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서울시립갱생원, 대구시립희망원, 충남 천성원, 경기 성혜원 등 성인 부랑인 수용시설 4곳에서 1970~80년대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이 발생했다고 판단하고 진실 규명 결정을 내렸다.
진실화해위는 9일 제86차 위원회에서 해당 성인 부랑인 수용시설에 수용됐던 신청인 13명에 대해 진실 규명 결정을 지난 6일 내렸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는 형제복지원 조사 과정에서 확인하지 못했던 국가의 부랑인 단속 정책과 시설 운영 전반에 대한 책임을 규명하는 다수의 자료를 최초로 입수해 조사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조사는 지난 37년간 은폐돼 온 전국 부랑인 수용시설 인권침해 실상을 최초로 종합 규명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진실화해위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해당 수용시설 4곳은 부산 형제복지원과 동일한 정부 시책에 의해 운영된 성인부랑인수용시설로, 경찰·공무원 등에 의한 강제수용, 본인 의사에 반하는 회전문 입소, 폭행 및 가혹행위, 독방감금, 강제노역 등 인권침해 행위가 이뤄졌다.
서울시립갱생원 수용자들은 1960년대 국가 주도의 국토개발사업에 강제 동원됐으며 서울시가 도시건설사업을 위해 추진한 새서울건설단에도 강제동원 돼 제3한강교(현 한남대교), 서울대교(현 마포대교) 건설 및 보수 현장에 투입됐으나 제대로 된 임금을 지급 받지도 못했다.
충남 천성원 입소자들은 필수적으로 모래 주머니 매달고 뜀뛰기, 기어서 철조망 통과 등 삼청 교육대 방식의 특수 교육을 받아야 했다. 1984년 6월 충남 천성원 산하 시설 양지원에서 수용자 정씨가 중대장 등에게 구타를 당하고 5일 만에 사망했으나 가해자는 폭행치사가 아닌 전치 1주 상해 혐의로만 기소돼 최종 집행유예 판결을 받기도 했다.
대구시립희망원 신규 입소자들의 경우 '신규동'이라는 공간에 격리 수용한 후 생활관을 배정받았으며 수용 중 규칙 위반을 하면 신규동 독방에 감금하는 규정을 따라야 했다.
또한 부랑인 수용 시설 간에 수시로 이뤄진 수용자 전원 조치의 명목 상 사유는 연고지 이송이었지만 1986년 부산 형제복지원에서 경기 성혜원으로 전원된 이들 중 신상 자료가 남아있는 9명의 본적 또는 주소지가 경기 지역인 사례는 단 2건에 불과했다.
이렇듯 4곳의 수용시설에선 불특정 민간인들에 대한 인권침해 행위가 횡행했지만, 1987년 실상이 폭로돼 검찰 수사를 받은 부산 형제복지원과 달리 어떠한 공적 조사도 받지 못한 채 부랑인 수용 업무를 계속했다.
진실화해위는 이번 조사에서 정부가 사회 정화라는 명목을 내세워 수시로 경찰·공무원 합동 단속반에 의한 불법적 단속 및 강제 수용을 지속했고, 민간 법인에 해당 시설들의 운영을 위탁하면서 감금·폭행·강제노역 등 여러 심각한 인권침해가 발생했음에도 방치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는 피해자에 대한 공식 사과와 실질적 피해 회복 조치, 시설 수용 인권침해 재발방지책 마련, 지속적 피해자 지원 대책 마련 등을 국가에 권고하는 한편 형제복지원을 비롯해 다른 집단수용시설 피해까지 아우르는 특별법 제정 등 종합적 피해 회복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진실화해위는 또 조사활동 종료 이후에도 추가로 확인되는 피해자에 대한 조사 활동을 제도화하고, 피해자들의 개별 구제신청이 없어도 적절한 보상 및 재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