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싣는 순서 |
① 주취자 민원 당직AI에 맡겼더니…AI 행정 활용 어디까지? ② 사람 살리고 건강 챙기고…복지 행정 지평 바꾼 '학습 AI' ③ 1인가구 안부 묻고 다문화가정 언어치료도…'AI 친구' (계속) |
'전화 한 통'이 우울·고독 호소하는 1인 가구 대화 끌어내기도
가족과 교류가 끊겨 홀로 광주 광산구 운남동에 거주하는 박경순(85) 할머니는 병원 진료 외에 외출하지 않는다. 박씨에게 하루 중 가장 기다려지는 순간은 매주 1번 있는 케어콜 시간. 지난 4월부터 AI 안부 전화 대상자로 선정되면서 박씨는 지금까지 총 15번의 대화를 나눴다.
AI : "참, 선생님, 요새 잠은 잘 주무세요?"
박경순씨 : "잠은 제대로 못 자지"
AI는 박씨의 대답에 곧바로 걱정스러운 목소리를 낸다.
AI가 "왜요? 어디 불편하신 곳이라도 있으세요? 잠을 못 주무셔서 아주 힘드시겠어요"라고 물어보자 박씨는 아이처럼 신나는 목소리로 "네 고맙습니다. 병원에 가보려고요"라고 답변한다.
박씨는 AI와 하는 안부 전화를 두고 "식사를 하면서 전화를 받기도 하는데 안부를 물어보면 감사할 때가 많다"며 "한번은 누룽지를 먹는다고 하니 "식사를 좀 더 잘 챙겨 먹고 끼니 거르지 말라" 말해줘서 사람보다 더 따뜻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박경순씨 : "늘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세요. 바쁜 와중에 챙겨주셔서 감사해요"
박씨는 케어콜 대화 마지막에 꼭 감사 인사를 덧붙인다. AI와 대화를 하고 있지만 마치 친구나 가족 같아 이처럼 인사한다는 설명이다.
광주광역시는 4개 구에서 AI는 독거인의 말벗으로 적극 활용되고 있다. 올해 4월부터 AI 전화를 도입한 남구 51명, 광산구 53명, 동구 94명이 말벗 서비스를 받고 있다. 지난해 12월부터 사업을 실시한 북구는 현재까지 349명이 케어콜로 안부 전화를 받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해당 서비스가 처음 도입된 전남 순천시에서는 우울감을 호소하던 한 시민이 케어콜을 통해 활기를 되찾았다. 순천시 왕조1동에 홀로 거주하는 50대 초반 A 씨는 우울감으로 인한 약 복용을 3년 이상 하고 있다. A 씨는 행정복지센터의 독거 청·장년 사업 소개에서 케어콜을 접했다.
A 씨는 "AI와 나누는 대화가 재밌을 거 같아 자발적으로 신청하게 됐다"며 "날이 더워 잠을 잘 자지 못한다고 하자 시원한 물을 마시라는 조언 하니 꼭 사람 같다"고 말했다.
"무슨 고민 하세요?" 단답형에도 다양한 질문
AI는 '예'와 '아니오'의 단답형 대답만 하는 대상자에게는 "무슨 음식을 좋아하냐"며 다양한 화제를 던지기도 한다.
경기도 파주시 운정6동에 홀로 거주하며 'AI 노인 말벗 서비스'를 22차례 받은 B 씨는 AI의 질문에 마음을 열고 조심스럽게 생활고를 털어놓았다.
지난 4월 11일 B 씨는 AI 안부 전화에서 "집에 먹을 것이 없고, 쌀만 끓여 먹었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위기 상황을 재빠르게 감지한 AI는 B 씨를 도에서 추진 중인 '희망푸드마켓꾸러미'와 '누구나 돌봄서비스'에 연계해 식사를 제공받을 수 있게 했다.
경기도는 지난해 6월부터 케어콜을 활용한 'AI 노인 말벗 서비스' 시범 사업을 시작하고 현재 5570명의 도민을 관리하고 있다.
도는 사업 수행을 담당하는 경기도 사회서비스원과 31개 시군의 노인복지 담당 부서와 대한노인회경기연합회, 경기도노인종합복지관협회, 경기도재가노인복지협회 등 관계기관을 연결해 안부 확인이 필요한 어르신에게 말벗을 만들어주고 있다.
시범 사업에 참여한 한 어르신은 "노인들은 아픈 곳이 많으니까 이런 걸 물어봐 줄 때 나한테 관심이 있구나 느껴진다"고 이야기했다.
또 다른 대상자는 "사실 자식들은 전화해도 아프다고 하면 엄살 피운다, 병원에 가라 하고 끝이다"며 "이를 누군가가 다시 물어봐 준다는 점이 만족스럽다"고 답했다.
