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겨우 버티고 있죠"…응급의료 붕괴 조짐에 너도나도 '한숨'

응급실 참아 삼매경…상급병원에 환자 집중
응급의료 의사 이탈에 의료진 피로도 늘어
아주대, 응급 전문의 절반 사직에 '중증환자' 우선
추석에 환자 급증…위기상황 더 심각 전망
간호사, 처우개선 요구…29일 총파업 돌입 예고
정부, 비상진료체계 유지 등 대책 마련
한덕수 총리 "환자와 가족 마음 헤아려 파업 철회해야"

순천향대 부천병원 응급실로 구급차가 들어가고 있다. 박창주 기자

"의료진이 너무 지쳐 보이는데…"

27일 오전 12시 반쯤 부천시 도심에 있는 상급 종합병원인 순천향대 부천병원 응급실(권역응급의료센터)에 119 구급차량이 빠져나가자 곧바로 사설 구급차들이 잇따라 진입했다. '제한구역' 표시가 된 응급실 입구 너머로 응급구조사들이 병원 의료진에게 환자를 넘기는 등 분주한 모습이었다.

환자 인계 작업을 마친 한 구조사는 "예전에는 2차 병원에서도 받아주던 상황인데, (전원 신청을) 받아주는 병원이 없어서 응급실 찾기가 힘들어졌다"며 "우선 큰 병원부터 찾아다니고 있다"고 토로했다.

응급 상황으로 판단하고 환자를 직접 데리고 온 보호자들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 응급실 맞은편에 있는 대기실에 길게 놓인 의자에는 사람들이 군데군데 앉아 있었고, 굳은 표정으로 접수·진료 진행 현황판을 바라보거나 누군가와 통화를 하며 안절부절하는 보호자도 눈에 띄었다.

다친 손녀를 안고 달려왔다는 한 60대 남성은 응급실에 접수하고 한참이 지나서야 치료실로 들어갔다며, 대기실과 응급실을 계속 오가며 발을 구르고 있었다. 그는 "여기 도착한 게 11시였는데 방금 전에 들어갔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또 다른 50대 남성은 호흡곤란 증상을 호소하는 가족을 직접 차에 태워 응급실에 접수하고도 연신 불안해 하는 눈치였다. 이 남성은 "숙모님이 숨을 제대로 못 쉬니까 일단 응급실로 모셔왔다"며 "그런데 응급실 간호사나 의사들이 너무 바쁘게 움직이고 표정들도 지쳐 있는 것 같아 보여 제대로 치료가 되고 있는 건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3시쯤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 응급실에서도 보호자들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80세 노모를 모시고 응급실을 찾은 40대 여성은 "어머니가 몸이 아파 여주의 병원에 입원했는데, 갑자기 구토를 하는 등 상태가 안 좋아 큰 병원 응급실로 왔다"며 "응급실에 도착한지 3시간 만에 의사 얼굴을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 상급종합병원 응급실 전문의는 "응급실 상주 의사 인력은 절반 이상 줄었는데 환자 수는 그대로 유지되면서 응급실에 도착한 환자들이 1시간 이상 대기하는 게 기본이 됐다"며 "응급 의료 인력들의 체력적, 정신적 피로도가 한계에 이르고 있다"고 토로했다.

응급실 '절반 사직' 아주대병원…'중증환자' 우선

중증 환자 위주로 진료를 하고 있는 경기 수원 아주대병원 응급실. 정성욱 기자

응급실 전문의 절반이 사직한 수원 아주대병원 응급실은 중증 환자 위주로 진료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 아주대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응급의학과 전문의 14명 중 3명은 사직한 상태다. 여기에 4명이 추가로 사직서를 제출하면서 가용 인력이 절반으로 줄었다.

병원 측은 이들 4명의 사직서는 아직 수리하지 않은 채, 근무를 계속해 달라고 설득하고 있다. 아주대병원 관계자는 "사직서를 제출한 것은 맞으나 수리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라며 "우선 상황을 계속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응급실 전문의가 줄어들자 병원 측은 중증 환자를 우선으로 응급실을 운영하고 있다.

이날 오전 한 중년 환자는 "어젯밤에 생선을 먹다가 목에 가시가 걸렸다"며 응급실을 찾았다. 이 환자는 "병원 이비인후과에 올라갔다 왔는데 응급실로 가라길래 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응급실 관계자는 "현재 증상만으론 응급실에서 진료가 가능할지 모르겠다"며 "주변의 다른 병원이나 이비인후과를 방문해 보는 것은 어떠냐"며 다른 곳으로 안내했다. 환자는 "그럼 여기로 한번 가보겠다"고 말한 뒤 응급실을 빠져나갔다.

또 다른 중년 환자는 "감기 기운과 함께 열이 난다"며 응급실을 찾았고, 병원 측은 "응급실 진료 대상은 아닌 것 같다"며 원무과로 진료를 안내했다.

반면 응급환자는 곧장 응급실에서 진료를 받기도 했다. 오후 1시쯤 구급차에 실려온 한 장년 환자는 "갑자기 몸에 힘이 빠지면서 쓰러졌다"고 했다. 병원 측은 환자의 상태를 간단히 확인한 뒤 응급실로 들여보냈다.

이날 응급실을 찾은 환자 중 경증 환자들이 일시적으로 대기하긴 했으나, 의료대란 형태의 진료공백은 없었다. 아주대병원 관계자는 "응급실 특성상 잠시 기다려야 하는 상황은 생길 수밖에 없다"면서도 "중증 위주로 진료를 하는 매뉴얼대로 진행하고 있으며, 차질은 없다"고 설명했다.

