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29일 '국정브리핑 및 기자회견'을 열어 연금·의료·교육·노동 및 저출생 대응을 포함한 '4+1 개혁' 의지를 재차 강조했다. 특히 의정 갈등과 함께 당정 갈등까지 비화된 '의료개혁'에 대해선 완수를 다짐했고, 연금의 경우 세대 간 공정성 등을 원칙으로 한 구조개혁안을 제시했다.
정권 중반기에 들어서며 정부의 변함 없는 '개혁 드라이브'를 대국민 선언했지만, 현장에서의 반발과 여론 지지 확보, 당정 간 이견, 국회 협치 등까지 넘어설 과제는 여전히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당장 야당은 자화자찬으로 가득하고 현실 인식이 떨어진다며 맹비난에 나섰다.
尹 "의료개혁 완수" 강조…여론 지지, 당정 갈등, 野 비판 등 '첩첩산중'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연 '국정브리핑 및 기자회견'에서 "연금·의료·교육·노동의 4대 개혁은 대한민국의 생존과 미래가 걸린 절체절명의 과제들"이라며 "국민께 약속드린 대로 4대 개혁을 반드시 이뤄낼 것이다. 그것이 국민 여러분께서 저에게 맡겨주신 소명을 완수하는 길이라고 굳게 믿는다"라고 강조했다.이번 회견에서 주목된 주제는 '의료개혁'이었다. 의정 갈등이 6개월째 지속되는 가운데 추석을 앞두고 '응급 대란' 우려가 겹친 데다가, 최근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2026년 의대 정원 증원 유예안'을 제시하고 대통령실은 거절하면서 '당정 갈등'까지 비화됐기 때문이다.
이날 윤 대통령은 "이제 의대 증원이 마무리된 만큼, 개혁의 본질인 지역·필수 의료 살리기에 정책 역량을 집중하겠다"며 "2025학년도 의대 신입생 모집은 현재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고, 비상 진료 체제도 원활히 가동되고 있다"고 했다. 이어 "그걸 (의료개혁을) 국가가 안 하면 국가라고 할 수 있겠나"라며 "정부는 헌신하는 의료진과 함께 의료개혁을 해내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대통령실의 의료개혁 기조대로,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은 '정면 돌파'였다.
당장 야당은 비판에 나섰다.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심각해지는 민생과 의료 대란으로 인한 국민의 불안과 고통에는 한 마디 사과도 없이 일방통행식 국정브리핑과 기자회견으로 대통령의 불통과 독선, 오기만 재확인했다"며 "의료 붕괴로 온 나라가 비상이다. 대통령의 현실 인식에 참담함을 느낀다"고 지적했다.
개혁 드라이브를 못 박았지만 일각에선 넘어설 과제가 여전히 만만치 않다는 전망도 나온다. 의정 갈등 장기화로 '의료 대란' 우려와 피로도가 커진 상황에서 지속적인 여론 지지가 우선 관건으로 보인다. 내재된 당정 인식차도 마찬가지다. 한 대표는 '응급 대란'이 심각하다며 여전히 증원 유예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응급 대란' 우려와 관련 "지방 종합병원이나 공공병원을 가 보면 응급실 응급의학과 의사가 거의 없다. 의료 개혁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 원래부터 그랬다"며 "바로 우리가 의료 개혁을 해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대통령실은 모든 국민이 어느 지역에서나 안심하고 치료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선 의료 개혁이 필수적이란 입장이다.
향후 대통령실은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대국민 홍보와 당정 간 소통에 힘을 쓰겠다는 방침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의문점을 해소하기 위해 의료 개혁을 정확히 설명하는 대국민 홍보를 강화할 것"이라며 "당정 간 소통도 수시로 해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날 국민의힘 연찬회에서는 의료 개혁과 관련한 실제 수치를 제시하며 의원들과 소통했다고 한다.
