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최근 파라과이와의 평가전에서 이렇다할 경기 내용을 못보여줘 허정무 감독으로부터 "잘한것도 못한것도 아니다"라는 다소 애매한 평가를 받았다.
그렇다면 이동국은 과연 누구인가? 凡人들이 그냥 그렇고 그런 선수로 치부해도 되는 선수인가?
이에 대한 답은 지난 2006년 4월 22일에 썼던 블로그로 갈음하고자 한다.
李.東.國. 그대가 생각났습니다
"왜 오빠는 이동국 한테만 패스해요?"라고 팬이 묻자 김남일 선수는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고 한다. "공 주면 골 넣잖아...근데, 이동국이 니 친구냐?''''
우리는 너무나 쉽고 그리고 빨리 사람을 평가해버린다. 잘 모르면 침묵하는게 미덕이다.
...
이동국의 무릎 십자 인대 수술이 성공적으로 잘 끝났다는 소식에 기쁘기도 하지만 이로인해 독일 월드컵에는 나가지 못할 것이라고 해 맘이 편치 않다.
라이언 킹은 한신전에서 끝내기 2점 홈런을 쏘아올린 이승엽의 애칭만이 아니다.
나를 포함한 이동국의 팬들은 이승엽이 아닌 이동국을 ''라이언 킹''이라고 부른다.
최근 펄펄 날아다니는 그를 보고 청소년 대표시절의 모습이 오버랩 되곤 했다.
청소년 대표 시절 그가 한일전에 출전하면 일본 캐스터들은 그가 공을 잡을 때마다 그리고 슛을 날릴 때마다 거의 ''고함''수준의 비명을 질렀다.
당시 일본인 캐스터들은 발음이 잘 안돼 이동국 선수를 "이동구꾸"라고 불렀다.
제대후 어느날 신촌에서 하숙하는 친구집에서 지켜봤던 한일전에서 일본인 캐스터의 멘트 절반은 "이동구꾸"일 정도였다.
"아 기기이빠츠데스네 캉고꾸노 이동구꾸 이동구꾸 슈~웃"(아 위기네요 한국의 이동국 이동국 슈~윳")
...
이동국 선수는 황선홍 선수를 존경한다고 한다.
황선홍 씨는 이동국 선수를 향해 "나도 어렸을 때 이동국 만큼 하지는 못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동국은 자신의 성격을 스스로 ''내성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의 좌우명은 "난 할 수 있다"이다.
...
사실 청소년 대표시절 그리고 이후 수많은 A매치에서 골을 많이 넣어서 이동국 선수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나에게 ''인동초''가 의미하는 것을 삶으로 보여준 사람이다.
그는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2002년 월드컵 탈락''이었다고 말한다.
사람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사시미 칼''이 아니라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기회를 잃는 것과 사람들에게 서서히 잊혀져가는 것이다.
사실상 잘나가던 축구선수에게 ''월드컵 대표 탈락 소식''은 준 사형선고나 다름 없었을텐데...
그는 툭툭 털어냈고 2003년 불사조 상무 입대와 동시에 K리그 MVP를 거머쥐었다.
그후 눈부신 활약으로 "예전의 그가 아니다"라는 전문가들의 집중 조명을 받았고 따라서 그가 월드컵 대표 0순위임을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무릎 인대 부상으로 결국 그토록 원하던 ''2006 월드컵''에는 참가하지 못하게됐다.
울법도 한데 그는 침착하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동안 받았던 팬들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월드컵에서 골을 넣고 싶었는데…"
이미 이동국은 월드컵에서의 골보다 값진 ''무언가''를 우리에게 선물했다고 믿는다.
그는 결코 석양속에 지고 있는 해가 아니라 이른 새벽 칼바람과 함께 떠오르고 있는 여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