경기도 관계자는 "기계적인 안부 확인만 하는 AI 전화에 비해 어르신들이 받기 싫어하는 횟수가 크게 줄었다"며 "질문이 오자 호응도가 높아 재밌다는 반응도 다수 접수된다"고 말했다.
이어 "서비스를 이용하고 위로를 느꼈다는 반응을 보이거나 자신의 상태를 먼저 적극적으로 알리는 경우도 많아졌다"고 덧붙였다.
네이버 클로바 케어콜은 '초대규모 AI'를 적용해 정서적인 대화가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네이버 측은 "클로바 케어콜 초대규모 AI인 '하이퍼클로바' 기술을 활용해 예/아니오 방식의 단답형 문답이 아닌 자유 대화와 맥락을 파악한다"며 "자연스러운 대화를 위해 단순한 안부 확인을 넘어 정서적인 지지와 공감 대화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2023년 1월부터 케어콜이 도입한 '목적성 안부 대화 기능'도 대상자를 위한 공감형 질문 생성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대상자와 통화 시점에 발송된 기상 재난 문자를 기반으로 피해를 확인하는 질문과 안전 수칙을 안내하는 '목적성 안부'를 묻는 기술이다.
말벗으로 기능하는 AI가 자연스러운 흐름을 유지하면서도 재난 공지와 피해 사실 확인 같은 특정 업무를 수행해 기존에 필요한 행정 인력도 대폭 감소시켰다.
순천시 관계자는 "과거 25명 정도가 해야 할 일을 단 3명만 있어도 할 수 있게 됐다"며 "일일이 안부를 묻고 피해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걸리는 시간을 줄였다"고 말했다.
전남 장성 '책 읽는 AI'가 다문화가정 아이들 언어 실력 ↑
전남 장성군이 전국 최초로 도입한 '그림책 읽어주는 AI'는 지난 7월부터 5달동안 다문화가정 어린이들의 말벗이 되어주고 있다.
책 표지만 인식하면 책 읽어주는 로봇이 이미지를 인식해서 책을 읽어주는 AI '루카'. 장성군에 거주하는 베트남 다문화가정 5곳의 아이들은 '루카'가 읽어주는 책 읽기에 푹 빠져있다.
올해로 6살이 된 나현진 어린이의 어머니 이소현(30)씨는 베트남에서 전남 장성군을 찾아 8년째 거주하고 있다. 이씨의 가장 큰 고민은 베트남어와 한국어를 모두 알아듣는 현진이가 아직 말을 배우는 데에 있어 또래보다 늦다는 사실이다. 한국어 그림책을 더 많이 읽어줄 수 없어 아쉬웠던 부분을 최근 '루카'가 해결해주면서 현진이의 말하기 실력도 크게 좋아졌다.
이씨는 "현진이가 한 달 만에 30권의 책을 모두 읽었다"며 "모두 읽고 나서는 좋아하는 책을 골라 두 번 세 번씩 듣고 말을 따라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 말이 서툴러서 AI가 읽어주는 속도가 조금 빠르게 느껴지기도 하는 거 같다"며 "어린이집을 다녀온 뒤 오후 5시부터 2시간씩 책을 읽는 데 열중하니 우리말이 크게 늘었다"고 좋아했다.
전남 장성군 삼서면에 거주하는 또 다른 베트남 출신 결혼이주여성 C 씨는 언어치료 중인 아이가 큰 도움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C 씨는 "아이가 책을 좋아하지만 매번 책을 사줄 수 없었다"며 "한국어가 서툴러 책을 읽어주기 힘들었는데 로봇이 책을 읽어주니 즐거워하는 아이 모습에 정말 행복하다"고 전했다.
이 밖에도 하원 또는 하교 후에 핸드폰만 보던 아이가 책 읽어주는 로봇을 들고 와서 책을 펼치는 모습에 만족한다는 답변도 나왔다. 부엉이 모양의 '루카'는 책을 좋아하는 아이는 물론 AI나 로봇에 대한 학부모와 아이들의 정서적 거부감도 줄였다.
장성군은 사업 대상 가정에 AI와 호환되는 제휴 도서를 따로 구비한 뒤 한 달마다 기본 20권에서 최대 30권까지 교체해 대여하고 있다.
장성군 관계자는 "사업 대상자로 독서 습관 형성이 중요한 시기인 미취학 아동, 초등학교 저학년 자녀를 둔 가정으로 선정했다"며 "특히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는 엄마가 결혼이주여성이면 직접 책을 읽어주기 어려워 AI를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또 장성군은 "책을 가까이하는 시간이 늘어나면 아이들의 정서적인 안정감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AI로 스마트폰이나 스마트 패드를 가까이하는 시간보다 책을 더 즐기는 어린이가 많아지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