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권 대학 진학률이 부모의 경제력과 거주지역에 따라 좌우되는 '불평등' 문제가 심각한 만큼 신입생을 지역별 학생 수와 비례해 선발해야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국은행이 입시경쟁 과열에 따른 사교육과 저출산,수도권 인구 집중,집값 상승 등의 해법으로 상위권 대학 '지역별 비례 선발제'를 제안해 수용 여부가 주목된다.
한은은 27일 발표한 '입시경쟁 과열로 인한 사회문제와 대응 방안' 보고서에서 입시경쟁이 사교육비 증가를 초래하고, 결국 소득 계층과 거주 지역에 따른 진학률 격차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교육종단연구 원시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2010년 고교 3학년생 가운데 소득 최상위층(5분위)의 상위권대(상위 8개 대학·의학·치의대·한의대·수의대) 진학률은 최하위층(1분위)의 5.4배에 달했다.
2018년 서울대 진학생 가운데 서울 출신과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 출신은 각 32%, 12%를 차지했다. 이 두 집단의 전체 일반고 졸업생 내 비중(16%·4%)을 크게 웃도는 성적이다.
한은은 자녀 잠재력 외에 경제력이나 지역 등이 진학률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실증 분석도 진행했다.
앞서 언급된 2010년 고교 3학년생의 실제 상위권대 진학률은 소득 상위 20% 집단에서 5.9%, 나머지 집단(소득 하위 80%)에서 2.2%로 확인됐다.3.7%포인트(p)의 격차는 학생의 잠재력(같은 학생의 중학교 1학년 당시 수학 성취도 기준)과 부모 경제력 요소가 뒤섞인 결과로, 잠재력만 볼때 상위 20%에서 최상위 잠재력 집단의 비중(22.3%)이 하위 80%(14.6%)보다 컸다.
그러나 한은이 상위 20% 집단의 잠재력 분포를 그대로 하위 80%에도 적용해 잠재력 변수를 통제해도, 진학률 격차는 3.7%p에서 2.8%p(상위 20% 5.9%-하위 80% 3.1%)로 약 25% 줄어드는 데 그쳤다.
나머지 75%의 격차는 부모 경제력의 효과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고 한은은 결론지었다.
또 한은은 전국 시군구를 서울과 비(非)서울로 나누고 학생의 잠재력 순위를 기준으로 2018년도 서울대 진학률을 다시 산출한 결과, 서울의 잠재력 기준 가상 진학률은 비서울 지역(0.40%)보다 겨우 0.04%p 높았다.
실제 2018년 서울대 진학률에서 서울(0.85%)과 비서울(0.33%) 간 격차(0.52%p)의 8% 수준이었으며, 이에 따라 격차 중 나머지 92%가 거주지역 효과로 해석됐다.
⧍ "입시 불평등이 수도권 인구 집중·서울 집값·저출산 등 근본 원인"
한은은 입시와 관련한 소득·지역 쏠림 또는 불평등 문제를 한국 사회 내 고질적 문제들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했다.
상위권대를 향한 경쟁이 수도권 인구 집중과 서울 주택가격 상승을 유발한다고 진단했다. 또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양육비와 주거비 부담이 커져 출산 시기를 늦추거나 자녀 수를 줄이는 경향이 심해진다고 한은은 지적했다.
⧍ "지역별비례선발로 사회문제 해결해야"…이창용 "SKY가 결단해 달라"
한은은 문제 해결책으로 '지역별 비례 선발제'를 제안했다.
대학이 자발적으로 입학 정원의 대부분을 지역별 학령인구 비율을 반영해 선발하되, 선발 기준과 전형 방법 등은 자유롭게 선택하자는 것이다.
한은이 2018년도 서울대 입시 결과를 바탕으로 특정 지역 합격자 비율을 해당 지역 고등학교 3학년생 비율의 '0.7배 이상 1.3배 이하'가 되도록 조정한 결과, 각 지역의 실제 서울대 진학률과 잠재력 기준 진학률 간 격차는 평균 0.14%p에서 0.05%p로 64%나 줄었다.
하향 평준화 가능성 등에 대해서는 서울대 19학번 지역·기회균형 전형 입학생들의 학기별 성적이 다른 전형 입학생들과 거의 차이가 없다는 조사 결과 등이 반박 근거로 제시됐다.
한은이 내놓은 지역별 비례 선발 제도는 지난 2002년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제안한 '지역 할당제'와 큰 틀에서 같은 내용이다.
한은은 이에 대해 "지역별 비례 선발제는 입학 정원 대부분에 적용돼 낙인 효과가 적고, 대학이 신입생 선발 기준 등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이날 서울대에서 열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한은 공동 심포지엄' 폐회사에서 "다소 파격적일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시도해 볼 만한 방안"이라며 상위권 대학의 지역별 비례선발제에 힘을 실었다.
이 총재는 "정부 정책이나 법 제도를 손대지 않더라도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SKY) 교수님들이 결단만 해주시면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