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얼굴로 음란물 제작'…청소년 파고드는 '딥페이크 성범죄'

SNS서 지인 여성 사진 무단 공유·합성·유포
여대생 이어 10대 학생까지 피해 광범위 확산
"'유포 목적' 입증 어려워"…처벌 어려운 딥페이크

연합뉴스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이미지 합성으로 손쉽게 음란물을 만드는 '딥페이크' 성범죄가 성인들을 넘어 10대들 사이에서도 확산하고 있다.

올해 들어 7월까지 해당 범죄로 경찰에 붙잡힌 10대 청소년이 서울에서만 10명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이 같은 딥페이크 음란물 다수가 주변인의 이미지를 토대로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지인 능욕물'이라고 불리며 텔레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은밀하게 유포되고 있는데,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어 범죄의 불안이 일상 속으로 스며드는 모양새다.

학교서 확산하는 '딥페이크 성범죄'…SNS로 손쉽게 접근


최근 인하대의 한 동아리 여학생들을 집중적으로 노린 불법 합성물 제작·유포 대화방의 운영자 등이 검거되면서 딥페이크 성범죄의 심각성이 재부각된 가운데, SNS에선 실제 피해 여부가 확인되진 않았지만 전국 중·고교, 대학교 이름이 언급된 '딥페이크 피해자 명단'이라는 글까지 나돌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실제로 CBS노컷뉴스가 27일 텔레그램의 채팅방 검색을 지원하는 '텔레메트리오'에서 '겹지인', '지역명' 등 키워드를 활용해 검색한 결과, 7천여 명이 구독 중인 '전국 지역별 겹지인' 텔레그램 대화방에는 피해자의 소속 학교, 출생 연도, 이름 등 개인 정보가 적힌 게시글들이 다수 발견됐다. 해당 방에 들어가면 다시 전국 중·고교, 대학교 이름 등이 달린 딥페이크 불법합성물 공유방으로 연결되는 식이다. 한 대화방당 많게는 수천 명이 참여 중인 곳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겹지인'이란 겹치는 지인의 줄임말이다. 가해자들은 이른바 '겹지인방'이라는 이름으로 텔레그램 대화방을 만들어 인스타그램, 카카오톡, 페이스북 등 SNS에 있는 여성 지인의 얼굴 사진을 나체에 합성해 딥페이크물을 제작, 공유하거나 제작을 요청받아 만들어주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각종 SNS에서는 미성년자들의 딥페이크 성범죄 관련 글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었다. 엑스(X, 옛 트위터)에는 지역의 한 고등학교에서 남학생이 여자 동급생을 상대로 딥페이크 범죄를 저질러 학교가 입 단속에 나섰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또 다른 지역 고등학교 재학생이라고 밝힌 엑스 이용자 B씨는 "우리 학교에서도 (딥페이크) 터져서 지금 난리 났다"며 "4~5월부터 경찰 조사 진행하고 있었고 강력히 처벌하라는 이사장 말씀대로 하나하나 퇴학 처리 중"이라는 게시글을 올리기도 했다.

실제 피해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지만 SNS에서 공유되고 있는 전국 중·고교, 대학교 이름이 언급된 '딥페이크 피해자 명단'. 온라인 캡처

경찰, 서울서만 10대 가해자 10명 검거…아는 학생 노렸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도 전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올해 1~7월 서울에서만 14세 이상 청소년 10명이 딥페이크 범죄로 검거됐다"고 밝혔다. 이 학생들은 같은 학교 여학생 또는 다른 학교에 재학 중인 같은 학원 수강생 등의 SNS 사진과 음란물을 합성해 딥페이크 성범죄물을 제작·유포한 혐의를 받는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조은희 의원실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딥페이크 범죄 현황'에 따르면 전국에서 딥페이크 기술을 이용한 성범죄는 2021년 156건에서 2022년 160건, 2023년 180건으로 증가했다. 검거 건수는 2021년 74건, 2022년 75건, 2023년 93건으로 범죄 건수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특히 이 자료에는 10대가 딥페이크 성범죄의 중심에 있음을 의미하는 통계도 담겼다. 2021년부터 2023년까지 3년 동안 성폭력처벌법상 '허위영상물 등의 반포 등' 범죄 피의자의 68.6%(194명)가 10대였다. 10대 다음으로는 20대(64명·22.6%), 30대(16명·5.7%), 40대(3명·1.1%), 60대 이상(4명·1.4%), 50대(2명·0.7%) 순이었다.

김봉식 서울경찰청장은 "학생들끼리는 물론 학생이 교사에 대해서도 딥페이크 허위 사진·영상물을 만드는데, 정보기술(IT) 기기에 익숙한 청소년을 중심으로 (범죄가) 확산하고 있다"며 "시 교육청 등과 협의해서 학생들에게 심각한 범죄로 처벌받을 수 있고, 범죄 전력이 사회활동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시키는 예방 교육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딥페이크 음란물은 SNS를 타고 급속도로 확산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가 지난달 18일 공개한 '연도별 성적 허위영상물 시정요구 현황'을 보면, 올해 6월까지 총 6071건의 시정요구를 결정했다. 올해 상반기에 결정한 시정요구 건수가 지난해 전체 시정요구 건수 7187건의 84%에 달하는 셈이다.

방심위는 디지털성범죄 피해 상황을 모니터하며 전자심의를 통해 사업자들에게 자율적으로 음란물을 규제해 달라고 요청하는 시정요구 결정을 해왔다. 방심위의 성적 허위영상물 시정요구는 2021년 1913건, 2022년 3574건 등 매년 두 배 가까이 급증했다. 이런 추세로 볼 때 올해 전체 성적 허위영상물 시정요구가 1만 건을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공유 목적' 입증 어려워…범죄 심각성 비해 '처벌 공백' 지적도


딥페이크를 활용한 성범죄는 서로 아는 지인들 사이에서 이뤄지면서 피해자의 실명과 직업, 사는 곳까지 공개하는 경우가 많아 일상에서 언제든 위협으로 다가오는 등 피해가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지만, 그 심각성에 견줘 수사기관과 법원의 인식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대 출신 가해자가 동문 등의 사진을 합성해 음란물을 만들어 유포한 사건의 피해자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이채 송지은 변호사는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이나 인스타그램에 올린 일상 사진을 누군가 캡처해 음란물로 합성한다는 점에서 내 주변 누군가가 범죄 가해자일 수 있다는 의심을 하게 만든다"며 "딥페이크 피해자가 사회생활 할 때 굉장히 오랜 시간 괴로움을 겪게 만드는 요소"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수사기관에서 수사 초기 딥페이크 불법 합성물 문제의 심각성을 불법 촬영물과는 조금 다르게 인식해 미온적으로 대응했다"며 "또 피의자를 특정해서 기소되기까지도 어려운데, 딥페이크 성착취물에 대한 처벌 규정이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되다 보니, 가해자들도 스스로 자기 범행을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다수의 성범죄 피해자를 대리해 온 신진희 변호사는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에 '허위영상물 등의 반포(14조의 2)'는 반포할 목적이 있을 때만 처벌하는데 이를 증명하는 게 쉽지 않다"며 "혼자서 볼 목적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며 처벌 공백을 지적했다.

신 변호사는 또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성폭력처벌법 14조)'을 보면 법정형이 7년 이하의 징역으로 돼 있는데, '허위영상물 등의 반포 등(성폭력처벌법 14조의 2)'은 법정형이 5년 이하의 징역으로 돼 있다"며 "합성 기술이 뛰어나다면 촬영물과 구별하기도 어려울 수 있는데 굳이 5년으로 낮을 필요 없다. 형량이 똑같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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