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배구계에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안 그래도 전국 고등학교 배구부가 자꾸 줄어들어 큰 고민인데, 또 하나의 팀이 해체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배구계에서는 '한국 배구를 망치는 일'이라며 강하게 반발한다. 비단 남고부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에 고등학교 배구부 베테랑 지도자들은 "납득 안 가는 부분이 많다"며 "유망주들이 왜 희생당해야 하냐"고 입을 모은다.
논란을 자초한 학교는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에 위치한 송산고등학교다. 송산고 배구부는 지난 2009년 창단한 이후 '배구 명문'으로 이름을 날렸다. 2013년 전국체전에서 창단 4년 만에 준우승을 차지했고, 2016년에는 우승 트로피를 따내며 최고의 위치에 올랐다.
프로배구 코트를 누비는 송산고 출신 선수들도 많다. 국가대표 세터 황택의를 비롯해 홍상혁, 홍동선(이상 국군체육부대), 박경민(현대캐피탈), 한국민(KB 손해보험) 등이 송산고를 졸업한 이후 프로 무대를 밟았다.
해체 소식이 들려온 건 지난달 초였다. 배구계에 따르면 송산고 측은 학부모들과 간담회를 가진 뒤 내년부터 배구부 신입생을 받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이어 학교 측은 배구부 선수들에게 전학을 권고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학교 측의 입장은 이렇다. 교육청 민원 감사 결과, 박희상 전임 감독과 일부 학교 관리자 불법 찬조금 모금이 적발됐다는 것. 그래서 배구부 내부 갈등이 끊이지 않았고, 학교 관리자와 교사들이 감독을 컨트롤할 수 없는 상황이라 배구부 운영을 지속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박 전 감독의 입장은 전혀 다르다. 학교 측이 배구부를 해체를 하겠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박 감독은 "나는 이미 2월 말에 자의적으로 계약 해지를 결정하고 학교를 나왔다"며 "8월에 대뜸 내 이름을 언급하며 해체 통보를했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나는 떳떳하다. 필요하다면 경기도교육청 참고 조사에도 응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소식이 들려온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제35회 CBS배 전국중고배구대회'가 강원도 삼척 일대에서 진행됐다. 물론 송산고도 대회에 출전했다. 하지만 경기력은 예전처럼 좋을 수가 없었다. 대회에 출전한 선수는 10명뿐. 대회 기간 송산고의 경기를 지켜봤던 한 지도자는 "(해체 소식을 들은) 선수들이 유독 힘이 빠져 보였다"며 안타까워했다.
현장 지도자들은 하나 같이 '송산고 배구부 해체 반대'를 외쳤다. 대회 남고부 우승을 차지한 남성고 강수영 감독은 지난달 29일 CBS노컷뉴스와 인터뷰에서 "해체에 대해 납득이 안 가는 부분이 많다"며 말을 시작했다.
근본적인 궁금증은 '왜 해체까지 해야 하냐'는 것이다. 박 전 감독과 학교 측에 갈등이 있었다면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거나 감독을 교체하면 될 일인데, 배구부 자체를 없애는 결정이 나온 것에 대한 의구심이다.
강 감독은 "(학교 측 주장에 대해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지만) 그런 일이 있었다면 학교도 관리를 잘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어렵게 창단한 배구부인데 팀이 없어지게 생겼다. 문제 해결을 해야 할 시기에 학교 측은 회피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수성고의 CBS배 준우승을 이끈 한국 남자 유스 대표팀 김장빈 감독 역시 비슷한 생각이다. 김 감독은 "수성고와 송산고는 배구로 라이벌 관계에 있는 팀이다. 그런데도 학교 측이 무책임하게 배구부를 폐지하겠다는 소식에 무척이나 황당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학교 측 주장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전국의 배구팀이 많지도 않은데, 배구부를 해체까지 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팀들은 문제가 없겠냐"고도 했다. 김 감독은 "수성고에서도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하지만 학부모, 감독, 학교 측이 대화를 하면서 풀어간다"며 "감정적으로만 해결하려 해서 팀이 어려운 상황으로 치달았다. 슬기롭게 해결하는 게 우선이다. 고집 피운다고 될 일이 아니다"라고 강한 어투로 말했다.
현장 지도자들이 이토록 송산고 배구부 해체에 반기를 드는 이유는 결국 아무 잘못 없는 선수들이 모든 피해를 오롯이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장빈 감독은 "학생들이 희생당하고 있다"며 "송산고에는 재능이 뛰어난 선수들도 있고, 기량은 떨어져도 키가 커서 다듬으면 될 선수도 있다. 그런데 해체되면 이 선수들이 어디로 가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송산고 배구부는 정말 존재해야 한다. 라이벌 팀이긴 해도 정말 존재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강수영 감독은 "학교 측이 전학을 권고했다 해도 고등학교 3학년들은 다른 학교로 움직이지도 못한다. 2학년 학생들이나 겨우 몇 명 전학을 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속초고 조길현 감독도 "어른 싸움에 어린 선수들만 피해를 보는 꼴"이라며 "냉정하게 평가해야 할 문제"라고 분석했다.
송산고 배구부 해체 문제가 단지 남고부에만 국한된 얘기는 아니다. 대회 여중부에 출전한 천안봉서중 김덕원 교장은 중학생 선수들에게도 큰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교장은 "시장의 규모 자체가 작아지는 것이다. 넓게 보면 (중학교) 선수들이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좁아지니 아무래도 영향이 있는 게 사실일 것 같다"고 걱정했다.
여고부 역시 몇 년 전 비슷한 아픔을 겪었다. 앞서 2019년 강소휘(한국도로공사), 이주아(IBK기업은행) 등을 배출한 원곡고 배구부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 탓에 여고부에서도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전주 근영여고 최우영 배구부장은 "여고부 지도자라 조심스럽다"면서도 "인구 절감으로 인해 운동을 하는 학생들도 많이 없는 추세다. 그나마 팀이 많이 있어야 선수 숫자가 유지되고, 그중에서 옥석이 가려지는데 팀이 줄어들면 당연히 선수도 줄어들 것"이라고 바라봤다.
최 부장은 이어 "그렇게 되면 국제 경쟁력도 떨어진다. 요즘 구기 종목이 국제 대회에 못 나가는 이유가 경쟁력이 없어서다. 팀이 해체되면 자연스럽게 좋은 선수가 줄고 국제 경쟁력은 지금보다 더 떨어질 것"이라고 아쉬운 목소리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