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보험료율 4%p 인상'을 전제로 국민연금 재정 안정에 초점을 맞춘 연금개혁안(案)을 발표한 가운데 시민사회계에선 '더 내고 더 받는' 공적연금을 원한 공론화 결과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개악(改惡)'이란 비판이 나왔다.
특히 형평성 문제를 해소하겠다며 제시한 '세대별 요율 차등인상' 방안과 관련, 정부가 오히려 청년세대와 중장년층 간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조 변화, 경제상황 등과 연동해 연금액을 조정하는 '자동조정장치' 도입에 대해서는 '사실상 연금 삭감'이란 우려가 나온다.
참여연대와 양대 노총 등 300여 개 시민단체가 모인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연금행동)은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윤석열 정부 연금개혁 방안 분석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 같은 평가를 내놨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남인순·김남희 의원과 공동 주최한 자리다.
연금행동 정책위원을 맡고 있는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위원회 차원의 연금개혁 정부안 총평을 통해 "보험료 부담은 대폭 늘리고, 급여는 대폭 삭감한 반면, 국민들의 삶의 질과 직결되는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의 급여 수준은 생색내기 인상에 그쳤다"고 말했다.
국민연금 외 기초·퇴직·개인연금 등을 활용한 '다층적 연금제도'로 국민들의 안정적 노후소득을 보장하겠다고 밝힌 정부 입장을 두고는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가 올 상반기 진행한) 공론화에서 확인된 공적연금 강화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고도 했다.
먼저 26년째 9%로 동결된 보험료율을 13%로 올리되 내년부터 세대별로 차등 인상을 적용하겠다는 내용이 도마에 올랐다. 김 교수는 "특히 청년세대를 위해 도입했다는 세대별 차등보험료는 잠재된 세대 간 연금 갈등에 불을 지를 수 있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간) 연금을 둘러싼 세대 갈등이 언론 등에서 많이 다뤄져 왔지만 실제 정치적 행동으로 나타나거나 집단적 분노로 표현된 적은 없다"며 "이제는 (원래 연금 제도에 불만이 많았던) 청년 외 장년들까지 이 문제를 두고 날카로운 설전을 벌일 가능성이 있어서 굉장히 안타깝다"고 부연했다. 이처럼 연령대 구간별로 보험료를 차등적으로 올린 전례가 세계적으로 없다는 점도 강조했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내년부터 국민연금 가입자 중 50대는 매해 1%p, 40대는 0.5%p, 30대 0.3%p, 20대 0.25%p씩 인상 속도를 달리 적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내는 돈'이 오르면 잔여 납입기간이 긴 젊은 층일수록 부담이 커지게 되는데, 명목소득대체율이 점차 낮아지는 상황에서 이는 '불공정'하므로 개선이 필요하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연금행동은 40·50대가 국민연금 최초 도입 당시 '적게 내고 많이 받게' 설계된 제도의 최대 수혜자라고 보는 정부 논리에 허점이 있다고 짚었다. 이른바 '낀 세대'인 이들이 대부분 부모에 대한 사적 부양부담을 지고 있는 상황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40~50대가 예전에 연금 보험료도 조금 내고 소득대체율도 높았을 때 (국민연금에) 가입한 사람들이니 혜택을 많이 본 게 아니냐, 그러니 보험료를 좀 더 내라는 (게 정부의) 논리"라며 "하지만 이들 세대는 2030 세대보다 노인들에 대한 사적 부양부담을 많이 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현 중장년층의 '부모'인 노인들이 받는 연금 급여가 충분하지 않다 보니, 동거 여부와 무관하게 생활비·용돈 등의 형태로 생계 지원을 하는 경우가 상당수라는 지적이다.
정부가 보험료를 가장 빨리, 많이 올리겠다고 공언한 50대의 경우 비정규직·자영업자가 많은 연령대란 특성도 고려해야 한다고 봤다.
정년이 60세 이상인 직장에 다니는 50대도 있지만, 주 직장에서 나와 재취업 또는 자영업을 하는 사례가 흔하다는 취지다. 지난해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50대 취업자 중 비정규직 근로자와 자영업자, 무급가족종사자 등이 차지하는 비중은 과반(51.3%)에 이른다.
같은 50대여도 대기업에 다니는 직장가입자인지, 소규모 자영업자인지 등에 따라 보험료 부담도 천차만별인데, 자칫 세대 내 고용형태에 따른 불평등을 심화시킬 우려도 있다는 분석이다.
김 교수는 "이들의 보험료를 빨리 올려가는 게 과연 부담 가능한 수준일까"라며 "오히려 50대를 고용하는 사용자들이 (타 연령대보다 높은) 연금보험료 부담 때문에 고용을 기피하는 페널티가 발생할 가능성은 없는지 등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이런 대안을 내놨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정부가 '연기금 재정 안정'을 위한 카드로 꺼낸 자동조정장치에 대해서도 비판적 입장을 보였다. 연금의 지속가능성을 높인다는 측면에서 미래세대를 위한 조치라 볼 수도 있으나, 실상 청년들이 받게 되는 연금급여는 대폭 깎이게 돼 '보험료 차등 인상'과 모순된다는 취지다.
자동조정장치가 도입되면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연금액을 조정하는 현행 방식에서, △최근 3년 평균 가입자 수 증감률 △기대여명 증감률 등을 감안해 인상액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바뀌게 된다.
김 교수는 국민연금연구원의 기존 보고서를 인용해 "이 보고서에 게재된 바에 의하면, 일본식 자동조정장치 도입시 평균소득자의 총연금 수령액이 17% 감소한다"며 "간단히 말해, 65세부터 사망할 때까지 연금을 받는다고 치면 총 1억원을 받아야 하는데 1700만원이 깎인 8300만원만 받는단 얘기"라고 밝혔다.
연금행동이 국민연금연구원 보고서와 동일한 가정 아래 일본식 자동조정장치를 적용한 결과, 1980년생(現 만 44세, 2045년 수급 개시)과 1992년생(만 32세, 2057년 수급 개시)의 총 연금액은 기존 연금 수급액 대비 79.77%, 80.72% 수준으로 각각 떨어지는 것으로 파악됐다.
가령 연금급여가 연 100만원일 때 물가가 3% 올랐다면 원래 103만원을 받아야 하나 자동안정장치 작동 시 101만원 또는 102만원만을 지급받게 되는 것이다. 이를 두고 '전년보다 많이 받으니 삭감이 아니'라는 정부의 해명은 "세계 연금사상 최대의 코미디"라고도 비판했다.
김 교수는 "자동조정장치 도입은 지금도 낮은 국민연금액을 더 삭감함으로써 심각한 노인빈곤문제가 개선되지 않고 수십 년 간 이어질 것"이라며 "지금의 청년세대도 앞으로 노후빈곤에 시달리게 만들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