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8년 만에 정식으로 '솔로' 데뷔한 재현은, 자기 이름을 새긴 첫 앨범명을 '제이'(J)로 지었다. 소지품에 '재현 것'이라는 걸 알리기 위해 알파벳 제이를 쓰던 습관을 그대로 가져왔다. "저를 온전히 담았다는 의미"다.
지난달 26일 발매한 첫 솔로 앨범 '제이'는, 재현이 "저만의 색깔을 찾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면서 "그동안 쌓아온 시간의 결과물을 담아", 마침내 "제 목소리와 색깔로 완성"한 것이다. "여전히 계속 알아가는 중"이긴 해도, "그동안 나만의 것이 무엇인지 찾기 위해 보냈던 시간"을 바탕으로 8곡이 담긴 '제이'를 세상에 내보낼 수 있었다.
그룹 엔시티(NCT)의 다양한 유닛에서 활동하는 것은 물론, NCT의 여러 가지 음악 활동을 만날 수 있는 아카이빙 프로젝트 '엔시티 랩'(NCT LAB) 등을 통해 솔로곡을 내기도 한 재현. 앨범을 조금 더 샅샅이 뜯어보는 'EN:박싱'의 21번째 주인공은 재현의 솔로 데뷔 앨범 '제이'다.
CBS노컷뉴스는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에 '제이' 제작기를 들어보았다. 이번 편의 음악 부분은 네오 프로덕션(4센터) A&R팀 고아라 리더와 신지혁 담당이, 앨범 패키지 등 비주얼 부분은 이소희 크리에이티브 비주얼 리더와 정미니 담당이 답변했다.
그간 엔시티 127(NCT 127), 엔시티 유(NCT U), 엔시티 도재정(NCT 도재정)과 같은 다양한 형태로 활동해 온 재현. '트라이 어게인'(Try Again) '포에버 온리'(Forever Only) '호라이즌'(Horizon) 등 이미 솔로곡을 발표한 경험도 있었다. 그런 그가 '솔로'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2월이었다.
고아라 리더와 신지혁 담당은 재현을 "솔로 아티스트로서도 보여주고 싶고, 표현하고 싶은 모습이 분명한 아티스트"라고 소개하며 "그간 '엔시티 랩' 등으로 선보여왔던 음악들을 기반으로 2024년 하반기 솔로 데뷔를 계획하고, 논의하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앨범 발매 전후로 공개된 '제이' 제작기 '더 저니 오브 제이'(The Journey of 'J')에서는 '솔로 앨범' 작업을 위한 첫 만남, 타이틀곡과 수록곡을 정하는 과정 등이 나타나 있다. '알앤비 결을 가져가자'라는 방향성을 세운 이유를 물으니, 고 리더와 신 담당은 기존에 낸 '포에버 온리'와 '호라이즌'에서 재현이 '알앤비'와 '팝' 결의 곡을 잘 보여주었던 것에 착안했다고 설명했다.
'엔시티 랩' 프로젝트보다 더 나아가고 발전된 알앤비를 보여주는 것. 이것이 재현의 첫 번째 앨범 '제이'의 지향점이었다고. 고 리더와 신 담당은 "이외에도 잘 소화해 낼 수 있는 여러 장르가 있었지만, 첫 앨범인 만큼 재현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알앤비 장르를 중점적으로 앨범을 풀어내고 싶었다"라고 부연했다.
'더 저니 오브 제이'에서는 "재현으로 생각보다 할 수 있는 게 많다"라는 언급이 등장한다. 이에 고 리더와 신 담당은 "재현으로 할 수 있는 방향성이 많다고 실감했던 순간은 재현이 그룹 내에서도 랩이나 보컬에 한정된 멤버가 아닌 만큼, 많은 곡을 수집함에 있어 여러 장르를 염두에 두고 수집했을 때인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타이틀곡과 수록곡을 확정하기 위해 재현과 A&R팀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긴 시간 동안 정말 많은 곡을 수급하고 모니터링"하면서 고른 곡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R&B 결은 지키되 다채로움을 느낄 수 있도록, 곡들이 서로 지향하는 무드와 방향성이 겹치지 않게끔 느껴질 수 있는" 곡이었다.
