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광복절 기미가요 방송, 이승만 전 대통령 다큐멘터리 방영 등으로 거듭 논란을 빚은 가운데 MBC '스트레이트'가 보도했던 'KBS 장악 대외비 문건'(이하 대외비 문건) 전체가 공개됐다. 이에 따라 박민 사장 체제에서 문건 내용이 얼마나 이행됐는지 파악도 함께 이뤄졌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이하 KBS본부)는 28일 실제 KBS 경영에 있어 대외비 문건이 어떻게 적용됐는지 짚었다. 이에 따르면 해당 문건은 △ 인력감축 및 임금삭감·인건비 비중 하향 선언, △ 임명동의제 파기 및 단체협약 체결 거부, △ 조직개편 및 외주 제작 활성화, △ 승진 및 직급체계 개편, △ 'KBS 정상화' 및 우파 등용, △ 대국민 사과 등으로 현실화됐다.
인력감축 및 임금삭감과 관련해서는 문건대로 현재 구조조정 절차에 돌입했단 설명이다.
KBS본부는 "문건은 인력감축과 임금구조 개선, 임금삭감 가운데 우선순위를 인력감축에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면서 "사측은 이대로 두 차례에 걸친 특별명예퇴직 및 희망퇴직을 실시해 110여 명이 회사를 떠나고, 하반기에는 희망자에 한해 무급휴직을 시행할 계획이다. 그리고 이런 조치가 '해고회피 노력'의 일환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며 구조조정을 위한 단계를 밟아가고 있다"라고 밝혔다.
사측이 임명동의제를 파기하고, 단체협약 체결을 거부해 노조가 무력화되기도 했다.
KBS본부는 "문건은 KBS 공정방송 장치인 '임명동의제' 폐지를 종용한다. 임명동의제를 '독소조항'이라고 지적하며 '단체협약 무협약 상태까지 가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갖고' 임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또 '채무적 효력(조합비 공제 협조)을 지렛대(볼모) 삼아 단체교섭의 주도권을 행사할 필요'가 있다며 노골적으로 노동조합 탄압방안을 제시한다"라고 문건 내용을 짚었다.
그러면서 "현재 사측은 임명동의제와 공정방송위원회 등이 규정한 공정방송 제도들을 제거하거나 무력화해야 한다면서 끝내 단체협약 체결을 거부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가장 큰 논란을 불렀던 'KBS 정상화' 및 '우파 등용' 부분과 관련해서 문건은 '민주노총 언론노조 KBS본부 중심의 노영방송 체제 단절'을 'KBS 정상화'라고 규정하면서 국장급 이상 직위자는 '우파 중심'으로 등용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KBS본부는 "실제로 박민 사장 체제 이후 단행된 보직자 인사를 보면, KBS본부 조합원이 전체 직원의 절반 가까이 차지하고 있음에도 보직자 가운데 KBS본부 조합원 출신은 12%에 불과했다. 또한 본부장 및 자회사 임원 대부분이 특정 노조의 집행부 출신임을 고려하면 박민 체제에서 KBS본부 조합원 출신들은 의도적으로 배제됐다는 결론에 충분히 이를 수 있다"라고 꼬집었다.
더불어 "내부 인사 뿐 아니라, 프로그램 출연자에도 우파 등용이라는 방향이 적용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아침 시사 라디오 프로그램을 맡고 있는 고성국"이라며 "그의 KBS 라디오 진행자 발탁 소식이 전해지자 유튜브에 출연하는 출연자는 '또 하나의 진지를 탈환했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라고 부연했다. 언론인 겸 정치평론가인 고성국은 보수 성향 유튜버로, 자신을 '자유우파 정론방송을 지향한다'고 소개하고 있다. 때문에 그가 시사 라디오 프로그램을 맡았을 때, 공영방송 KBS와 어울리지 않는 진행자란 비판이 나왔다.
인건비 비중 감소와 직결된 '조직개편 및 외주 제작 활성화' 역시 사측이 추진한 조직개편에서 확인되며 정치적 중립이 중요한 공영방송 KBS 정체성에 심대한 악영향을 끼칠 것이란 전망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 미화 논란을 부른 다큐멘터리 영화 '기적의 시작'을 광복절에 편성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KBS본부는 "기술본부 동료들이 오랜 기간 공들여 발전시킨 후반 제작 역량이 깡그리 무시된다든지, PD의 프로그램 제작 역량을 훼손을 불러올 PD 시사부문의 보도본부 이관이 단적인 사례"라며 "광복절 방송 참사의 하나였던 '기적의 시작'이 어떻게 구매되고, 방영했는지를 살펴보면 외주제작 활성화의 위험이 드러난다. 우파 인사를 기용했듯이 우익 성향의 프로그램을 구매해 방영하는 형식으로 KBS 정체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우려가 크다"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KBS본부는 "문건이 분명히 KBS 내부에서 유통된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사측은 문건을 괴문서로 치부하면서 형사 고소에 이르렀다"라며 "이처럼 문건은 실제 박민 사장이 취임한 이후 행적을 보면 단순히 '괴문서'로 치부하기 힘들다. 형식이나 내용도 상당히 구체적이며 문건이 제안한 많은 부분이 실행됐고 추진되고 있다. 약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문건이 제시한 계획의 취지는 그대로 실현되고 있는 셈"이라고 강조했다.
'스트레이트'는 지난 3월 방송에서 '독재화하는 한국–공영방송과 신보도지침' 편을 통해 KBS 박민 사장에게 우파 중심 인사로 조직 장악 등을 요구한 KBS 대외비 문건을 보도했다.
KBS는 이 문건을 '괴문서'로 규정하고 해당 방송으로 KBS 공공성·신뢰성에 심각한 침해가 발생했다며 MBC와 '스트레이트' 제작진 상대로 법원에 정정보도와 1억 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