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공소장에 '빨간펜' 든 尹명예훼손 재판부[법정B컷]

연합뉴스

이 사건의 피해자는 행정부 수반, 대통령입니다. 피고인들은 지난 20대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 허위 보도로 당시 국민의힘 유력 대선 후보였던 윤석열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죠.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씨와 신학림 전 언론노조 위원장 등이 그 피고인으로 특정돼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검찰은 김씨가 신 전 위원장과 허위 인터뷰를 해 대선 국면에서 대장동 비리 의혹의 몸통을 윤 대통령으로 돌리려 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세 차례 공판준비기일이 열렸습니다. 본격 재판에 앞서 쟁점 정리 등을 하는 재판 절차죠. 하지만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재판부가 정보통신망법 명예훼손에 걸맞지 않은 '공소장'이라며, '빨간펜'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피해자가 살아있는 권력인 탓에 공소장이 유독 과했던 걸까요. 결국 검사는 공소장을 다시 써왔습니다. 오늘의 '법정B컷'은 대통령 명예훼손 사건의 공소장을 두고 펼쳐진 법정 공방을 담아보겠습니다.

오랜만에 잘 쓴 공소장인 줄 알았는데…

공소장은 재판 절차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검사가 법원에 특정 형사사건의 심판을 청구하는 것, 즉 재판을 열어달라고 하는 것을 '공소제기'라고 합니다. 이때 검사는 공소장을 작성해 법원에 제출해야 합니다.  

다만, 검사는 법원에 공소장 하나만을 제출해야 합니다. 재판부가 예단을 만들 수 있는 서류 등을 첨부하거나 그 내용을 인용할 수 없습니다. 판사가 공소장을 읽고 유죄 심증을 품어서는 안 되거든요. '공소장일본주의' 원칙입니다.

한마디로 공소장은 피고인의 구체적 범죄 사실이 담긴 수사의 '결정체'인 셈입니다. 피고인은 공소장에 기초해 방어논리를 세울 수 있으니, 명확한 공소장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대통령 명예훼손' 사건에서는 이 공소장을 두고 잡음이 일었습니다. 재판부가 공판 준비기일 첫째 날부터 쪽수와 몇 번째 줄인지까지 짚어가며, 검찰 공소장을 지적했거든요. 첫날부터 재판부와 검찰의 치열한 논의가 2시간 반 가까이 이어졌습니다.

2024.07.31 '대통령 명예훼손' 사건 1차 공판준비기일
재판장: 아까도 말했듯 정보통신망법 명예훼손인가 의문이 (듭니다.) 왜냐하면 공소 사실은 핵심만 적는 건데, 주요 사건의 경우 공소장이, 이 사건도 70장이 넘는데…그게 다 필요한 부분이라면 문제가 없겠죠. 그런데 불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검토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차원에서 1회 공준이니까 말씀드립니다.

공소장 16쪽 보세요. 정통망법 명예훼손의 경우 비방의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허위 사실을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것이) 구성요건입니다. 이 사건이 명예훼손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허위의 사실'이 무엇인가가 중요하지 않습니까. 16쪽 3문단에 동그라미 1번(①) '소위 공산당프레임'이라고 검찰이 해석을 달았는데, (그 내용은) '이재명이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과 무관하고, 오히려 성남시의 이익을 위해 공산당처럼 민간업자들에게 돌아갈 이익 빼앗아 간 사람'이라는 취지입니다. '대장동 개발비리와 이재명 후보를 단절시키는 내용의 허위 사실'이라고 기재 돼 있어요. 그런데 이게 윤석열 명예훼손과 무슨 상관이죠? 피해자 윤석열에 대한 정통망법 명예훼손에서 얘기하는 허위 사실에 이 동그라미 1번(①)이 포함되는 겁니까?

검사: 결국 공소장 일본주의 관련 말씀인 것 같습니다. 검찰에선 이 사건 관련해 변호인들 측에서 공인에 대한 의혹 제기가 가능하다는 (주장에) 백 번 공감합니다. 다만, 이 사건은 김만배라는 사람이 어떻게 윤석열과 조우형의 수사 무마 의혹을 (만들었)는지, 배경 설명이 반드시 들어가야 (합니다) 대장동 개발 진행 경과, 김만배 등 이재명 유착 관계, 의혹 제기와 대응이 적혀 있는데 김만배의 범행 동기와 의도를 입증하기 위해 충분히 필요한 부분입니다. 명예훼손과의 결부는 조우형 수사 무마에 대한 허위 사실을 기자인 신학림에게 전달해서 보도되게 한 부분이 명예훼손인 부분…
우선 재판부는 판결문에 담길만한 내용이나 명예훼손과 관계없는 간접 정황들이 공소사실에 녹아들어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더욱이 "정보통신망법 위반 명예훼손 사건이 아니라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사건 같다"고 강한 의문을 표하며 조목조목 짚어나갔습니다.

