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광산 '조선인 전시'…소극적 이행으로 韓 기망한 日[기자수첩]

일본 니가타현 사도섬 아이카와에 위치한 사도광산 입구. 최원철 기자

"이게 뭐예요. 강제동원 조선인 전시를 왜 사도광산이 아닌 멀리 떨어진 곳에서 하나요? 이건 유적지에서 유적설명을 전시실에 둔 것이 아니라 외딴 오두막에 둔 격이잖아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일본 사도광산을 이달 초 취재하던 도중 현장에서 마주친 한국인 부부가 했던 말이다. 일본의 포괄적 전시 약속에 우리 정부가 동의로 화답해 사도광산은 결국 지난달 말 세계유산에 극적으로 등재됐다. 하지만 사도광산 현장에서 '조선(朝鮮)'이라는 단어는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도유 갱도와 사도유 갱도 2코스만 일반인에게 공개하는 사도광산. 조선이 언급된 건 도유 갱도의 거의 끝부분 사도광산 전시실 내부 연대 표기에서 '조선인을 모집'하고 이후 '조선으로 돌아갔다'는 내용, 단 2줄 뿐이다.

[쇼와 14년(1939년) 노동동원계획으로 조선인 노동자의 일본 동원을 시작]
[쇼와 20년(1945년) 9월 패전에 따라 조선인 노동자가 조선으로 돌아갔다]


일본 니가타현 사도섬 아이카와에 위치한 사도광산 내 강제동원된 조선인들에 대한 설명. 단 2줄 뿐이다. 최원철 기자

분명히 조선인에 대한 설명이 있다고 호언장담하던 사도광산 관광안내원은 단 2줄 뿐이던 실상에 충격을 받은 기자와 관광객들에게 다른 자료는 사도광산이 아닌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에 전시돼 있다고 부연했다.

박물관은 사도광산에서 약 2km 거리에 떨어져 있었다. 눈으로 확인하려면 직접 걸어가거나 하루 8대만 운영하는 버스, 또는 렌트카를 타고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전용 셔틀버스를 운행해도 시원치 않은데 초행길인 관광객에게 인도조차 없는 언덕길 도로를 수십분 걸어가라고 안내한다는 건, '조선인 전시'를 만들긴 했지만 쉽게 보여주지는 않겠다는 '검은 속내'를 드러낸 것과 다름이 없었다.


일본 니가타현 사도섬에 위치한 아이카와 향토박물관.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를 위한 조선인 노동자들에 대한 자료가 전시돼 있다. 최원철 기자

국가간의 약속으로 진행된 세계유산 등재이자, 수년간의 시도 끝에 달성된 성과인 만큼 앞으로 사도광산을 방문하는 관광객이 늘어날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일본인은 물론 한국인과 제3국 관광객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도광산을 찾게 될 이들 모두가 조선인 전시를 보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희망사항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대부분 광산을 둘러보고 발걸음을 돌릴 공산이 높아 보였다.

실제로 기자와 같이 있던 한국인 부부는 아이카와 향토박물관 관람을 포기하고 돌아갔다.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 혹은 제3국가의 외국인이 불편을 감수하고 아이카와 향토박물관까지 방문해 관람하기를 바란다는 건 더 어려워 보인다.

일본 니가타현 사도섬 아이카와 시내 중심에 있는 아이카와 관광안내소. 최원철 기자

설상가상으로 박물관에서 사도섬의 역사와 유물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가 진행되고 있지만 사도광산이라는 주제에 한정한다면 비슷한 전시는 이미 시내에 위치한 아이카와 관광안내소에도 있다. 전시의 성격이 각각 역사와 관광안내로 다소 거리가 있지만 안내소에서는 사도섬의 전체 금·은광 3곳의 역사와 지리정보는 물론, 실물 광석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아이카와 지역은 사도광산을 중심으로 조성된 마을이다. 관광객의 입장에서 시내에 비슷한 전시가 있다고 한다면 교통의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일부러 박물관을 찾게 될까? 짧은 관광 일정을 고려한다면 대부분 안내소를 이용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할 것이다.

