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베일을 벗었다. 지난해 BIFF 내홍으로 수장이 잇따라 사퇴하는 등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고, 올해 국고 보조금이 절반으로 줄었지만 상영 편수를 늘리는 등 푸짐한 영화 상차림을 선보인다.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회는 3일 오전 해운대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올해 영화제 개·폐막작과 영화제 기획방향 등을 설명했다.
올해 영화제는 오는 10월 2일부터 11일까지 영화의 전당 등 7개 극장 28개 스크린에서 관객을 만난다. 상영편수는 224편이다. 지난해 209편과 비교해 다소 늘었다.
BIFF 측은 국고보조금 삭감, 집행위원장 공석 등 어려움이 있었지만 아시아 최고 영화제다운 규모를 지키기 위해 상영편수를 늘리고 내실을 다지는 데 집중했다고 밝혔다.
영화제의 포문을 여는 개막작은 김상만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전,란 Uprising>이 선정됐다.
영화는 박찬욱 감독이 제작, 각본에 참여하고 강동원, 박정민, 차승원, 김신록, 진선규, 정성일 등 화려한 배우진으로 제작 당시부터 화제를 모았다.
집안 노비들이 난을 일으키자 양반가 외아들(박정민)과 그의 몸종(강동원)이 서로에게 칼끝을 겨누는 내용의 사극 대작이다.
박도신 집행위원장 직무대행은 "영화제를 대표하는 개막작은 많은 요소를 고려한다. 지난해 개막작은 대중성 측면에서 미흡하지 않았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는 일반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대작을 준비해 관객 만족도가 높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폐막작은 싱가포르 출신 에릭 쿠 감독의 <영혼의 여행>가 선정됐다. 그는 싱가포르인 최초로 칸, 베를린, 베니스 국제영화제에 초청돼 문화훈장을 받는 등 싱가포르 영화 산업의 부흥을 이끌었다.
영화는 살아있음과 죽음이 분리되지 않은 세계관에서 역설적으로 삶의 원동력을 호소해 관객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은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 선정됐다. <큐어>(1997), <회로>(2001), <절규>(2006) 등 장르영화로 세계적 반열에 오른 그는 작가 고유의 뚜렷한 개성으로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다. 올해 부산영화제에서 그의 신작 <뱀의 길>(2024)과 <클라우드> 등 2편을 만날 수 있다.
특별기획 프로그램은 포르투갈 영화의 거장인 미겔 고메스가 관객과 소통한다. <그래드 투어>로 올해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미겔 고메스는 <타부>(2012)를 발표하며 21세기 젊은 거장으로 자리매김했다.
'명랑한 멜랑콜리의 시네아스트'를 주제로 그의 장편 전작 8편을 상영하고, 감독을 초청해 그의 작품세계와 영화관을 조명한다.
29번째 BIFF는 거장들의 영화, 주요 국제영화제 수상자, 세계 유수 영화제들이 주목한 영화, 화제의 영화를 초청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올해는 지난해 갑자기 세상을 떠난 故 이선균 배우의 대표작을 상영하는 특별기획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고운사람, 이선균'이라는 주제로 그의 대표작인 영화 <파주>(2009), <우리선희>(2013), <기생충>(2019), 드라마 『나의 아저씨』(2018), 유작인 <행복의 나라>를 통해 그의 깊이있는 연기 세계를 볼 수 있다.
또, '10대의 마음 10대의 영화'라는 특별기획 프로그램도 마련해 풍성함을 더한다.
칸 영화제 비평가 주간 대상<호랑이소녀>(2023), 베니스영화제 오리종티 남자배우상 <바람의 도시>(2023),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마이 선샤인>, 베니스영화제 오리종티 <해피엔드>등 국제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10대 성장 영화를 한데 묶었다.
올해는 다큐멘터리 장르의 대중적 확장을 위해 '다큐멘터리 관객상'을 신설했다. 와이드앵글 섹션의 한국과 아시아 다큐멘터리 경쟁작 10편을 대상으로 관객 투표로 선정된 1편에 상금 1천만원을 수여한다.
영화제 공간에서 토론과 담론의 장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포럼도 선보인다. CJ ENM, NETFLIX, The E&M, DMP Studio, 영화인 연대가 참여하며 아마존 스튜디오 영화 부문 총괄 최고 책임자인 글렌 S. 게이너와 루카스 필름 VFX 부사장인 TJ 폴스 등이 참여한다.
또, 영화제 기간 마이크로소프트가 아시아 최초로 부스를 개설해 콘텐츠와 기술의 융합도 살펴볼 수 있다. 영화의전당 비프힐에서는 관객들이 AI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라운지를 운영한다. 아시아콘텐츠&필름마켓(ACFM) 부스에서는 영화 전문가를 대상으로 최첨단 AI기술을 시연한다.
박광수 신임 이사장 체제가 출범하는 등 지난해 BIFF 사태 이후 정상화에 접어든 영화제인 만큼, 남다른 감회도 나왔다.
남동철 BIFF 수석프로그래머는 "지난해보다 올해는 수석프로그래머 본업에 집중해 홀가분한 마음으로 영화제를 준비할 수 있었다"며 "이번 영화제를 통해 관객, 영화 관계자들이 박광수 이사장 체제가 정비됐다고 느끼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부산국제영화제 박광수 이사장은 "국고보조금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등 전체적으로 예산 10억이 줄었지만, 기업 협찬과 기부금이 늘어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었다"며 "내년에 영화제협의체를 발족해 정부 측과 예산도 협의하고, 내부 모순점을 협력해 개선할 방안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BIFF도 세대교체가 있어야 하고, 미래 영화제에 대한 확실한 비전을 읽어야 한다"며 "영화제 준비와 함께 이같은 작업도 내부에서 논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