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이 더 무서워[베이징노트]

피터 해럴 미국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선임연구원이 22일(현지시간) 시카고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 외신 브리핑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의 동맹과 파트너도 미국과 같은 수준의, 또는 유사한 (대중국) 수출통제를 도입하도록 하기 위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계속 노력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국제경제 선임보좌관을 역임한 피터 해럴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선임연구원이 22일(현지시간) 민주당 전당대회 외신 브리핑에서 한 말이다.

그는 해리스 부통령이 그동안 한국, 일본 등과 대화할 때 수출통제 문제도 논의했다면서 "외국 기업이 미국에서 반도체 같은 핵심 기술에 투자하도록 계속 장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동맹 보다 '돈'을 우선시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당선시 관계악화를 우려했던 미국의 동맹국 입장에서는 해리스 부통령이 바이든 행정부의 '동맹 중시' 외교 기조를 이어가겠다는데 안도할 것이다.

다만, 트럼프 처럼 동맹국에 '대놓고' 돈을 요구하지 않을 뿐 바이든, 그리고 해리스 역시 동맹을 상대로 동맹의 '대가'는 항상 요구해왔고,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대중국 제재 동참이다.

중국과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나라일 뿐만 아니라 중국을 제1 교역국으로 두고 있는 한국 입장에서 미국의 대중국 제재 동참 요구는 껄끄러운 것임에 틀림없다.

대중국 제재 동참은 곧 중국과의 관계 악화를 의미하며, 이는 경제적 손실로도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대중국 무역수지는 현 정부 출범이후 사상 처음으로 2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무역수지 적자를 단순히 중국과의 관계악화 때문으로 치부할 수는 없지만 지난 2016년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사태에서 경험했듯이 전혀 무관하다고도 할 수 없다.

美 추가 제재 예고에 불티나게 팔린 韓 첨단 반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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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지난 6일 로이터통신은 흥미로운 소식 하나를 보도했다. 화웨이와 바이두 등 중국 대기업 뿐만 아니라 신생 기업들까지 삼성전자의 고대역폭 메모리(HBM)를 대거 비축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HBM는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쌓아 올려 만든 고성능 반도체로 대규모 연산을 초고속·초전력으로 실행해야 하는 생성형 인공지능(AI) 서비스 구현에 필수제이다.

한 소식통은 중국 기업들이 올해 초부터 AI 구현 성능을 갖춘 반도체 구매를 늘리기 시작했고, 그 결과 중국이 올해 상반기 삼성전자 HBM 반도체 매출의 약 30%를 차지하는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중국 기업들이 삼성전자의 HBM 사재기에 나선 이유는 미국이 중국을 겨냥해 조만간 AI 반도체에 대한 추가 수출 통제 조치를 발표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최근 블룸버그통신은 조만간 공개될 관련 조치에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중국 기업에 HBM을 공급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될 수 있다고 보도한 바 있고, 미국 상무부도 이를 부인하지 않았다.

이는 올해 초부터 대중국 수출, 특히 반도체 수출이 급증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지난 7월 반도체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50.4% 늘어난 112억 달러를 기록하면서 4개월 연속 50% 이상 증가세를 이어갔다.  
올해 1월 반도체 수출이 크게 늘며 대중국 수출이 20개월 만에 플러스 전환에 성공한 이후 그 흐름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다양한 원인이 있었겠지만 그 일등공신이 중국 기업의 HBM 사재기였던 셈이다.

이와 관련해 베이징의 한 경제계 인사는 최근 중국 상무부와 한국 기업들인과의 간담회에서 한 상무부 고위인사가 "올해 한국 반도체 수입이 크게 늘었다"고 소개하며 양국 협력을 강조한바 있다고 전했다.

韓, 대중국 제재로 '어부지리'도 얻지만 장기적으론 '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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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행정부의 대중국 제재는 그동안 한국에 독이 되기도, 득이 되기도 했다. 한중관계가 악화되며 대중국 수출에 악영향을 미치기도 했지만, 오히려 수출시장 다변화의 계기가 됐다.

특히, 중국이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전기차의 경우 미국이 앞장서 중국산을 제재하면서 한국 전기차의 수출이 급증했다. 한동안 중국을 제치고 미국이 한국의 제1 수출국으로 올라서기도 했다.

다만, 미국의 대중국 제재로 어부지리를 얻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당장 반도체만 해도 미국의 추가 제재를 앞두고 중국 측 수요가 늘어 수출이 늘었는데, 막상 제재가 시행되면 수출이 급감할 수 있다.

여기다 미국의 제재가 오히려 중국이 '기술 자립'에 나서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미국의 1호 제재 중국기업인 화웨이가 비교적 고성능의 반도체 개발에 잇따라 성공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 재중 경제인은 "고성능 반도체에서는 중국과의 기술격차가 여전하지만 범용반도체의 경우 이미 중국과의 기술격차가 의미가 없어졌다"면서 "중국 반도체 기업들의 성장세가 무섭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재정 보고서를 발표한 중국 반도체 기업 68곳 가운데 40곳이 전년 대비 50% 이상의 매출 상승을 기록하는 등 중국 반도체 기업들은 미국의 제재를 뚫고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를 두고 중국 통신산업 분석가인 마지화는 "수율이 높아지고 생산 비용이 낮아지면서 성숙 반도체 공정에서 중국의 지배력이 커지고 있다. 많은 미국 기업이 점점 더 중국 제품에 의존하고 있다"고 큰소리 칠 정도다.

중국 반도체 산업의 기술 자립과 성장은 결국 한국 반도체 산업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한국 기업들은 손발이 묶인채 미국의 대중국 제재 발표만 쳐다봐야 하는 형편이다.

동맹에만 희생 강요하는 美…韓 요구할건 요구해야


다시 '트럼프 보다 낫다'는 해리스의 동맹으로 돌아가 보자. 해럴 연구원의 발언처럼 해리스가 요구하는 동맹의 대가는 대중국 제재 동참 뿐만 아니라 대미국 투자도 포함된다.

최근 몇년간 대미국 수출이 급증한 것도 따지고 보면 삼성전자와 현대차그룹, LG에너지솔루션 등 대기업들이 미국에 공장을 짓기 위해 각종 장비와 기자재를 수출한 것이 큰 요인 가운데 하나다.

이는 미국이 동맹의 대가로 한국의 대중국 제재 동참과 대미 투자 확대를 요구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미국도 한국의 도움이 필요한 만큼 한국도 미국에 동맹의 대가를 요구할 수 있다는 뜻이다.

동맹의 사전적 의미는 둘 이상의 개인이나 단체, 또는 국가가 '서로의' 이익이나 목적을 위하여 동일하게 행동하기로 맹세하여 맺는 약속이나 조직체, 또는 그런 관계를 맺는 것이다.

따라서 '서로의' 이익이나 목적을 위한다면서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만을 강요하는 것은 동맹이 아니라 종속에 가깝다는 점에서 한국 역시 미국에 당당히 요구할 것은 요구해야 한다.

국제관계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미국의 대중국 재제에 반도체와 2차전지 등 한국의 기술력은 필수"라며 "대중국 제재 동참으로 한국이 피해를 입을 수 있는 만큼 기술력을 미국과의 협상 지렛대로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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