일본 니가타현 사도섬에 위치한 아이카와 향토박물관.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를 위한 조선인 노동자들에 대한 자료가 전시돼 있다. 사진은 '조선반도 출신자를 포함한 광산노동자들의 생활' 전시 전경. 최원철 기자

섭씨 35도의 찌는 듯한 더위를 견디며 언덕길을 걸어가기를 40여분, 십수대의 차량을 보내며 어렵사리 다다른 아이카와 향토박물관.

시골 분교를 연상케하는 작은 규모의 건물 2채가 연결된 형태로 '조선인에 대한 전시'는 삐걱이는 계단 2개를 올라가서야 볼 수 있었다. 작은 방 하나로 꾸며진 전시 공간에는 유물 1점, 문건과 지도 등이 첨부된 여러 개의 안내판이 있었다.

전시실 입구에는 전시명만 덩그라니 놓여 있었다. 조선인 관련 설명이 일본어와 영어로만 표기된 점은 차치하더라도 굳이 왜 이곳에 이런 전시 공간을 차렸는지 등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었다. 전시실을 들여다 볼수록 급조된 공간이라는 생각이 차츰 굳어졌다. 이곳이 전시실인지, 자료 보관실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고양이에게 물고기를 맡긴 격'

전시실을 나오면서 떠오른 건  이 생각 뿐이었다.

지난 2019년 10월 일본 나고야 아이치 문화센터 10층에서 열린 아이치 트리엔날레 '표현의 부자유전·그 후' 전시의 관람 당첨자가 발표되자 관람 희망자들이 당첨 여부를 확인하는 모습. 최원철 기자

사실 일본의 이런 행태는 드물지 않다. 지난 2019년 10월 나고야에서 열린 아이치 트리엔날레 '표현의 부자유전'. 일본에서 열린 '평화의 소녀상'과 위안부 관련 전시라는 점에서 큰 화제가 됐고, 수천명의 일본인과 재일동포가 전시장을 찾았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공개하고 싶지 않은 주제를 다뤘다는 이유로 주최 측은 보조금 삭감 등 압력을 받았다. 심지어 전시는 공개 관람이 아닌 추첨제로 운영돼 하루 200명대 인원만 관람이 허용됐다.

이런 사정 탓에 현장취재에 나선 국내외 취재기자들을 포함해 관람객 대다수는 입구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하루에 6차례 걸쳐 추첨했지만 5번째 도전했다가 모두 낙첨된 고령의 한 노인은 눈물을 훔치며 돌아섰다.

지난 2019년 10월 일본 나고야 아이치 문화센터 10층에서 열린 아이치 트리엔날레 '표현의 부자유전·그 후' 전시 관람 당첨자들이 들어가는 입구. 대다수의 전시 관람객들은 작품 대신 이 입구만 바라봐야 했다. 최원철 기자

당시 추첨제에 대해 예술인과 일부 시민들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주장하며 항의 시위를 벌였다. 분위기를 의식한 듯, 주최 측은 돌연 언론에 취재를 깜짝 허용하면서 여론 잠재우기를 시도했지만 시민단체의 항의 성명 발표로 비판의 목소리가 전시기간 내내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일반 시민들을 상대로 한 공개전시는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어느 집단이든 자신들의 부끄러운 역사는 꽁꽁 감추고 싶을 게다. 일본 정부를 보면 알 수 있다. 물론 80년이 되도록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반성하고 또 사죄하는 같은 '전범국' 독일 같은 사례도 있다.

우리 정부는 대외적으로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갖은 비판을 감수하고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에 동의했다. 이에 합당한 대가로 '포괄적인 전시'를 약속한 일본은 과연 자신들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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