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인건비 때문에 제가 데리고 있는 연구실 대학원생한테도 월급을 줄일 수밖에 없어요… 이 친구 남편도 연구원인데 올해 연구개발(R&D) 삭감으로 일을 그만두게 됐다고 하더라고요. 저희 연구실 대학원생이 갑자기 가장이 된건데 월급은 줄어드니까 오전에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오후에 연구실 나오는 식으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올해 연구비가 22% 삭감된 한 교수의 말이다. 당장 인건비가 없어 연구실 학생들에게 월급을 깎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석사 과정으로 입학하려던 학생에게는 취직을 하거나 해외로 가라고 했다고 한다. 정부가 내년 R&D 예산안을 역대급으로 편성했다고 했지만, 연구현장에 여전히 와닿지 않는 이유다.
내년 국가 R&D 예산안이 지난해 'R&D 예산 삭감 사태'가 벌어지기 전 수준으로 돌아간 점에 대해선 과학기술계도 안도한다. 총금액 뿐 아니라 기초연구 분야에서 계속 과제 예산 삭감이 어느 정도 회복됐고 개인 소액 과제도 점차적으로 늘린다고 했기 때문이다. 사라진 소액 과제 갯수가 1800개 정도 되는데 정부가 일단 창의 연구를 800개로 늘리기로 했다. 우수 신진연구 중에서도 신진 연구자들이 적극 참여 가능한 씨앗연구도 400개 정도로 신규 과제로 뽑을 수 있게 했다.
문제는 '믿음'이다. 연구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당장이 위태롭다. 아직도 내년을 설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정부가 연구 과제를 늘린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절대 연구수가 줄어든 것도 사실이다. 기초연구연합 총무이사 오경수 중앙대 교수는 "정부가 저희와 소통한대로 노력을 한 것 같아 다행"이라면서도 "내년부터 3년간 R&D를 1%도 안 되게 증액하겠다는 계획을 봤을 때는 올해가 '최대치'구나, 과제 갯수가 늘진 않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되고 여전히 미래에 대한 불안이 만연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믿음이 회복되지 않은 이유는 'R&D 예산 삭감'이라는 칼로 베인 연구자들의 상처가 아직도 깊어서다. 한 연구자는 "이때 과학자로서의 자긍심이 땅에 떨어졌다"라고 했고, 또 다른 연구자는 "국가 정책에 대한 불신이 시작됐다"고도 했다. 그도 그럴게 예산 삭감 원인으로 지목된 '카르텔 문제'는 해결된 건지, 그때는 왜 연구비를 깎았고 지금은 또 증액했는지 제대로 된 설명도 유감 표명도 누구하나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직도 최상목 경제부총리는 저성과, 나눠먹기식 R&D를 철저히 혁파해 선도형 R&D로 대전환을 이루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누가 나눠먹기를 했고 이에 대한 조사는 어떻게 한 건지 명확한 설명은 여전히 없다.
다시 연구비가 22% 삭감된 교수의 말이다.
"저도 내년에 연구비를 신청해봐야 알겠지만, 그래도 예산이 조금이나마 늘었다고 하니 회복의 조짐은 보입니다. 그러나 저보다 훨씬 심하게 삭감을 당해서 연구 개발을 접은 분들, 아예 나라를 떠난 분들의 경우는 돈이 복구된다고 해도 돌아갈 수는 없잖아요. 이미 처분한 재료, 장비들도 다시 돌아오지 않고요. 그런 면에서 보면 어느 정도 단순 액수를 복구했다고 해서 제자리로 다시 돌아오는 건 아닌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