검찰은 공소장에는 모두 필요한 내용이 담겼다고 맞섰습니다. 지난 대선 당시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이 불거지자 위기감을 느낌 김만배씨가 '허위 프레임'을 창작, 언론 작업을 벌였다는 게 검찰 시각입니다.

바뀌기 전 기존 공소장에서 검찰은 '언론 작업'이 두 갈래로 진행됐다고 봤습니다. ①이재명 공산당 프레임과 ②윤석열 수사 무마 프레임이죠.

전자는 '이재명 후보는 대장동 의혹과 무관하고 외려 성남시 이익을 위해 마치 공산당처럼 민간업자에게 돌아갈 이익을 빼앗은 사람이다', 후자는 '윤석열 후보가 2011년 대검 중수2과장으로 부산저축은행 사건을 수사하면서 그룹 회장의 처남인 조우형이 대장동 사업에 대한 대출 컨설팅 명목으로 알선 대가를 수수한 혐의를 박영수 변호사의 청탁을 받고 무마했다'는 프레임입니다.

재판부는 의문을 표합니다. "이재명에 대한 '공산당 프레임'으로 피해자 윤석열의 어떠한 명예가 훼손된 건가요. 연결이 안 되잖아요"

2024.07.31 '대통령 명예훼손' 사건 1차 공판준비기일
재판장: 제가 왜 말씀드리냐면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유포는 이게 맞겠죠. 동그라미 2번(②윤석열 수사무마 프레임)은 당선을 저지할 목적으로, 동그라미 1번(①공산당 프레임)은 누구를 당선시킬 목적으로라는 대칭적 개념일 수 있는데…선거에 영향을 미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명예훼손 (사건)이잖아요. 그런데 왜, 이재명이 들어가야 하며 이것이 왜 허위 사실로 공소장에 기재가 돼야 하는지…
검찰은 "김만배가 이재명의 경쟁 후보인 윤석열에게 데미지(Damage)를 입히려 언론 작업을 했고, 이재명에게 도움 줄 부분까지 김만배의 범행 동기와 의도를 입증하기 위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반박했습니다.  

이날 재판부는 공소장을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처음에는 잘 읽혀서 오랜만에 잘 쓴 공소사실을 읽었다 했는데…적용 법조문을 보고 보니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뀐 공소장…"전 국민 혼란 빠뜨린 대선 여론 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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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검찰은 두 차례 공판준비기일을 거치고 지난달 29일 자로 공소장 변경 신청을 했습니다.

검사는 3차 공판준비기일에 공소장을 바꿔 들고 왔습니다. '공산당 프레임'을 공소장에서 삭제하고, 대장동 사업과 관련해 '김만배 대장동 사업자 측과 이재명 측의 유착 관계' 내용 등을 수정했습니다. 분량도 70장에서 50장 정도로 줄였습니다. 

검찰은 작심한 듯 PPT도 준비해 와 8가지 쟁점에 대한 검찰의 입증 계획을 구체적으로 밝혔습니다. 명예훼손죄로 처벌하기 위해선 보도 내용이 허위라는 점뿐 아니라 언론인이 이를 인지하고도 비방할 목적까지 있었음을 증명해야 합니다. 언론의 자유와 한계를 규정한 헌법 21조 4항까지 끌어온 검사는 이번 사건을, 명예훼손을 넘어선 '대선 개입 여론 조작 사건'으로 규정했습니다.

2024.09.02 '대통령 명예훼손' 사건 3차 공판준비기일
검사: 단순한 명예훼손 사건일 뿐만 아니라 김만배가 대장동 개발 비리 범행을 은폐하고 불법으로 취득한 수천억 원대의 범죄 수익을 지키기 위해 대선 전, 거액의 검은돈을 대가로 악의적인 가짜 뉴스를 생산하고 유포 확산시켜 대선 국면에 전 국민을 혼란에 빠뜨린 대선 개입 목적 여론 속 조작 사건으로 보고 있습니다.

