 관계까지 다루다 보니 복잡성을 가져간다. 이에 '베테랑'이 줬던 심플함을 기대했던 관객 그리고 '범죄도시' 시리즈가 안겨준 단순명료한 사이다에 익숙해진 관객에게 '베테랑2'가 어떤 식으로 작용할지가 이 영화의 관건이다.
 
영화 '베테랑2' 스틸컷. CJ ENM 제공

그러나 '베테랑2'는 여전히 '액션영화'다. 감독의 표현을 빌리자면 '정형외과 액션'으로 돌아온 '베테랑2' 속 보다 강력하고 다채로워진 액션은 '액션 장인' 류승완 감독의 모든 것이 담겼다. 여기에 액션 베테랑 유상섭 무술감독까지 가세해 완성도를 높였다. '존 윅 4' 계단 액션 시퀀스 못지않게 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을 유발하는 계단 액션 시퀀스부터 옥상 액션, 지붕 액션 등에서 감독의 DNA를 확인할 수 있다.
 
서도철 형사라는 맞춤옷을 입고 등장한 황정민은 현실적인 액션은 물론 깊어진 감정선을 연기하며 '베테랑2'를 기다린 보람을 느끼게 한다. 황정민의 체력이 허락하는 한, '베테랑'이 시리즈를 거듭하며 서도철 형사를 오래 볼 수 있길 바랄 뿐이다. '존 윅' 시리즈의 키아누 리브스가 열일하는 것처럼 말이다.
 
'베테랑2'로 진가를 드러낸 또 다른 배우는 정해인이다. 이른바 '맑눈광'(맑은 눈의 광인) 캐릭터로 등장하는 정해인은 류승완 감독의 믿음에 완벽하게 보답한다. 황정민에 뒤지지 않는 액션을 선보인 정해인이 빨리 류승완 감독의 영화 내지 다른 액션 영화에서 '베테랑2'로 갈고닦은 실력을 자랑하길 기대해 본다.
 
118분 상영, 9월 13일 개봉, 쿠키 1개 있음, 15세 이상 관람가.

영화 '베테랑2' 포스터. CJ EN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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