"알앤비라는 가장 큰 틀의 방향성은 지키며 음악적으로도 직관적으로도 듣기 좋은 곡들로 채우려고 노력"한 결과, 타이틀곡 '스모크'(Smoke) '로지즈'(Roses) '플래밍 핫 레몬'(Flamin' Hot Lemon) '댄디라이언'(Dandelion) '컴플리틀리'(Completely) '이지'(Easy) '캔트 겟 유'(Can't Get You)까지 총 7곡이 모였다. 여기에 '스모크'의 영어 버전이 실려 지금의 8곡이 완성됐다.
트랙 리스트 배치에도 공을 들였다. 고 리더와 신 담당은 "앨범 전체를 들을 때 어느 하나의 감성만 계속해서 느끼게 되는 것이 아니라 각 곡의 유니크(고유)함을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그루비(groovy)한 느낌이나 정적인 느낌, 칠(chill)한 느낌을 중간중간 느껴가면서 앨범 후반부까지 도달할 수 있도록 신경 써서 배치했다"라고 말했다.
총 5곡의 후보 중 '스모크'가 타이틀곡으로 선정됐다. '스모크'는 부드러운 보컬과 엇나가는 플로우가 특징인 힙합 알앤비로, 사랑하는 사람과 차 안에서의 로맨틱한 순간을 음악과 함께 붐박스 위로 피어오르는 연기에 비유한 가사가 매력적이다. 관능적인 느낌을 잘 살린 안무는 댄스 크루 위댐보이즈와 안무가 로렌스 카이와이(Laurence Kaiwai)가 맡았다. 음악방송 활동 당시에는 새로운 느낌을 주기 위해 핸드 마이크와 스탠드를 활용한 버전을 선보였다.
A&R팀이 생각한 '스모크'의 강점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스모크'의 강점은 힙합과 알앤비를 동시에 느껴볼 수 있는 곡이라는 점과, 인트로-벌스-프리코러스-코러스-아웃트로 등 섹션별로 계속해서 변환점이 있어 듣는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곡이라는 점을 꼽고 싶습니다. 섹션별로 퍼포먼스나 싱잉을 각각 다채롭게 보여줄 수 있는 구간들이 있고, 마지막 아웃트로 구간의 경우 브라스 밴드가 들어오면서 반전을 주며 마무리하는 곡으로, 꼭 무대나 영상으로 즐기지 않아도 귀로 즐길 수 있는 강점과 매력이 있는 곡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이' 정식 발매에 앞서 재현은 '댄디라이언'과 '로지즈' 두 곡의 음원과 뮤직비디오를 선공개한 바 있다. 각각 민들레, 장미를 뜻하는 제목처럼 '꽃'을 주제로 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댄디라이언'이 길거리에 핀 민들레를 소재로 한 밝고 경쾌한 미디엄 템포 알앤비라면, '로지즈'는 장미에 얽힌 추억을 떠올리며 상대를 그리워하는 딥한 무드의 알앤비다.
두 곡을 선공개한 이유를 묻자, 고 리더와 신 담당은 "민들레와 장미, '꽃'이라는 가장 큰 공통점이 존재했고, 가장 대중적으로 편하게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한 '댄디라이언'과 이번 앨범의 짙은 장르적인 무드와 방향성을 보여줄 수 있는 '로지즈'를 대비감 있게 보여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라고 답했다.
이번 앨범을 준비하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이 언제인지 질문에, 재현과 A&R팀은 같은 답을 내놨다. 솔로 앨범을 위한 첫 만남 자리에서 재현이 작업한 곡을 함께 들으며, 음악적인 방향성을 이야기한 때다. 재현은 "그때 비로소 시작이라는 느낌이 들었다"라고 밝힌 바 있다.
고 리더와 신 담당은 좀 더 구체적으로 당시 일화를 전했다. "재현의 첫 번째 앨범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쯤 '로지즈'를 들려주었을 때가 인상 깊었던 것 같습니다. 이전에 재현이 보여주었던 솔로곡들과는 상반된 무드로, 곡의 완성도가 높아서 상당히 좋게 모니터링 했던 곡이고 멤버가 원하는, 대략적인 방향성도 알게 된 곡으로 제작 초기 단계였지만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앨범에 실린 각 곡에 담긴 악기 소리도 음악을 풍성하게 만들어 줬다. 고 리더와 신 담당은 "의도적으로 특정 악기를 정해서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스모크'나 '댄디라이언'은 브라스가 중간에 들어가면 곡이 더 풍성하게 느껴지고 섹션별 변화감을 만들어내 재미있겠다는 아이디어가 있어 곡에 추가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음악 감상 시에 '스모크'의 기타나 브라스, '댄디라이언' 피아노나 오르간, '캔트 겟 유'의 리얼한 타악기나 EP, '로지즈'의 복스 찹(Vox Chop) 등 여러 세션 악기나 편곡 사운드에 초점을 두고 감상해 보아도 재미있는 감상 포인트가 될 것 같다"라고 권했다.