'세대 간 공정성' 연금 구조개혁 구상 제시…여야 합의 '미지수'
윤 대통령은 연금에 대해선 지속 가능성, 세대 간 공정성, 노후 소득 보장을 3대 원칙으로 제시하며 구조개혁 구상도 밝혔다.
윤 대통령은 "보험료율, 소득대체율 등 모수 조정과 함께 기금 수익률을 높이고, 자동 안정장치를 도입해 연금의 장기 지속성을 확보해야 한다"며 "가장 오래, 가장 많이 보험료를 내고, 연금은 가장 늦게 받는 청년 세대가 수긍할 수 있는 연금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국민연금 지급을 보장한다는 것을 법률에 명문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출산과 군 복무로 인해 연금 가입 기간에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크레딧(연금 가입 기간을 가산해주는 제도)도 더 확대하겠다"고 덧붙였다. 노후 소득 보장에 대해서는 "기초연금·퇴직연금·개인연금을 함께 개혁하고 혁신해 서민과 중산층의 노후가 두텁게 보장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전문가들은 여야 합의가 이뤄져야 하는 연금개혁 특성상, 개혁 성사 여부가 '미지수'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최영준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난 21대 국회 당시 여야가 합의에 근접했던 모수개혁안(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43~45%) 논의가 중단된 점을 언급하며 "먼저 모수개혁을 하고, 여러 구조개혁이 타당한 건지 충분한 근거를 갖고 논의했으면 했는데 연령대별 차등, 자동 안정화 장치 등이 제시되면서 논쟁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생긴다"고 밝혔다.
이어 "나이가 들수록 경제적으로 안정되는 시대가 지나고 있는데, 50대에게 가장 높은 요율 부담을 주는 건 오히려 국민연금의 사각지대를 만들 수 있다"며 "자동 안정장치는 좀 더 충분한 증거가 필요하고 다른 제도와 관계도 우려된다. 연금에 대한 불신이 커질까 걱정스럽다"고 덧붙였다.
공적연금강화 국민행동 오종헌 사무국장 역시 "자동 안정장치는 연금 역사가 오래 숙성돼 적정 부담과 적정 급여가 달성된 해외에서 도입한다. 우리는 아직 이를 수 있다"며 "게다가 우리나라는 노인 빈곤율도 굉장히 높은 상태"라고 지적했다.
대통령실 성태윤 정책실장은 이날 연합뉴스TV에 출연해 "현행 연금 제도는 청년 세대에게 불리하게 설계돼 있다. 세대 간 공정성을 확보하는 작업은 필요하다"며 "중장년층도 수용 가능한 범위 내에서 차등 방안을 최대한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경제 성과, 현실과 '온도차'…84분 간 현안 답변도
이 밖에 경제 성과 제시 역시 현실과 온도차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윤 대통령은 국정 브리핑에서 "지난 7월 IMF(국제통화기금)는 올해 우리의 성장률을 2.5%로 전망했는데, 이는 미국의 2.6%에 이어 주요 선진국 중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이라고 밝혔다. 이어 "지난 5월 경제전문매체 블룸버그는 우리 수출 증가를 '블록버스터급'이라며 한국 경제 붐이 알려지지 않은 것이 오히려 놀라운 일이라고 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제성장률에는 수출 등이 반영되는데, 수출은 반도체와 자동차 등이 견인하고 있다"며 "단순히 수치상에서는 체감 경제의 디테일한 어려움이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이날 국정브리핑 및 기자회견은 약 40분간, 기자회견은 약 84분간 진행됐다. 회견에서는 최근 화두에 올랐던 여야‧당정관계, '뉴라이트' 논란 등에 관한 질문과 답변이 오고갔다. 윤 대통령은 배우자 김건희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 의혹 수사와 관련해선 언급을 자제하면서도, 자신이 검사 시절 전 영부인 조사를 위해 자택을 방문했던 점을 들면서 검찰 수사 과정상 '특혜' 논란에 에둘러 선을 그었다. 영수회담에 대해선 여야 간 소통과 국회 정상화가 우선이라는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