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싣는 순서 |
①채상병 어머니 편지 "아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②채상병을 그리워하는 이들, 우리 사회에 묻다 ③"예람이 스케치북이 증거잖아요!" 3년간 관사 짐에 있었다 ④윤일병 어머니 "아들 떠나보낸 10년, 군은 바뀌지 않아" ⑤홍일병 어머니 "살릴 기회 3번 있었는데…제가 무능한 부모예요" ⑥군의관 아들의 죽음, 7년간 싸운 장로 "하늘도 원망했어요" ⑦묻혔던 채상병들, 1860건을 기록하다[인터렉티브] ⑧부사관 죽음이 부모 이혼 때문이라니…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진실들 ⑨미순직 군인 3만8천명…"억울한 죽음 방치 안 돼, 합당한 예우를" ⑩군에서 자식을 잃은 부모는 차별에 두 번 상처받는다 ⑪채상병 어머니 "해병대 전 1사단장 처벌 바란다" ⑫안규백 "은폐·조작 얼룩 군사망사고, 객관적 시각 필요" ⑬"스케이트 즐기다 죽지 않았다" 하사의 고백, 국방장관님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계속) |
제보자의 이름은 '김태균(1956년생)'이다. 1979년과 1980년 사이 겨울 강원도 홍천 11사단 9연대 C동에서 복무했다. 계급은 하사 간부였고, 연대 군수과에서 창고장을 맡았다. 부대는 당시 동계체력장이라는 이름으로 병사들에게 큰 저수지에 얼음판을 만들어 강제로 스케이트를 타게 했다. 간부였던 태균 씨는 동계체력장을 만들고 병사들에게 관리를 맡긴 기억이 또렷하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지만 동계체력장 관리 병사 2명이 물에 빠져 죽는 사고가 발생했다. 관리하다 변을 당한 건데 '스케이트를 타다 물에 빠져 죽었다'는 식으로 보고가 올라갔다. 창고장이었던 태균 씨는 숨진 병사 2명을 직접 화장 했는데 유족인 어머니를 마주한 기억이 난다. 그때 동계체력장을 관리하다 숨졌다는 사실을 말하지 못한 것이 평생 한이 되고 있다.
"화장할 때 제가 유족들에게 얘기를 못 했어요. 평생 내가 마음에 두고 있었던 거예요. 애들 억울하게… 어머니가 화장하는 저희에게 고맙다고 하셨는데 미안한 마음이 컸습니다. 진상을 알고 있었지만 당시는 얘기할 수가 없었거든요. 그때는 억울하게 죽은 애들이 많았죠."
7018부대 였는데 숨을 거둔 군인들의 정확한 소속과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부대에서 가장 가까웠던 곳이 1대대 또는 2대대였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태균 씨는 1977년부터 1982년까지 5년간 복무하다 전역한 뒤 오랜 세월 목회자의 길을 걸었다.
"이름도 모르지만 얼굴도 몰라요. 왜냐하면 죽은 병사들은 대대 병사고 저는 연대 간부였으니까요. 그때 부대에서 얘들이 몰래 강에 가서 스케이트 즐기다가 물에 빠져 죽었다. 무단 이탈해서 그랬다는 식으로…40여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이렇게 제보를 받아주시니 감사하네요."
태균 씨가 지난 9일 전북CBS 기획기사를 보고 직접 제보한 이 사연은 우리 주변에 묻혔을 수많은 채상병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활동이 종료되면서 조사 업무는 국방부로 이관됐다. 주로 유족의 진정이 있는 경우 군에서 조사를 진행한다.
유족이 의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생존한 유족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순직 군인이 젊은 시절 결혼하기 전에 입대해 복무하다 사망한 경우는 직계비속이 없고 사망한 지 오래되면 직계존속마저 생존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방계의 친족마저 관심을 갖지 않을 경우 사망에 관해 잘 아는 동료가 없으면 진정을 제기할 주체가 없게 된다.
창군 이래 미순직 군인 약 3만 8천 명 가운데 이러한 죽음이 얼마나 있을까. 또 국가는 억울한 죽음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 지난 21대 국회에서는 답을 찾지 못했다.
지난 2023년 8월 25일 제409회 국회 제3차국방위원회에서는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유가족의 접근이 쉽지 않은 국방부로 다시 이관된다고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겠느냐" (안규백 의원), "위원회만큼은 아니더라도 인력과 예산이 반영되어야 하는데 인수인계에 대한 준비가 거의 안 돼 있는 걸로 판단된다. 인원 증원을 했느냐" (김병주 의원), "국민이 신뢰하지 않으니까 국방부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기 위해 특별위원회를 만든 것…투명하게 수사과정과 처리가 공개되고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켰다면 이런 얘기가 나올 이유가 없다. 지금도 채상병 사건 보면 달라지지 않았다" (정성호 의원), "유족이 없는 사망사고 중에는 반드시 국가가 책임지고 해결했어야 하는데 할 수 없었던 역사적 상황이 있었다. 반드시 그건 조사를 하고 억울함을 푸는 것이 국가의 책무다." (설훈 의원) 등 야당 의원들의 질의가 쏟아졌다.
당시 이종섭 국방부장관은 "위원회가 해체되더라도 억울함 죽음이 없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에서 활동했던 한상미 조사관은 "국방부 장관도 얘기했고 국회의원들도 분명히 언급했는데 여전히 그대로라는 얘기를 들었다"며 "억울한 죽음을 밝혀달라고 누군가 신청을 해야만 순직 군인들의 명예가 회복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바로 신청주의가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조사 인원들이 1년에 많아야 2~3건의 진상 조사를 할텐데 그렇다면 7명으로 놓고 볼 경우 1년에 몇십 건이 안 되는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원활하게 진행이 되겠느냐"고 말했다.
또 "중앙전공심사위원회에서도 사건이 적체가 되다 보니까 6개월에서 1년을 기다려 재심사가 이뤄진다"며 "유족들은 긴 기다림 속에 행여나 미순직 되지는 않을까 군의 눈치를 보는 게 정말 안타깝다"고 말했다.
송기춘 전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장도 신청주의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며 군으로부터 독립된 기관에 의한 일괄 조사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송 전 위원장은 "과연 진정이 있느냐 없느냐 이것에 진상 조사가 좌우될 일은 아니다"며 "전체적으로 이걸 국가가 적극적으로 일괄 조사를 하는 게 옳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결국은 국가와 군이 자식을 죽인 거고 군이 어떻게 설명해도 유족들은 납득을 하지 않는다"며 "아무리 조사 결과가 객관적이라고 해도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군에 대한 신뢰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결국은 독립된 조사기구가 있어야 분쟁이 끝난다"며 "조사를 하려면 자료와 증인이 필요하다. 현장을 목격하지 못하는 분들도 많다 보니 시간이 더 흐르기 전에 시급하게 조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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