'제이' '머니클립' '키링'까지 총 3가지 종류로 나온 앨범 디자인에 관해서도 물었다. 크리에이티브 비주얼 이소희 리더와 정미니 담당은 우선 "피지컬(실물) 앨범은 아티스트의 성향과 음악의 무드를 고려해, 클래식하면서도 캐주얼한 느낌을 중점적으로 담아보고자 했다"라고 운을 뗐다. 스탠더드 책자 형태의 '제이' 버전에 관해서는 "표지 이미지 위에 방수나 가죽을 연상케 하는 텍스처를 덧입혀 이미지를 더 임팩트 있게 표현하고자 했다"라고 전했다.
"매스큘린(masculine, 남성적인)한 느낌을 현실 속 아이템으로 캐주얼하게" 풀어내고 싶다는 데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 '머니클립' 버전 앨범이다. 이 리더와 정 담당은 "크라프트지와 검은 고무줄을 사용하여 투박한 형태를 보여주고, 내지는 제본하지 않은 비정형적 형태로 지갑 안에 마치 지폐가 담긴 것 같은 자유로운 시각적 연출을 보여주고자 했다. 폴라로이드나 가사를 활용한 아트웍 스티커로 일반적으로 지갑 속에 있을 법한 아이템으로 구성했다"라고 밝혔다.
'키링' 버전을 두고는 "팬들에게 특별한 소장 가치를 느낄 수 있도록 수록곡에서 영감을 받은 참 오브제로 포인트를 주었다. 패키지의 경우에도 성냥갑처럼 빈티지한 아이템으로 테이블에 툭 놓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라고 알렸다.
하이라이트 메들리 영상에선 LP가 돌아가는 장면이, '스모크' 뮤직비디오에는 카세트테이프가 돌아가는 장면이 나온다. 발매 당일, 재현은 LP를 들을 수 있는 곳에서 청음회를 열기도 했다. 향후 LP나 카세트테이프 형태의 앨범도 나온다는 암시일까.
이 리더와 정 담당은 "기획 단계에서 앨범 전반의 곡을 듣고 투명하고 무게감 있는 컬러의 위스키를 떠올렸다. 편안하면서도 분위기 있게 즐길 수 있는 노래들이었기에 이에 가장 어울리는 음반 매체를 고려하여 LP를 기획했고, 조만간 출시될 예정이다.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한 품목이라 현재 제작 중"이라고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LP 제작'을 염두에 두었기에, 청음회 장소도 자연스럽게 LP로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골랐다. 이 리더와 정 담당은 "재현의 음악을 이미지나 영상으로 느끼는 것에 그치지 않고 확장하여 보여줄 좋은 기회였다. 결과적으로 이번 앨범을 아티스트가 팬분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경험으로 뜻깊게 이어지게 되었다"라고 바라봤다.
첫 번째 솔로 앨범인 만큼, 예상 가능하거나 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밝힌 재현. "항상 예상 가능하지 않은 음악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건 회사도 마찬가지였다. A&R팀 고 리더와 신 담당은 "타이틀곡을 포함해서 수록곡까지 전반적으로 이지 리스닝 위주의 음악보다는, 장르적인 매력이 드러나고, 짙은 알앤비 무드의 곡들이라는 점이 가장 예상 밖으로 보일 거라고 생각한다"라고 답했다.
또한 "그룹이 아니라 솔로 아티스트로서 대중들에게 다가가는 만큼 재현만이 가진 감성을 보다 확실하게 앨범에 녹여내고 싶었다"라며 "'재현이 솔로 앨범을 낸다'고 했을 때 상상되는 음악이 아닌 '이런 음악을 하네, 이런 음악을 내는구나' 하는 반응을 끌어낼 수 있는 곡들로 앨범을 채우는 것이 저희 팀의 목표였다"라고 전했다.
"재현과 오랜 기간 많은 논의를 거쳐서 제작된 앨범인 만큼 만족스러운 부분이 더 크고, 발매 당시에만 듣게 되는 음악이 아니라 몇 년 뒤에 들어도 세련되게 느껴질 수 있는 음악만 담아내려고 노력했으니 천천히, 그리고 오래 즐겨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A&R팀 고아라 리더, 신지혁 담당)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