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순직 군인 3만8천명…"억울한 죽음 방치 안 돼, 합당한 예우를"

[묻혔던 채상병들⑨]

송기춘 전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장. 김현주 뉴미디어 크리에이터

▶ 글 싣는 순서
①채상병 어머니 편지 "아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②채상병을 그리워하는 이들, 우리 사회에 묻다
③"예람이 스케치북이 증거잖아요!" 3년간 관사 짐에 있었다
④윤일병 어머니 "아들 떠나보낸 10년, 군은 바뀌지 않아"
⑤홍일병 어머니 "살릴 기회 3번 있었는데…제가 무능한 부모예요"
⑥군의관 아들의 죽음, 7년간 싸운 장로 "하늘도 원망했어요"
⑦묻혔던 채상병들, 1860건을 기록하다[인터렉티브]
⑧부사관 죽음이 부모 이혼 때문이라니…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진실들
⑨미순직 군인 3만8천명…"억울한 죽음 방치 안 돼, 합당한 예우를"
(계속)


"단 한 명의 군인도 억울한 죽음으로 방치돼서는 안 됩니다. 남은 유족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고인이 죽음에 상응하는 예우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대통령 직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활동이 종료된 지 1년이 됐다. 2023년 9월 활동이 마감된 군사망사고위원회 송기춘 전 위원장을 비롯한 조사관들은 억울한 죽음의 진상을 밝혀냈다는 보람만큼이나 할 일을 다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크다.

1948년 창군 이후 군 복무 중 사망자는 23만명이 넘고 이 중 순직자로 인정되지 못한 이들이 여전히 3만8천명에 달하기 때문이다. 조국의 부름에 아들을 보낸 유족이 응어리진 가슴을 안고 살아가는 것을 진상 규명 과정에서 뼈저리게 느낀 만큼 책임감도 크다.

송기춘 전 위원장은 최근 CBS노컷뉴스와 인터뷰에서 "현재 순직 분류기준으로 판단하면 미순직자 대부분이 순직에 해당된다. 상당수가 당시 매(화)장보고서 등 군 기록만으로도 순직으로 분류될 수 있다"고 했다.

실제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가 1955년과 1956년 군인들을 직권으로 조사한 결과 1955년 172명, 1956년 213명에 대해 순직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들은 복막염 결핵성 중등도, 심장마비, 복막염, 폐렴, 대장염, 맹장염, 영양불급병, 위 관련 질환, 뇌출혈, 심장마비, 심근경색 등 다양한 질병으로 숨진 군인들이었다.

위원회는 이들 모두 한국전쟁 중 또는 직후 입대해 각급 부대와 각지의 병원 등에서 복무 중 밀집된 군 생활로 인해 군 복무와 인과관계가 있는 질환이 발병하며 병사했다고 판단했다.

왼쪽 위부터 음독 자해사망, 향수로 자해사망, 영양불급병, 오른쪽 아래부터 경독맥파열 출혈사, 결핵 폐 활동성 중등도, 영양불급병으로 숨진 군인들의 매(화)장 보고서.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제공

이들 매(화)장보고서를 보면 군 복무환경의 열악함으로 인해 질병에 감염되거나 영양실조(영양불급)가 되었을 게 분명한데도 이에 관한 국가의 책임이 따르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향수(鄕愁)로 인한 자해사망'이라거나 '집안 부채 문제 때문'에 자해사망했다는 결론에 쉽게 이른 것도 충분한 근거가 제시되어 있지 않는다. 죽음에 대한 책임이 망인에게 있다는 취지의 서술 방식도 나타난다.

이는 1955년과 1956년 단 2년에 국한된 직권 조사임에도 무려 400명에 육박하는 순직 군인들을 찾아낸 성과였다. 지금이라도 국가가 나서 범위를 넓힌다면 더 많은 순직 군인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다는 게 송 전 위원장의 아쉬움이다.

송기춘 전 위원장은 "군의 조사 역량도 훌륭하지만 여전히 불신이 강하다. 군으로부터 독립된 사망사고 조사기구가 필요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순직 결정 과정에 있어서 유족의 진정 제기를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되며, 독립된 기구를 통해 사망원인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는 취지다. 군 내 사망자가 다른 시기에 비해 많은 편인 1950~60년대와 같이 오래된 사건의 경우 진정을 제기할 유족 등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한상미 전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 김현주 뉴미디어 크리에이터

군사망사고위원회에서 조사3과 2팀장을 맡았던 한상미 씨도 "유족의 진정 제기에 따라 이뤄지는 현행 조사 방식은 문제가 있다. 유족은 당장 순직 인정이 중요하기 때문에 군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같은 기능을 수행하는 다른 국가기관을 설립할 경우 처음부터 직권으로 군 사망사고를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을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군사망사고위원회는 '군 사망사고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군 사망사고 가운데 의문이 제기된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는 기구로, 2018년 9월 14일 출범했다. 활동 기간 연장을 거쳐 지난해 9월 13일 활동을 마감했다.

군사망사고위 활동 종료 이후 관련 조사활동은 국방부 전사망민원조사단과 국민권익위원회, 국가인권위 군인권보호관 등이 하고 있다. 하지만 인권위는 사망사고 발생 후 1년 이내 사건의 조사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조사인력도 8명 정도에 불과하다. 군 영향력 밖의 전문성 등을 갖춘 양질의 조사인력으로 구성된 독립기구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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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CBS 기획 [묻혔던 채상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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