의료대란 추석이 분기점…내년은 더 암울

의정갈등 장기화와 코로나19 재확산 여파로 인한 응급실 과부하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 응급의료센터에 진료 지연 안내문이 놓여 있다. 류영주 기자

각 종합병원의 전공의 공백으로 반년 넘게 이어진 응급실 위기상황이 이번 추석을 기점으로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2년 추석 연휴(9월 9~12일) 권역·지역응급의료센터 166곳의 환자 내원 건수는 약 9만건으로, 하루 평균 약 2만3천건으로 평소의 1.9배가량이었다. 추석 연휴 사고의 경우 화상이 3배, 관통상이 2.4배, 교통사고가 1.5배까지 증가했다.

이미 응급실 상주 의사가 절반 이상 줄어든 상황에서 추석 연휴 응급환자가 몰리면 각 병원들이 체감하는 응급환자는 기존의 4배 이상이 된다는 것이다.

추석을 무사히 넘겨도 현재 의료계 상황에 비춰 내년은 더 비관적인 전망이 나온다. 전공의뿐만 아니라 '번아웃'된 의료진들의 사직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건국대 충주병원에선 응급실에 근무하는 응급의학과 전문의 7명 전원이 극심한 심적 부담과 피로를 호소하며 최근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 상급종합병원인 동아대병원은 응급실 39병상 중 11병상만 운영하고 있다.

한 상급종합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전공의는 빠져나가는 데 내년에는 졸업생도 나오지 않는다"며 "게다가 응급실 상황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응급의학과 지원 인력을 더 줄어들 것으로 보여 현 상황을 정부가 해결하지 않는다면 우리 의료체계가 과거 30년 전으로 역행하는 사태가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공의 공백에 간호사도 파업…의료공백 심화 위기

간호사·간호조무사 등이 포함된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오는 29일 총파업을 예고한 가운데 26일 오전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본관에 보건의료노조의 투쟁 현수막이 걸려있다. 황진환 기자

전공의 이탈에 이어 간호사, 의료기사 등으로 구성된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까지 오는 29일 총파업을 예고하고 있어 의료공백이 심화될 전망이다.

이날 의료계에 따르면 보건의료노조는 지난 19~23일 61개 병원 사업장을 대상으로 쟁의행위 찬반 투표를 한 결과 찬성률 91%로 총파업을 가결했다.

이들의 요구사항은 △조속한 진료 정상화 △불법의료 근절과 업무 범위 명확화 △주4일제 시범사업 실시 △간접고용 문제 해결 △총액 대비 6.4%의 임금 인상 등이다.

보건의료노조는 중앙노동위원회와 지방노동위원회에 노동쟁의조정신청서를 제출해 현재 조정절차를 진행 중이다. 조정에 실패하면 투표 결과에 따라 오는 29일 오전 7시부터 동시 파업에 돌입한다.

이번 쟁의행위 투표에 참여해 파업을 예고한 61개 병원은 국립중앙의료원, 한국원자력의학원, 경기도의료원 등 공공병원 31곳과 강동경희대병원, 고려대의료원, 한양대의료원 등 민간병원 30곳이다. 다만 '빅5' 병원으로 불리는 주요 대형병원 노조는 이번 파업에 참여하지 않는다.

특히 청주의료원과 충주의료원은 노조원 90% 이상이 파업에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 김경희 청주의료원 지부장은 "코로나19 전 청주의료원의 병상 가동률은 90%에 달했지만, 지금은 50% 수준에 그치고 있다"며 "코로나19 대응에 따른 열악해진 상황을 방치한 탓에 지역 공공의료기관으로서의 기능이 떨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보건의료노조가 파업 시에도 응급실, 중환자실, 분만실, 신생아실 등에는 인력을 투입하겠다고 밝혔지만, 현장의 우려는 적지 않다. 지난 2월 전공의들의 집단이탈 이후 의료 현장은 이미 인력 부족 등으로 곳곳에서 과부하를 호소하기 있기 때문이다.

고양시의 한 종합병원의 권역응급의료센터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A씨는 "우리는 전공의 파업 사태 이후 6개월간 응급실에서 묵묵히 일했다"며 "간호사들을 위해서는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정부, 대책 마련과 함께 간호사 달래기 나서

한덕수 국무총리가 27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출입기자단 오찬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는 노조 파업 시 응급환자의 차질 없는 진료를 위해 응급센터 등의 24시간 비상진료체계를 유지하고, 파업 미참여 공공의료기관을 중심으로 비상진료를 실시할 예정이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보건의료노조 파업 관련 관계장관회의를 소집하고 "부디 전공의 이탈로 오랜 시간 불안감에 힘들어하고 있는 환자와 그 가족 분들의 마음을 헤아려 이번 파업 결정을 철회해달라"고 호소했다.

이어 "지난해 4월 간호인력지원 종합대책을 발표하여 간호사 근무여건 개선에 착수한 데 이어 의료개혁의 일환으로 진료지원(PA)간호사 시범사업을 진행 중이고, 금년 10월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이를 통해 처우개선을 위한 구체적 대책도 마련할 계획"이라며 보건의료인 처우 개선을 약속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도 "노조의 고민과 어려움이 있겠지만 전공의 이탈 상황에서 파업하게 될 경우 환자와 국민의 불안과 고통을 생각해, 파업과 같은 집단행동보다는 사용자와의 적극적인 대화와 협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주시기를 간곡히 요청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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