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문재인 전 대통령이 만나 "민주당의 재집권"을 강조하며 한목소리로 내부 분열을 경계했다. 최근 당내 '비명(비이재명)'계 모임이 만들어지는 등 당내에 일고 있던 '친명(친이재명)-친문(친문재인)' 간 갈등이 검찰의 문 전 대통령 가족에 대한 수사로 인해 수면 아래로 가라앉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 대표의 당내 구심력이 더 강해지고 있다는 평가 속에, 내달부터 본격화될 이 대표 사법리스크의 향방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이재명-문재인 만나 "내부 분열 안 돼"…통합 메시지
이 대표는 8일 경남 양산 평산마을을 방문해 문 전 대통령과 약 40분 동안 대화를 나눴다. 이 대표가 문 전 대통령을 예방하는 것은 지난 2월 이후 약 7개월 만이다. 특히 이번 예방은 최근 검찰이 타이이스타젯 특혜 채용 의혹과 관련해 문 전 대통령을 뇌물수수 피의자로 수사 중인 국면에 이뤄져 이목이 쏠렸다.
이 대표와 문 전 대통령은 서로 통합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자리에 배석했던 민주당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기자들과 만나 "두 분은 가짜뉴스로 인해 내부가 흔들리거나 분열해서는 안 된다는 데 공감했다"라며 "문 전 대통령은 이 대표를 중심으로 당이 강하고 일사불란하게 결집하는 것을 좋게 보면서 가짜 뉴스에 대한 내부 분열에 잘 대응했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고 설명했다.
해당 메시지가 친문계를 수용하라는 뜻이냐는 질문에 조 수석대변인은 "그런 뜻은 아니다"라며 "좀 더 잘 준비하면 당 지지층의 외연이 넓어질 것이라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이어 "두 사람은 갈등하거나 분열하는 사이가 아니다"라며 "이간질, 가짜뉴스 등을 주의 깊게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문 전 대통령은 민주당의 재집권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 수석대변인은 "(문 전 대통령이) 민주당이 재집권을 준비해야 한다. 준비 안 된 대통령이 집권해 혼란스럽다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조 수석대변인에 따르면, 이 대표는 "문 전 대통령의 가족에 대한 현 정부의 태도는 정치적으로도 또 법리적으로도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정치 탄압이고 한 줌의 지지세력을 결집하기 위한 수단 아니냐"고 했다. 이에 문 전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나나 가족이 감당할 일이나 당에게 고맙게 생각하고 당당하게 강하게 임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文 재판에 즉각 대응한 李, '사법리스크' 우려에도 당내 구심력 강해져
이 대표는 이번 문 전 대통령 예방을 계기로 당내 통합을 도모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비명계는 지난 4·10총선에서의 이른바 '비명횡사'로 불리는 공천 이후 민주당이 이 대표 '일극체제'로 가고 있다며 문제를 제기해 왔다. 일극체제 대한 우려는 지난 달 마무리된 전당대회까지 이어졌고, 이후에도 주요 사안들이 발생할 때 마다 소환돼 왔다. 친문계 적자(嫡子)로 불리는 김경수 전 경남지사의 복권, 당내 비명계 전직 의원들 모임인 '초일회'의 활동개시와 친문계 연구모임인 '민주주의4.0'의 재정비 등이 이 같은 사건들이다. 전날에는 당내 차기 당권 주자로 분류되는 김동연 경기지사가 한 유튜브 방송을 통해 이 대표의 총선 공약이던 전국민 25만원 지원법을 비판하기도 했다. 김 지사는 최근 비명계인 전해철 전 의원을 도정자문위원장으로 위촉했다.
이 같은 비명계의 목소리를 의식한 듯, 이 대표는 이번 문 전 대통령 수사를 계기로 당내 '전(前)정권 정치탄압 대책위'를 구성을 지시하는 등 비호에 나섰다. 친명계 또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계파 구분 없이 강하게 대응해야 할 문제라며 '원팀'을 강조했다. 해당 대책위는 친명 핵심으로 분류되는 김영진 의원을 위원장으로 임명하는 한편, 친문계 황희·윤건영·김영배 의원 등도 참여토록 해 화합을 강조했다.
이 같은 친명의 움직임으로 인해 당내 일각에서는 이 대표를 구심점으로 한 당내 통합이나 화합에 속도가 붙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된다. 문 전 대통령의 배우자인 김정숙 여사의 '타지마할 의혹' 당시에는 친명이 적극 옹호에 나서지 않으면서 미묘한 갈등 기류가 감지됐던 반면, 이번에는 발 빠르게 당내 공식 대응기구 구성을 지시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비명계의 구심점인 문 전 대통령이 이 대표와의 회동에서 직접 '재집권'과 '분열 우려'를 전한 만큼 이 대표에게 더욱 힘이 실리게 됐다.
다만 다른 일각에서는 이 같은 통합의 분위기가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 재점화 이후에도 지속될 수 있겠느냐는 시각도 제시된다. 오는 10월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위증교사 관련 1심 선고가 나올 전망인데, 자칫 유죄 판결이 나올 경우 리더십에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비명계가 이 대표의 리더십 흔들기에 나설 수도 있다. 한 비명계 의원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민주당은 그동안 검찰 수사에 대해 집중적으로 문제제기했지만, 법원으로부터 유죄가 나올 경우 상당한 타격이 불가피하다"라며 "이 대표 체제가 흔들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현재 분위기로는 이 대표 흔들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 대표가 사법리스크를 안고 있음에도 압도적 지지로 당 대표 연임에 성공하는 등 당내 확고한 지위를 확립했다는 것이다. 한 친문계 의원은 통화에서 "이미 국민들은 재판의 유무죄와 상관없이 이 대표를 유력한 대권주자로 보고 있다"며 "비명계 움직임은 찻잔 속 태풍에 불과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