저희 검찰 역시 언론의 자유는 자유민주주의 존립과 발전의 필수 불가결인 기본권이고, 이를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서 이런 대통령 후보라는 공적 인물에 대해서 이런 인물에 대한 언론의 의혹 검증을 최대한 허용해야 한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습니다.

하지만 언론의 자유라는 미명 하에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나 핵심 가치를 침해하는 것은 언론권 남용의 영역입니다.

검찰의 시각 속에서 언론은 팩트 체크 기능이 완전히 상실된 수동적 존재처럼 묘사됩니다. '김만배'의 프레임에 '놀아난' 무기력한 존재로 말이죠.

피고인 측은 비방이 아닌 당시 유력 대선 후보에 대한 검증 보도였다고 맞섰습니다. 검찰 논리대로라면, 대선 전 나온 '부산 저축은행' 의혹 관련 기사 모두가 김만배씨의 계획 아래 나온 것이냐고요. 

2024.09.02 '대통령 명예훼손' 사건 3차 공판준비기일
김용진, 한상진 측 변호인: 저희가 네이버 검색 자료를 냈는데, 2021년 10월 17일 경향신문이 처음 보도한 사건입니다. '부산 저축은행 사건 수사'입니다.

2022년 3월 5월 이 사건 뉴스타파 보도가 있기 바로 전날입니다. 그때 네이버에 '윤석열', '부산저축은행', '대장동' 키워드를 넣어서 기사를 검색하면, 4036건이 검색됩니다.
문제는 검찰 주장에 따르면 이 4036건이 전부 다 '김만배 프레임'에 의한 가짜뉴스라는 거죠. 그것을 입증하셔야 하고 검사님, 피고인들은 그렇지 않다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정당한 보도다. 

"여전히 미진하지만 여기까지"…본격 재판 시동

하지만, 새롭게 써낸 검사의 공소장도 '합격점'은 아닌듯했습니다. 재판부는 "아직도 공직선거법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다만, 더는 시간이 없다며, "이 단계에서 멈춘다"고 했습니다. "더 하다가는 '죽도 밥도 안된다'"고 말이죠.

재판부는 '숨 고르다 숨 멈추는 사건'이 될 수 있다며 신속 재판을 강조하며 양측의 '기세 싸움'도 잠시 접어두라고 했습니다. 피고인 측에도 주의를 줬습니다. 특히 신 전 위원장 측이 증거 부동의가 많다며 협조를 구했죠.

2024.09.02 '대통령 명예훼손' 사건 3차 공판준비기일
재판장: 신학림 측에게 증거 의견을 다시 한번 밝힐 것을 요청드립니다. 보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재판하지 말자는 증거 의견입니다. 통화내역도 다 증거 부동의를 하시더라구요. 통화 내역은 그냥 통신사에서 받은 것 아닙니까? 문자나 메일도 거의 부동의…

글쎄요. 물론 이렇게 언론의 주목을 받는 사건들의 경우 대부분 이런 식의 의견을 냅니다. 왜냐하면 난 이 재판을 인정할 수가 없다는 간접적으로 이야기하는 것…기소 자체가 부당하다고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이런 의견을 일차적으로 내시는 분들이 있고요. (중략) 근데 그 단계는 넘지 않았나 싶어요. 증거 의견을 좀 다시 정리해 주실 것을 명합니다. 

가늠하기 어려운 누군가의 '명예'가 어떻게 훼손됐는지, 이를 따지고 나아가 법정에서 증명하는 건 쉽지 않을 겁니다. 일례로 미국에서는 공화당 부통령 후보자였던 새러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가 뉴욕타임스(NYT)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냈다 1심에서 패소한 사례가 있습니다. 당시 재판부는 사실 관계가 일부 맞지 않지만, NYT가 실제적 악의(actual malice)'를 가졌다는 점을 입증하지 못했단 이유로 언론사 손을 들어줬습니다. 

이번 달 24일부터 본격 재판이 시작될 예정입니다. 재판부는 "윤석열 당시 대선 후보가 조우형이라는 대출 브로커를 참고인으로 불러 수사한 부분에서 수사를 무마했느냐가 가장 본질적인 쟁점"이라며 이 부분을 중점으로 보겠다고 했습니다. 현직 대통령이 피해자인 이번 사건 결론은 어떻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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